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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개봉하는 ‘로봇, 소리’에서 그는 사고로 딸을 잃은 아빠 해관을 열연했다. 29년 연기 인생, 영화로는 첫 단독 주연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원톱 영화로 비춰지길 저어했다. “에이, 주연은 무슨. 진짜 주연은 저기 ‘소리’ 아닌가 싶은데요.” 이날 인터뷰가 치러진 장소 한 켠엔 그와 호흡을 맞춘 첨단 로봇 ‘소리’가 동석했다. “가끔 저 녀석이 오작동 할때가 있었죠. ‘탁’ 하고 치면 다시 작동할 거 같은데, 기술적인 부분이라 그게 안됐죠. 오죽하면 감독님이 ‘너무 그러지 마요’라고 했을까. 허허”
영화는 2003년 대구 지하철 참사 후가 배경이다. 192명의 사망자를 낸 이 사고로 딸을 잃은 아버지 해관(이성민). 10년 째 딸 유주(채수빈)의 죽음을 인정하지 못해 도심을 홀로 배회한다. 그러던 중 해관의 삶에 특이한 로봇 하나가 불쑥 등장한다. 음성만으로 위치를 추적할 수 있는데다, 말도 할 수 있는 첨단 로봇 ‘소리’(심은경)다. 해관은 이 로봇을 데리고 잃어버린 딸의 발자취를 쫓아 방방곳곳을 누빈다.
상대 주연이 로봇인데, 연기에 어려움은 없었을까. 이성민은 “로봇이 오작동할 때 외에는 그다지 어렵진 않았다”고 했다. 다만 “동작이 좌우상하가 다인 데다 표정도 없는 이 기계와 어떻게 조화를 만들어나갈 지는 숙제였다”고 전했다. “해관은 40대 후반, 50대 초반의 대한민국 평범한 중년 남자에요. 조금 보수적이고, 그리 유연하지 않죠. 그런 그가 첨단 로봇을 맞딱뜨렸을 때 그 연배 남자들의 일반적인 반응을 표현해내는 게 만만치 않았지요.”
영화를 찍으며 딸 생각이 안 날수 없었다고 했다. “내 주변 상황을 생각하며 연기한 적 별로 없다던”던 그는 이번엔 조금 달랐다고 한다. “워낙 끔찍한 사고가 배경인지라 그런 상상 자체가 싫었지만, 시간이 흘러 저도 모르게 딸 생각하며 감정 이입하게 되더군요. 딸이 잘 때 방문 열고 들어가면 입맞춤 해주고 이불 덮어주고 하는, 부모의 본능이 촬영 속에 발휘됐다랄까요. 아들은 없어서 잘 모르겠는데, 딸은 좀 특별한거 같아요.”
그런 그의 딸은 이제 중학교 2학년, 영락없는 사춘기 소녀다. 그래서일까. 부녀 간에 티격태격 하기 일쑤란다. “15살 소녀와 50살 된 아저씨가 말싸움을 해요. 사소한 걸로 격렬하게. 이따금 ‘내가 왜 이러고 있지’ ‘쟤는 뭔 배짱으로 이 나이 많은 아빠랑...’ 하고 생각할 때가 있죠. 딸이 그래도 여자인지라 제가 무조건 지죠. 아빠 딸인데, 논리로도 안 돼, 중학생한테, 제가 말을 못하는 건지 허허...”
그는 경북 봉화의 산골 출신이다. 우연히 접한 연극에 빠져 극단생활을 한 게 배우 인생 시작이지만, 30여 년 중 27년이 무명이었다. 연기자에게 ‘알려지지 않음’은 죽음보다
[김시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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