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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4일 개봉하는 영화 ‘캐롤(Carol)’을 보고 사포의 시(詩)를 다시 찾아 읽었다. 사랑을 찬미한 인류 최초의 여성 시인, 플라톤은 그녀를 ‘열 번째 뮤즈’로 칭송했다. 기원전 620년 경, 레스보스 섬에서 태어나 ‘레즈비언’(레스보스 섬 사람)으로 불리기도 했던 사포, 실제로 그녀가 자신의 아카데미 소녀들과 기꺼이 사랑을 나눴던 첫 여성 동성애자임은 그리 알려져 있지 않다.
‘캐롤’은 두 여인의 사랑 이야기다. ‘재능 있는 리플리 씨’(1955) 등 범죄 소설만 쓰던 페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자전 소설 ‘소금의 값’(1952)이 원작인데, 작가가 쓴 처음이자 마지막 사랑 이야기로 알려져 있다. 토드 헤인즈 감독은 이 작품을 영화로 재구성하면서 동성애에 대해 극도로 보수적인 1950년 대 미국 사회 전면에 ‘레즈비어니즘’을 내세운다. 영화 밖 현실을 관통하는 조용한 항거다.
성공한 은행가와 결혼해 뉴저지 교외에 살고 있는 캐롤(케이트 블란쳇). 부유한 그녀 삶의 외피는 남부러울 것 없어 보이지만, 그 우아함 이면에 한 움큼 상처가 있다. 10여 년 간 자신의 삶을 포기하고 가정을 위해 헌신했던 삶, 그 결과는 가부장적인 남편(카인 챈들러)과의 별거와 이혼소송이다. 단독 양육권을 원한다는 남편은 이제 그녀에게서 외동딸을 볼 권리마저 앗아가겠다고 한다.
맨허튼의 한 백화점 점원인 테레즈(루니 마라)의 삶도 그리 녹록진 않다. “내가 뭘 원하는지 모르면서 허락만 해왔다”던 고백처럼, ‘자기 의지’를 관철시킨 삶을 스스로 살아본 적 없다. 이따금 사진 촬영으로 자신을 표현하며 습작 생활을 이어가지만, 그 재능을 알아봐준 신문사 친구의 입사 권유를 선뜻 받아들이지 못한다. 오래토록 사귄 남자친구의 잇단 청혼도 수락 앞에 번번이 망설인다.
그런 두 여성이 점원과 손님으로 만나, 빠른 속도로 연인이 된다. 삶의 무게를 잠시간 내려놓고 둘 만의 여행을 떠나고, 전에 없던 사랑을 나누며 마음의 평화를 얻는다. 매력적인 두 여배우의 섬세한 몸짓과 표정, 그리고 감정선을 천천히 따라가다보면 이것이 동성애라는 생각은 좀처럼 들지 않는는다. 영화가 보여주는 두 여인의 교감은 편안하고 따뜻하며 아름답기까지 하다.
‘캐롤’은 한 사람을 사랑함에 있어 남녀 구분이 그리 본질적인 게 아님을 말하는 것 같다. 그 대상이 동성이든 이성이든 정작 중요한 건 ‘지금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는 사실’이어야 함을 이 영화는 나직이 일러주는 것이다. 이를 위해 두 시간의 러닝타임 동안 두 여인의 만남과 이별, 재회를 천천히 비춰주면서 결국엔 두 ‘여성(女)’의 사랑을 두 ‘사람(人)’의 사랑으로 승화시킨다.
감독의 다음과 같은 말은 잔잔한 울림을 준다. “인정 받을 수 없는 사랑의 어려움과 그럼에도 모든
[김시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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