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금빛나 기자] “저는 남에게 피해를 주면서까지 하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제게 있어 가장 위대한 사랑은 어머니들이 자녀를 돌보는 사랑, 그 희생적인 사랑을 무시하고서는 사랑을 논할 수 없다고 봐요.”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는 배우 정동화의 말의 온도는 따듯했다. 뮤지컬 ‘위대한 캣츠비:리부트’(이하 ‘위대한 캣츠비’)에서 마음 착하고 순수한 청년 캣츠비 역을 맡은 정동화는 극중 캣츠비와 모든 것이 일맥상통하지 않겠지만, 그가 가지고 있는 착한 성품과 사랑만큼은 비슷해 보였다.
청춘들의 지독하게 아픈 순정을 노래하는 ‘위대한 캣츠비’의 사랑은 지나치게 다양하고 복잡하며 어렵다. “사람들이 이 작품을 보며 막장이다라는 말을 한다. 하지만 막장이 아닌 사랑이 있을까”라는 원작웹툰 작가 강도하의 변론에도, 관객으로서는 각각의 인물들이 쏟아내는 사랑의 감정들이 어렵기만 하다.
이는 연기하는 배우들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위대한 캣츠비’는 배우들에게 신체적인 액션을 요구하지 않는 반면 많은 감정의 소모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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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적으로 어려운 점은 없었어요. ‘위대한 캣츠비’보다 더 격했던 작품들도 많이 했었고, 무대 적응도 생각보다 빨리 됐었거든요. 다만 정신적으로는 어려웠죠. 공감을 하면서 작품에 임해야 덜 힘든데, 각 인물들의 행동에 있어 이해는 가지만 그럼에도 납득은 안 되는 지점들이 있었기 때문이죠. 그리고 솔직히 관객들이 의아해 한다든지 이해를 못한다는 공기들이 느껴지거든요. 아무래도 객석의 느낌을 받지 않을 수 없는데, 이런 감정들을 안고 작품을 이끌고 가다보니 아쉽고 속상한 것들이 있죠.”
‘위대한 캣츠비’를 관람하는 데 있어서 어려운 점 중 하나는 캣츠비와 그의 전 여자친구 페르수, 하운두를 둘러싼 관계와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결말이다. 친구의 여자를 탐하는 하운두나, 하운드를 피하기 위해 돈 많은 남자와 결혼했다가 결국 그의 아이를 임신한 채 다시 캣츠비에게 돌아가는 페르수, 그리고 이들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캣츠비까지. 관객들로서는 음악 속에서 빠르게 펼쳐지는 이들의 자극적인 사랑을 쉽게 공감하기 어려운 지점이 있다.
“사실 저희도 연습 과정 중에 우려가 많았어요. 과연 관객들과 쉽게 소통을 하고 공감을 형성할 수 있을까 걱정을 많이 했죠. 사실 생각해보면 원작에서 다루고 있는 사랑이 현실에서 일어나는 사건보다는 낮은 수위에요. 뉴스를 보면 사랑 때문에 상대방을 폭행하고 심지어는 살인까지 일어나잖아요. 그럼에도 공감하는 부분에 있어서 쉽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들죠. ‘위대산 캣츠비’ 이야기 자체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가 아닌데 풀어가는 방식이 다소 어렵지 않나 생각해요. 몽부인이라는 인물이 등장하면서 헷갈리는 것이 있는데, 방해 아닌 방해를 하는 부분이 있어, 저도 그 부분이 아쉽기는 해요. 조금 더 관객과 소통하고 공감할 수 있도록 바뀌었으면 어떨까 생각은 했죠.”
이 같은 걱정 속에서도 그가 ‘위대한 캣츠비’에 출연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작품이 송스루 뮤지컬이었기 때문이었다. 지금까지 송스루 작품을 해본 적이 없었던 정동화에게 ‘위대한 캣츠비’는 매력적으로 다가왔고, 그렇게 그는 작품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위대한 캣츠비’에서 캣츠비가 된 정동화는 꿈을 저버린 채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20대 청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포기하지 않는 캣츠비를 보여주기 위해 열심히 움직이고 있다. 그런 그의 연기를 보면서 문득 궁금해졌다. 정동하는 ‘위대한 캣츠비’가 말하는 ‘사랑은 막장’에 대해 얼마나 공감하고 있으며, 캣츠비와 같은 상황에 놓인다면 과연 어떤 선택을 했을까.
