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금빛나 기자] 2차 세계대전 막바지에 일본 오키나와에서 미군의 공격을 피해 나무로 올라간 두 군인은 그 후로 2년간 밑으로 내려오지 못했다. 이미 새로운 세상이 시작됐건만, 종전을 몰랐던 이들은 배고픔과 두려운 전쟁 한 가운데서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믿기 어렵지만 실화를 모티브로 만들어진 연극 ‘나무 위의 군대’는 전쟁에 질 것을 알고 있었던 본토 출신의 분대장과 자신의 고향인 섬을 지키기 위해 입대한 신병이 나무 위에 올라가 보낸 시간들을 그려내고 있다. 추위와 배고픔,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전쟁이라는 얽매임 속에 갇힌 이들은 교도소보다도 열악한 나무 위에서 죽지 못해 살아가는 하루를 지낸다. 나무 아래에는 이미 새로운 세상이 시작됐건만 이를 인정하지 못한 이들의 모습 속에서 국가주의가 일으킨 전쟁의 무의미함과 극한 상황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본성이 여과 없이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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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대표 극작가이자 ‘일본의 셰익스피어’로 불리는 거장 이노우에 히사시가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집필한 유작 ‘나무 위의 군대’가 2016년 한국 무대에 올랐다. 엄밀히 말하자면 ‘나무 위의 군대’의 대본은 이노우에의 후배 극작가 호라이 류타가 쓴 것이라고 말하는 게 정확하다. 공연까지 3개월 앞두고 이노우에의 건강이 악화되면서 ‘나무 위의 군대’ 미완의 상태 남겨두고 눈을 감은 것이다. 남은 것은 종이 한 장 분량의 대략적인 스케치 뿐. 그의 뜻을 이어받은 호라이는 이를 토대로 극본집필을 이어나갔고, 그렇게 ‘나무 위의 군대’는 “일본은 그 전쟁(2차 대전)을 매듭짓지 못했다”고 입버릇처럼 말을 했던 이노우에의 메시지가 담길 수 있었다.
나무 위에 오른 늙은 분대장과 젊은 신병이 극을 이끌어가고, 해설자인 나무의 정령이 이들의 모습을 이야기해 준다. 3인극인 ‘나무 위의 군대’의 또 다른 주인공이 있다. 바로 ‘나무’ 그 자체이다. 실제로 거대한 벵골보리수 나무를 옮겨놓은 듯, 이를 형상화한 무대는 존재만으로도 강한 인상을 남긴다. ‘나무 위의 군대’사 공연되는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을 꽉 채우는 크기는 시작부터 끝까지 나무를 떠나지 않는 두 배우의 연기를 빛나게 하며 기존 연극 무대에서 볼 수 없었던 미장센을 선사한다.
한국에서 초연된 ‘나무 위의 군대’의 무대는 일본의 무대디자이너 이토 마사코의 손에서 탄생했다. 뮤지컬 ‘쓰릴미’(2013년) 연극 ‘취미의 방’ 등의 무대디자인을 맡으면서 국내 관객들에게 친숙한 일본 무대디자이너이다. 2006년 ‘베세토 연극제’에 참가한 ‘갈릴레이의 생애’를 통해 한국과 인연을 맺은 이토는 이후로도 꾸준한 작업을 이어 나왔고, ‘나무 위의 군대’로 한국에서의 6번째 작품을 올리게 됐다.
무대 디자이너로 차근차근 필모그래피를 쌓아나간 이토이지만, ‘나무 위의 군대’는 그녀에게 있어서도 도전과 같았다. 공연장에 거대한 나무를 심기로 결심한 이토는 이를 과감한 시도했고, 그 결과 벵골보리수나무는 무대 위로 솟아오를 수 있었다.
