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시절엔 마을마다 서점이 있었다. 서점은 단지 책을 사는 곳이 아니라 추억을 사는 곳이었고 지식과 취향을 사는 곳이었다. 소설가의 꿈을 키워준 공간도 세상은 넓고 읽을 책은 많다는 사실을 일깨워준 서점이었다. 오늘날은 대도시 한복판에서도 서점을 찾기 어려운 시대가 됐다. 작가로서도 독자로서도 가슴아픈 일이다.
‘서점산책자’인 나는 어느 도시를 가든 서점을 방문한다. 얼마 전 들렀던 대만 타이페이의 청핀서점(誠品書店)과 일본의 다이칸야마 츠타야 서점에서 나는 ‘미래의 서점’을 보았다. 도쿄의 명물이 된 다이칸야마 츠타야 서점은 3개의 건물을 통째로 서점으로 쓴다. 이곳엔 베스트셀러 코너가 없었다. 대신 안락한 의자가 있었다. 도서관 같은 장르구분도 없었다. 음반과 책이 섞여 있었다. 요리책 코너 옆엔 식기와 식재료들이, 프랑스 여행책 옆엔 누벨바그 영화와 인상주의 화집이 놓인 식이다. 길을 잃고 헤매다 보면 책과의 우연한 만남이 찾아왔다. 츠타야의 성공 비결은 서점에 대한 선입견을 깬 것이다. 고급주택가에 들어선 이 대형서점 덕에 다이칸야마의 유동 인구는 3배 이상 늘었고, 덩달아 주변 지역 상권까지 되살아났다고 한다.
청핀서점은 타임지가 2004년 아시아 최고서점으로 선정되며 대만의 관광명소가 된지 오래다. 24시간 운영되는 이곳에는 자정에도 음악을 들고 커피를 마시는 독자들이 있었다. 책과 음반 뿐 아니라 만화, 문구, 차, 액세서리, 선물 등 문화를 사랑하는 사람이 좋아할 모든 것이 모여있었다. 그들은 정보를 얻으러 서점에 온 것이 아니라 삶을 얻으러 서점에 온 것 같았다.
한국 만큼이나 일본도 오프라인 서점은 위기에 봉착해 있다. 그런데도 츠타야 서점은 지난해 기준 일본 전역에 1444개의 지점 이상을 확보하며 파죽지세로 성장하고 있다. 시대의 흐름을 거스르는 아날로그 서점의 기적처럼 보인다. 창업자인 마스다 무네아키는 “인터넷 상에 수많은 플랫폼이 존재해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쇼핑을 할 수 있는 시대에는 고객에게 필요한 상품을 찾아주고 ‘제안’해주는 것이 필요하다”는 철학으로 서점을 이끈다. 츠타야 서점을 방문하면 종이책은 사양산업이라는 선입견도 사라진다. 사람이 찾아오고 싶은 공간으로 만든다면, 그곳이 어디라도 독자들은 찾아간다는
대만과 일본의 두 서점은 ‘서점은 이러이러할 것이다’는 나의 생각을 깨뜨렸고, 문화를 판매하는 미래의 공간이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서점은 책을 파는 곳이 아니었다. 그들이 파는 것은 시간과 공간이었다.
[소설가 김중혁 / 김슬기 기자 도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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