[MBN스타 금빛나 기자] 뮤지컬 ‘아랑가’의 가장 큰 매력은 우리의 판소리와 서양의 뮤지컬 음악이 만났다는 것이다. ‘아랑가’에 앞서 뮤지컬 ‘서편제’ 또한 판소리와 서양음악의 만남으로 많은 사랑을 받은 바 있다. 다만 두 뮤지컬 사이 다른 점이 있다면 ‘서편제’는 기존의 판소리를 활용해 작품을 이끌어 간 반면 ‘아랑가’는 작품을 위해 작창을 했다는 것이다.
‘아랑가’는 백제시대 개루왕 통치시절 도미 처가 포악한 왕의 탄압에 굴복하지 않고 부부의 신의와 절개를 지킨다는 내용의 도미부인 설화를 모티브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도미설화를 근본으로 고구려 첩자인 도림에게 속아 백제의 국운을 기울게 한 개로왕의 이야기에 상상력을 더하면서 극적인 재미를 더했다.
‘저주받은 왕자’라는 무녀의 저주를 듣고 태어난 개로왕은 꿈 속 여인이 들려주는 노래 소리에 마음의 위안을 얻게 되고, 이내 그 환상에 사로잡히게 된다. 꿈 속 여인은 백제의 충신 도미장군의 아내 아랑. 고구려의 첩자 도림은 이를 이용해 백제를 위기에 빠뜨리고, 그로 인해 파멸로 향해 가는 개로왕과 아랑, 도림의 아름답지만 비극적인 인생과 사랑을 노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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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뮤지컬과 달리 도창(창극에서 극을 인도하는 역)이 등장할 정도로 판소리의 비중이 높은 ‘아랑가’는 중앙대 연극학과 동기인 김가람 작가와 이한밀 작곡가가 협업에 의해 탄생했다.
신인 창작진의 아이디어에서 시작된 ‘아랑가’는 2013년 한국, 미국, 중국, 일본 등 23개 국37개 대학과 연극교육기관이 참가한 제3회 ‘아시안 시어터 스쿨스 페스티벌’(ATSF)에서 최우수작품상을 거머쥐며 가능성을 인정받았으며, 이후 2015년 CJ 크리에이티브 마인즈 리딩작으로 선정되면서 뮤지컬로서 본격적인 뼈대를 갖추기 시작했다. ‘아랑가’의 상승세는 맹렬했다. 2015년 충무아트홀이 창작뮤지컬을 지원하는 ‘제4회 예그린 앙코르’에서도 최우수 작품으로 뽑힌 ‘아랑가’는 짧은 시간동안 완성도를 높인 뮤지컬이 됐다.
‘아랑가’를 통해 이제 막 창작뮤지컬 제작의 길을 걷게 된 두 사람 김가람 작가와 이한밀 작곡가를 만나, ‘아랑가’제작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 김가람 작가와 이한밀 음악감독, 뭣 모르고 ‘아랑가’에 뛰어들다
학교 동기인 두 사람의 유대관계는 매우 끈끈해 보였다. 무척이나 친해 보이는 두 사람에게 “혹시 두 사람 연인 아니냐”고 질문을 던졌더니,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아니라고 부인하면서 “학부시절 동기 중 뮤지컬을 전문으로 하는 이들이 둘 뿐 이다보니 자연스럽게 가까워졌다”고 못을 박는다. 사귀는 것이 아니냐는 농담을 할 정도로 김가람 작가와 이한밀 음악감독의 서로를 향한 신뢰는 든든해 보였으며, 호흡 역시 찰떡궁합이었다.
