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문학의 어머니’ 박완서 <사진=이병률> |
박완서가 우리 곁을 떠난 지 5년이 지난 지금, 생생한 그의 목소리를 글로 더듬으며 추억할 길이 열렸다. ‘우리가 참 아끼던 사람’(달 펴냄)은 김승희 서강대 교수와 장석남·이병률 시인, 김연수·정이현 소설가, 신형철·박혜경 문학평론가가 생전 작가와 각기 만나 주고받은 대담집이다.
작가 박완서가 평소 느낀 문학관, 소설쓰기의 어려움, 작품의 뒷이야기가 대담의 행간에 그득하다.
박완서는 소설은 증언이자 울음이라고 지적한다. 장석남 시인과의 대담에서 그는 “소설이 무슨 거창한 것이기보다는 역사의 수레바퀴에 밟힌 제 자신의 울음에서부터 시작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현실을 반영하는 ‘증언’으로서의 문학도 설파한다. 장편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를 둘러싸고 신형철 평론가에게 작가는 “서울에 남아서 겪었던 한국전쟁을 내가 ‘증언’해야겠다는 생각이 있었다”며 “그 시기는 내가 소설에 쓴 것보다 훨씬 더 끔찍하고 고통스러운 시기였다”고 털어놓는다.
소설쓰기의 어려움도 묻어난다. 김연수 소설가와의 인터뷰에서 박완선는 “소설이란 내가 한 세계를 만들어내는 것”이라면서도 “내가 구상한 세계니까 빤히 들여다보이는 것 같지만, 막상 들어가려고 하면 단단한 껍질을 둘러친 것 같다”고 고백했다. 박혜경 평론가에게 ‘등단 늦깍이’로서의 소회에 밝히면서는 “난 아무것도 쓰지 않고 그냥 살아왔던 시간도 중요하다고 말해주고 싶다”고 답했다.
등단작 ‘나목’은 본래 고(故) 박수근 화백의 전기(傳記)를 쓰기 위해 시작됐음도 숨기지 않는다. 박완서 작가는 “처음에 쓰고 싶었던 건 그분의 전기 같은 것이었는데, 그러려면 내가 (미군PX에서) 일을 그만둔 이후의 일들에 대해 조사를 해야 했다”며 “근데 조사를 해서 쓰는 건 또 싫어 PX 시절만 갖고 쓰기로 마음먹고 시작했고 그러다보니 내 얘기도 쓰고 싶어졌다”고 설명했다. 불세출의 작가가 털어놓는 위대한 작품의 탄생설화를 엿보는 재미가 반갑다.
한국문학의 대모로 통하지만 대담집은 가벼운 농담이 섞여 작가 성격을 짐작케 한다.
소설집 ‘친절한 복희씨’의 원래 제목이 ‘대범한 밥상’이었으나 나중에 요리책으로 오인할까 걱정스러워 바꿨다는 대목이 그렇다. “윤대녕 씨의 ‘은어낚시통신’이라는 소설책이 어느 시골 서점에 가봤더니 낚시 코너에 꽂혀 있었다던가. 그래서 별안간 ‘대범한 밥상’이 싫어졌다”와 같은 농담이 독자를 웃음짓게 한다. 다작 비결이 1990년대 초반부터 컴퓨터로 글을 썼기 때문인 박완서는 “영국에서 쓴 작품(‘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을 플로피디스크에다 저장해서 갖고 왔는데 그걸 한국에 와서 돌리니까 작품이 거기 고스란히 들어 있는데 너무 신기했다”며 소녀감정으로 가득한 박완서를 증거한다.
‘우리가 참 아끼던 사람’은 박완서의 맏딸 호원숙(62) 수필가가 책을 엮었다. 대담집을 펴낸 그는 “어머니와 만나 인터뷰한 글의 행간에서, 무슨 비밀이 숨어 있지는 않을까 깊은 서랍을 뒤지는 것 같은 느낌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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