“오키나와에는 지금도 두 군인이 2년 동안 생활한 벵골보리수 나무가 있다. 실제로 존재하고 있는 나무를 중심으로 여러 종류의 벵골보리수를 조사해 작업에 참고했다. 실제 영상이나 사진으로 보면 생각만큼 크지는 않다. 이를 그대로 본 따 만든다면 아무것도 전달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전쟁의 무서움을 제 나름대로 형상화하기 위해 크기를 키웠다. ‘영양을 섭취하고 거대화 되어 가는 나무’를 국가로 생각하고, ‘그 나라에서 희생이 되는 민중이 그 나무속으로 빨아 들여져 간다’는 것을 콘셉트로 나무의 크기를 강조한 것이다. 작품의 원안자인 故이노우에 히사시가 생전 ‘마지막에 두 군인이 나무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한다’는 말을 염두에 둔 작업이기도 하다.”
무대인 나무는 철제를 기본 베이스로 만들어지면서 단단함을 살릴 수 있었다. 여기에 스티로폼을 덧붙여 부피를 늘리고, 하나의 미술작품이자 배우들이 밝고 오르내리는 무대인만큼 배우들의 부상 방지 및 망가짐을 방지하기 위해 천으로 이를 감쌌다. 천은 미연의 사고를 막아줄 뿐 아니라 나무의 질감까지 높이며 보는 맛까지 더했다.
“철골부분은 직선이 너무 눈에 띄어서 스펀지로 둥글게 감는 식으로 직선을 완화시켰다. 스펀지 등은 가공하기가 쉬워서 편하다. 나뭇가지는 무대를 제작해준 무대제작회사 분들의 멋진 기술에 의해 잘 표현돼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나무 위의 군대’에 출연하는 배우들의 동선은 굉장히 입체적이다. 나무 위에서 움직이기 때문에 좌우를 옮긴다고 하더라도 굴곡이 있는 나무를 따라 이동하며, 오르내리는 ‘상하(上下)’의 움직임도 많다. 배우들이 움직일수록 극은 더욱 생동감이 넘치지만, 한편으로는 안전상의 문제도 무시할 수 없다.
“배우들의 안전을 위해 최대한 할 수 있었던 것은 올라가기 쉽도록 발판을 만들고, 오르내릴 때 사용하는 손잡이를 나무의 일부처럼 보이게 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서 디자인 할 때 배우 분들의 의견을 참고했고 극장에 들어가서도 보충을 했다. 미적으로도 자연스럽게 보여야 하기 때문에 머리를 써 보았다. 사실은 안전을 위해서 나무 주변에 네트를 치려고 했으나, 배우들이 없어도 괜찮다고 하더라. 덕분에 지금 네트가 없는 상태다. 무대 디자인 적인 측면에서 봤을 때 네트가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느낌이 전혀 다른데,. 무대 디자이너의 입장으로서 네트가 없어도 된다는 배우들의 말을 듣고 기뻤고, 그들의 용기에 무척이나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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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여러 번 인연을 이토였지만, 이번 작업은 녹록치 않았다. 이토와 국내 ‘나무 위의 군대’ 공연장 사이에 흐르는 바다는 생각보다 멀었던 것이다. 작업을 하면서 힘든 점에 대해 이토는 “일본에서는 연습할 때 최대한 무대 디자인에 가까운 세트를 만들어서 연습을 한다. 한국에선 연습실에서 세트를 세우지 않는다고 알고 있지만, 이번에는 위험이 많다고 생각했다”며 말문을 열었다.
“연습실에 나무 형태까지는 아니어도 입체적인 가무대를 만들어 달라고 요청했다. 배우들이 무대와 다른 연습 환경에서의 움직임에 익숙해질까 봐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연습실에서 익숙해진 움직임을 무대에 들어가서 변경하는 것은 배우들에게 아주 큰 부담이 되기 때문에 그것을 피하고 싶었다.”
미학과 안전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 이토의 노력 덕분에 ‘나무 위의 군대의 나무는 단단하면서도 무대 미술이라는 작품성을 살릴 수 있었다. 현재 관객들에게 있어 또 하나의 관전 포인트가 된 나무, 혹시 관객들이 모르는 무대 위의 비밀은 없는지, 혹여 관객들이 조금 더 유심히 봐 주었으면 하는 부분에 대해 물어보았다.
