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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볼티모어에 있는 피바디 도서관 |
“나의 문학 행위는 답이 아니라 물음이다. 다 속없는 질문이며 덧없는 의문이다.” 문학평론가 김현의 유고집 ‘행복한 책읽기’(문학과지성사)에 나오는 대목이다. 문학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책읽기 또한 답을 찾는 행위가 아닐지언정, 끊임없이 질문을 계속하는 황홀한 행위임을 부정할 순 없을 것이다.
매일경제와 교보문고는 전문가들 도움을 받아 2016년을 여는 5가지 키워드를 선정했다. 불안의 시대, 빅퀘스천, 혐오와 수치심, 읽는 인간, 장소의 재발견이 그것이다. 이 키워드를 담아낸 책 50권도 가려뽑았다.
첫번째 키워드는 불안의 시대다.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불안과 혼돈의 시대가 이어지고 있다. ‘타임 푸어’와 ‘공부의 배신’은 근대적 문명의 산물인 노동과 교육이 어떻게 우리의 일상을 배반하는지 고발하는 책이었다. 최재천 국립생태원장은 과학서가 아닌 교육에 관한 ‘공부의 배신’을 추천했다. “전례 없는 교육의 위기 그 실체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책. 교육으로 우뚝 선 대한민국에 보내는 경종은 그래서 더 심각하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과 ‘가난은 어떻게 죄가 되는가’는 저성장의 시대의 이면을 섬뜩하게 들여다보는 책이다. ‘메이블 이야기’는 자신의 상처를 사나운 매를 키우며 다스리는 과정을 경이롭게 기록한 논픽션. 치유의 글쓰기가 무엇인지 보여준다. ‘인간의 품격’을 배철현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는 “우리가 사는 인간공동체를 건강하고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자신의 이력서뿐만 아니라 자신이 죽고난뒤 추도문에 무엇이 쓰일지 고민해야한다는 점을 일깨워 준다”고 추천했다.
‘빅퀘스천’을 통해 과학과 역사를 아우르고, 신과 인간의 존재에 관한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는 책도 많았다. 김대식과 배철현, 유발 하라리와 아툴 가완디, 랜들 먼로는 올해 출판계가 발굴한 신성이다. 홍순철 북칼럼니스트는 ‘사피엔스’를 “인류의 역사와 미래에 대해 조망해보는 역작”이라고 추천했다. 삶과 죽음의 의미를 되돌아본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이정모 서대문자연사박물관장은 “우리가 언젠가는 반드시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라면 대체 무엇을 위해 끔찍하고 고통스러운 의학적 싸움을 벌여야 하는지 묻는 책”이라고 추천했다. 2000년전 로마, 한세기전 일본의 문제적 인간들을 통해 과거의 지혜를 길어오는 ‘로마의 일인자’와 ‘도련님의 시대’도 많은 추천을 받았다.
‘혐오와 수치심’으로 돌아볼 수 있는 한해였다. ‘헬조선’과 ‘금수저와 흙수저’란 말이 유행했다. 이런 사회적 혐오감의 만연을 읽어낼 수 있는 탁월한 책이 국내 초역된 마사 너스바움의 ‘혐오와 수치심’이다. ‘사람, 장소, 환대’는 신형철·강동호 평론가 등 가장 많은 전문가의 추천을 받았다. 강동호 평론가는 “세가지 개념을 바탕으로 우리 사회에 필요한 정치적, 윤리적 가치에 대해 매력적으로 기술한 책. 인문학적 사유의 깊이와 저자의 뛰어난 문체 역시 매력적”이라고 추천했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탁월한 논픽션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는 노벨문학상을 통해 국내에 소개됐다.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는 여성혐오가 만연한 사회에 경종을 울렸고, ‘한국이 싫어서’는 젊은이들의 희망이 사라져가는 사회의 이면을 소설로 날카롭게 그려냈다.
‘읽는 인간’은 일본의 문호 오에 겐자부로의 자전적 에세이다. 쓰는 사람이 되기 위해, 먼저 그는 읽는 인간이 되어야했다. 한해동안 쏟아진 많은 뛰어난 문학 작품들은 왜 우리가 ‘읽는 인간’이 되어야하는가에 대한 대답과도 같았다. ‘스토너’‘몸의 일기’‘우리가 볼 수 없는 모든 빛’ 등은 번역소개된 최고의 문학 중 하나였다. 새로운 방식의 글쓰기를 보여준 엠마뉘엘 카레르의 ‘리모노프’를 김연수 소설가는 “이 세계 자체가 하나의 허구라면? 오랫동안 소설을 쓴 사람이라면 거기까지 가게 된다. 그 다음에는 현실을 허구처럼, 혹은 허구를 현실처럼 쓰게 되리라”라고 추천했다.
많은 시집이 베스트셀러가 됐고, 젊은 시인들이 활약한 한해이기도 했다. 돌아온 시의 시대를 맞아 읽은 만한 시집으로 김사인의 ‘어린 당나귀 곁에서’, 황인찬의 ‘희지의 세계’, 송승언의 ‘철과 오크’ 등을 추천한다. 이성복의 시론집으로 묶여나온 ‘무한화서’를 정과리 평론가는 “시적 영감의 보고”라고 단호하게 추천했다.
<어떻게 선정했나>
매일경제와 교보문고가 ‘2016년을 여는책’을 선정하는 작업은 올한해 키워드 5가지를 정하는 작업부터 시작됐다. 선정된 키워드에 어울리는 책 선정 작업은 올해 1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 출간된 모든 책을 대상으로 이뤄졌다. 1차설문은 문학 인문 경제 역사 정치 실용 과학 등 각 분야 전문가 15명과 현장에서 독자들을 만난 교보문고 MD를 대상으로 실시됐다. 이렇게 추려낸 책이 총 91종이었다. 설문 결과를 놓고 매일경제 문화부와 교보문고가 수차례 토론을 거친 끝에 복수추천된 책 50종을 선정했다. 선정된 책은 매일경제 지면에 소개됨과 동시에 교보문고 온·오프라인 매장에 마련되는 특설 매장에서 독자들과 만나게된다.
◆추천인=최재천 국립생태원 원장, 배철현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 장석
[특별취재팀 = 이향휘 기자 / 김슬기 기자 / 김유태 기자 / 김시균 기자 / 오신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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