‘아랑가’의 창작진으로 묶인 이들은 이를 계기로 ‘비로소’라는 창작집단을 만들기도 했다. ‘‘아랑가’ 뿐 아니라, 이를 시작으로 다른 창작물을 선보일 것이라는 각오와 젊은 패기가 묻어나는 부분이었다. 비로서의 첫 작품이기도 한 ‘아랑가’는 이들이 대학시절 개발한 작품이었다. 졸업 작품의 개념보다도 전 세계 학생들이 모이는 ‘아시안 시어터 스쿨스 페스티벌’ 출품작으로 만들어진 ‘아랑가’는 장르의 신선함으로 빠른 시간 내에 급속도로 성장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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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아랑가’를 만들기 전 저희는 졸업여건도 채웠고, 다른 작품을 준비하고 있던 터였다. 그런데 저희를 지도해주셨던 박동우 교수님을 통해 당시 ‘아시안 시어터 스쿨스 페스티벌’의 주제가 전통과 현대의 만남이라는 것을 알게 됐고, 해볼 생각이 없느냐고 제안에 기존에 해왔던 작품을 뒤로하고 ‘아랑가’에 매달렸다. 처음에는 뭣도 모르고 했는데, 이후 CJ크리에이티브 마인즈 리딩과 예그린앙코르를 거치면서 작품의 완성도가 높아졌다. ‘아랑가’를 통해 배운 것들이 많다. 상업공연으로 나오면서 질타도 많이 받았지만, 일단은 인간적으로 예술가로서 어떤 것을 지향해야 하는가, 그리고 많은 배우들과 연출을 만나면서 작가로서 스토리를 조금 더 잘 해나갈 수 있는가에 대해 배우게 됐다.”(김가람 작가)
“사실 나는 작곡가가 아닌 뮤지컬 배우가 되기 위해 대학에 들어왔다. 작곡을 정식으로 배운 적도 없고, 다른 사람이 아닌 그저 제가 부르기 위해서 곡을 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연기만 열심히 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연극학과 학부생이 되니 상당한 전문성을 요하더라. ‘멘땅의 헤딩’을 하는 심경으로 시작을 했다.”(이한밀 음악감독)
발전을 거듭해 온 ‘아랑가’는 CJ 크리에이티브로 넘어오면서 가장 큰 변화를 거뒀다. 처음 도미설화를 근간으로 단순한 플롯을 자랑하던 ‘아랑가’는 회를 거듭하면서 점점 촘촘해졌다.
“중앙대 초연 당시 만들어진 ‘아랑가’는 설화 내용 그대로 썼기에 플롯 자체가 굉장히 단순했다. 상업극으로 오면서 가장 크게 달라진 부분은 개로의 분량이 늘어났다는 것이다. 본 공연으로 오면서 아랑과 도미의 힘이 빠진 반면 개로라는 인물이 훨씬 부각됐다. 아랑과 도미의 사랑이야기 보다는 개로를 통해 가져서 안 될 것에 욕망을 갖고, 그로 인해 파멸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김가람 작가)
◇ “중독성 최강 ‘아랑가’, 샘플곡만 무려 700개 이상 작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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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랑 아랑 아랑 아랑 아랑 아랑 아랑’ 뮤지컬 ‘아랑가’를 대표하는 넘버 ‘아랑가’의 가사이다. 아랑이라는 이름을 일곱 번 반복해서 부르는 ‘아랑가’는 쉽고 단순한 가사만큼 엄청난 중독성을 자랑한다. ‘아랑테마’로도 불리는 ‘아랑가’는 한 번 들으면 공연 끝나고 돌아오는 내내 귓가를 맴돌며 관객들에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아랑가’가 처음부터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극의 제목이 ‘아랑가’로 확정되면서 극을 관통하는 ‘아랑가’의 존재가 필요성을 느꼈던 김가람 작가와 이한밀 음악감독은 이내 창작모드로 돌입했다.