“눈치 채신 분도 계실지 모르겠지만, 뿌리에 시체가 3구 있다. 최대한 뿌리처럼 보이도록 자연스럽게 디자인 했지만, 아마 자세히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왜 시체를 두었냐면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나무를 민중의 피를 빨아 들이는 국가로도 표현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전쟁에 많은 희생자가 있다는 것을 느껴 주시길 바랐다. 그리고 지금도 실제로 세계 어딘가에서는 전쟁이 있고 많은 분들이 희생되고 있다. 최근에는 저희와 가까운 나라에서도 놀랄만한 일이 일어났다. 전쟁은 비참함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같이 느껴주셨으면 좋겠다.”
한국 초연된 ‘나무 위의 군대’는 연출이 바뀐 만큼 원작과 또 다른 느낌은 전해준다. 일본 초연을 관람했던 이토는 “꽤 시간이 흘렀기 때문에 제 기억이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본 버전에서는 나무에서 최대한 내려오려고 하지 않았던 거 같다. 계속 나무에 있었던 기억으로, 상관이 자신의 위치에서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는 인상을 받았다. 여자는 나무를 만지는 일 없이 나무 주변에서 지 보고 있었다고 기억한다”고 일본 공연에 대해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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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무언가에 묶여 있다’ ‘무언가가 감시하고 있다’라는 긴박감 필요했고, 그렇기에 그 표현을 어떻게 하고 무엇으로 표현할지를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됐다. 한국과 일본 공연에 차이가 있다면, 그 긴박함 안에 있는 일상의 것, 인간성을 표현하는 차이일 것이다. 사실 작풍적(作風的)으로 한국은 엔터테인먼트 부분이 강해서 이번 ‘나무 위의 군대’라는 전쟁을 다룬 작품을 함께 만들 수 있는 날이 오게 될지는 몰랐다. 물론 문화의 차이, 교육의 차이가 있어서 서로를 완전히 이해하는 것은 무리일지 모르지만 나라의 정치적인 상황과는 상관없이, 작품을 통해서 서로 이어지고 이해하는 것이 있다고 느끼고 있다. 만약에 가능하다면 일본에서 한국 버전을, 한국에서 일본 버전을 공연하면 재미있을 듯하다. 그리고 이건 여담이지만 일본 버전의 무대 디자이너는 제 스승이다.(웃음) 참 신기한 인연인 듯하다.”
19살, 고등학교 3학년 때 뮤지컬 관람 후 감동과 감정의 고조를 느낀 이토는 이후 무대미술의 길로 뛰어들었다. 좋아서 시작한 일이지만 늘 좋은 일들만 있을 수는 없는 법, 그 역시 때대로 너무 힘들어 그만두고 싶었던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그저 하고 싶다는 생각만 있고 아직 무대 디자이너의 일이 뭔지 몰랐을 때는 작업을 과감하게 했다. 그런데 돈을 받고 직업이 된 후에는, 받는 일의 규모가 점점 커지면서 내가 하고 싶다는 생각만으로는 해결 되지 않는 일이 늘어나기 시작하더라. 그렇게 되면 하고 싶은 일의 반조차도 할 수 없게 된다. 그런 일이 가끔 있는데, 그럴 때는 괴롭다. 그렇지만 힘들지 않은 일은 없지 않느냐. 무대 디자이너로서 ‘늘 창조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계속 만들어 내야 한다.’는 것은 아주 힘든 일이기에 고갈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좌절이나 실패는 하지 않는 것보다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고 전한 이토는 “그럼에도 왜 계속 이 일을 하느냐”라는 대답에 웃으며 “간단하다. ‘좋아하니까’요”라고 답했다.
“계속 즐길 수 있는 무대 디자이너로 있고 싶다. 무대는 살아 있는 것이다. 공연을 하고 나면 무대는 사라진다. 그것이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몇 년을 더 할지는 모르지만 자기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은 일을 하고, 하나라도 더 많이 기억에 남는 작품을 만들어 낼 수 있으면 좋겠다.”
금빛나 기자 shinebitna917@mkculture.com /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bnstar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