“저는 반대에요. 정말 반대에요. 사실 남에게 피해를 주면서까지 하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만약 제가 캣츠비였다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글쎄요, 사실 저도 정확히는 잘 모르겠어요. 다만 저는 이미 결혼도 했고 아이도 있고, 그래서 캣츠비와 같은 선택은 어려울 것 같아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두근거리는 풋사랑의 단계도 있었고, 사경을 헤맬 정도로 처절한 사랑도 해 봤죠. 그리고 그 모든 것이 지나고 나니 더 위대한 사랑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뜨거운 사랑 이후 깊고 위대한 사랑이 있었던 거죠. 제가 캣츠비와 같은 선택을 하지 않는 건, 그들의 뜨거운 사랑이 제게 있어서는 진정한 사랑이 아니기 때문이죠. 제게 있어서 가장 숭고하고 위대한 사랑은 결혼 이후에 가족을 만들고 일과 함께 늙어가고 자녀를 보살피고 그 사랑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그 사랑을 무시하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이 세상 모든 사랑 중에서 자식을 향한 어머니의 사랑이 가장 위대하다고 말한 정동화는 실제로 아이를 만나기까지 얼마 남지 않은 ‘예비아빠’이다. 이제 곧 태어날 아이에 대해 언급하자 정동화는 기다렸다는 듯 초음파 사진을 보여주더니 “우리 아이 정말 예쁘지 않느냐. 정말 인형 같다. 정말 이대로만 태어나 준다면 좋겠다”라며 귀에 걸린 미소를 내릴 줄 몰랐다. 벌써부터 ‘자식바보’의 기운이 스물 스물 풍겨난다.
정동화와 함께 이야기 하면서 가장 크게 느꼈던 부분은 그가 따뜻한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물론 짧은 시간동안 한 사람에 대해 모든 것을 알기는 어려운 일이지만, 사랑에 대한 진지한 이야기 속에서 잠시나마 진솔한 인간미를 엿볼 수 있었다.
“저는 더 나은 삶을 지향하는 사람 중 하나에요. 어떤 유혹거리들을 배제하는 스타일이죠. 여지를 남기고 싶지도 않고, 그런 부분에 있어서 아예 시도조차 안 하는 스타일이에요. 영원한 것을 잡고 싶지 순간적인 것을 잡고 싶지 않아요.”
그래서일까. 정동화는 결혼 이후 여자 배우보다 남자 배우와 더 자주 연인 호흡을 맞추는 것으로 유명하다. 여자보다 남자와 키스하는 것이 더 익숙하다고 말할 정도이다. 왜 이렇게 남자들과 호흡을 맞추냐고 물어봤더니, 이 조차 ‘여지’를 주지 않기 위한 그만의 대처 방안이었다. 남자 배우와는 정분이 생길 일이 절대 없기 때문이란다.
인터뷰 내내 밝게 웃었던 정동화는 주위 사람들로부터 애교가 많은 배우로도 유명하다. 이에 대해 언급하니 딱히 부정하지 않는다.
“이게 한 사람을 깊이 사랑을 하다 보니 애교가 많진 것 같아요. 저는 누군가에게 잘 보기기 위해 애교를 부리는 것이 아니에요. 그냥 성격일 뿐이죠. 자신을 어필하기 위해서 하는 애교는 진짜 애교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진정한 사랑을 하면서 애교가 더 많아졌고, 삶 안에서 점점 더 애교가 많이 늘어가는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런지 지금까지 제가 연기했던 작품 중에서 연극 ‘프라이드’의 올리버가 저와 제일 비슷한 것 같아요. 과거 말고 현대의 올리버요. 감정에 대해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 닮은 것 같아요. 그동안 저를 오랫동안 많이 봐 주셨던 분들 역시 올리버가 잘 맞았다고 말을 해 주시기도 하고…덕분에 즐겁게 연기를 했던 것 같아요.”
정동화의 2015년은 무척이나 바빴다. 뮤지컬 ‘쓰릴미’에서부터 ‘난쟁이들’ 연극 ‘엠버터플라이’ 뮤지컬 ‘신과함께-저승편’ 연극 ‘프라이드’ 뮤지컬 ‘위대한 캣츠비’에 ‘바람직한 청소년’까지 그야말로 쉬지 않고 달려왔다. 혹시 올 한 해 출연한 작품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이 있느냐는 질문에 정동화는 “모두 다 기억에 남는다”고 답했다. 군 제대이후 쉬지 않고 작품을 하고 싶다고 소원했던 만큼, 바쁘게 달려온 현재에 불만을 가질 이유가 없기 때문이었다.
“배우로 활동하면서 이른바 좌우명이 있어요. ‘지나간 공연과 캐스트는 돌아오지 않는다. 그러니 후회 없이 달리자’ 저도 사람인지라 두 세 작품을 하다보면 힘들기도 하죠. 그럴 때마다 계속 생각을 해요. 시간 지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닐 것이라고. 열손가락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 없다고 하잖아요. 제게 있어 모든 공연들이 그래요.”
2016년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새로 맞이하는 2016년의 목표에 대해 정동화는 “기회가 된다면 고전미가 있는 대극장 작품을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아무리 좋은 작품의 제안이 와도 시기가 안 맞으면 모든 것은 물거품이 되는데, 모든 것이 잘 맞았으면 좋겠어요. 그렇다고 대학로를 떠나고 싶은 건 아니에요. 대학로는 제게 있어 제2의 고향이거든요.”
유쾌했던 모든 대화를 마치고, 떠나기에 앞서 정동화에게 배우로서의 목표, 그리고 인간 정동화의 목표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배우로서 목표는 오래 연기하는 것이고, 그 목표보다 조금 더 큰 인간 정동화로서의 목표는 누구에게도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는 것이죠. 저희는 활동을 안 하면 금세 잊히고 말죠. 작품을 통해 꾸준히 오랫동안 관객 분들과 만나고 싶어요.”
금빛나 기자 shinebitna917@mkculture.com /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bnstar7 디자인=이주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