“CJ 크리에이티브 마인즈 리딩 때 처음 만들었다. 처음 제목을 짓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좋은 제목이 없더라. 그러다 ‘아랑가’로 할까 했는데 생각보다 작품에 착 맞아 떨어지더라. 아랑 테마를 짓게 된 계기도 단순하다. 제목이 ‘아랑가’인데 ‘아랑가’가 있어야겠다고 생각했고, 한밀 작곡가에게 가사로 아랑 7개를 던져주었다.(웃음)”(김가람 작가)
“진짜 거짓말 안 하고 문자로 ‘아랑 아랑 아랑 아랑 아랑 아랑 아랑’이렇게 왔다. 처음에는 ‘이게 뭐지’했다. 사실 단순한 음악을 만드는 것이 더 어렵다. 아랑테마(‘아랑가’)가 여러 곳에 나오는 만큼 정말 심혈을 기울였다. 샘플곡만으로도 700개 이상을 만들었다. 그 중 몇 개 추려서 보냈고, 고생한 끝에 지금의 아랑테마가 탄생했다.”(이한밀 음악감독)
‘아랑가’는 스토리와 배우, 무대의 변화 뿐 아니라 음악적으로도 많은 발전을 이뤘다. 작창을 담당한 박인혜가 도창까지 담당하면서 ‘아랑가’의 최대 장점이 빛을 발했으며, 오케스트라 밴드 또한 한층 풍성해 졌다.
“CJ 리딩공연부터 음악적으로도 많이 변화됐다. 판소리는 당시에는 도창역을 직접 하시지는 않았고, 작창만 해주셨다. 처음에는 창은 창대로 만들고 넘버를 앞에 뒤에 붙일까 논의를 해봤고, 소리를 들으면서 반주도 해보고, 다양한 시도를 했던 것 같다. 본 공연에 오면서 음악적으로 가장 크게 바뀐 부분이 있다면 콘트라베이스를 사용, 중저음 파트가 강화됐는 점이다. 음악적으로 강화가 되면서 음악적인 실험을 한 부분이 있는데, 바로 도미가 배에 타고 떠내려 오는 장면이다. 콘트라베이스가 협연을 하는데, 이 부분의 음악을 째즈하게 편곡을 했다. 전통적인 구음 뒤에 모던한 음악적 양식을 넣으면 어떨까 시도를 해 보았는데, 관객들은 어떻게 들었는지 잘 모르겠다.”(이한밀 음악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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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공연계에 막 첫 발을 내딛은 김가람 작가와 이한밀 음악감독. 이들의 다음 행보는 어떻게 될까.
“저는 배꼽 빠지는 코미디를 하고 싶다. 대학시절 창작뮤지컬을 올린 뒤 봉사활동 겸 케냐로 훌쩍 떠났던 시기가 있었다. 1년 간 케냐에서 살았었는데, 그때 무대에 대한 귀중함을 깨달았다. 공연을 보고 싶다는 마음이 절정에 달했던 시기가 있었는데, 그때 굉장히 어렵게 ‘스팸어랏’의 OST CD를 구했었다. 공연을 보고 있는 것도 아닌데 음악이 재기발랄하고 느낌과 분위기가 사람을 기분 좋게 하는 힘이 있더라. 계속해서 창작 뮤지컬을 올리게 된다면 개인적으로는 그런 작품을 해보 싶다.”(이한밀 음악감독)
“저 스스로에게 참 많이 하는 질문이다. 부담이 되는 것이 ‘아랑가’는 기존의 뮤지컬과는 다른 특이한 작품이라서, 많은 분들이 이 작품을 했던 작가가 다음은 무엇을 할까에 대해 궁금해 하실 것 같다. 만약 ‘아랑가’와 비슷한 작품을 하면 ‘또 이걸하네’라고 생각하실 테고, 그렇다고 다른 형식을 취하면 ‘그 좋은 걸 버렸네’라고 하실 것 같아 고민이 많다. 저는 어찌됐든 작품에 사회적인 메시지들을 담고 싶다. 생각하는 작품을 하고 싶은 것이다. 이건 후에 내가 하는 모든 극들의 스포가 될 수 있을 것 같은데, 학창시절 올린 작품들을 보면 주인공들이 항상 죽더라. 제가 쓰고 있는 작품들도 다시보니 또 죽더라. 계속 죽여서 극중 인물들에게 미안하기는 하지만 (웃음) 삶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 (김가람 작가)
금빛나 기자 shinebitna917@mkculture.com /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bnstar7 디자인=이주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