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금빛나 기자]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가 무대 위에서 다시 피어났다. 영화 속 메시지가 남겨주는 감동은 그대로 남기면서도 뮤지컬이 전해주는 음악의 감동과 무대화의 재미는 살린 뮤지컬 ‘공동경비구역 JSA’는 웰메이드라는 호평을 받으며 많은 뮤지컬 관객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뮤지컬 ‘공동경기구역 JSA’의 전체적인 스토리는 영화의 기본 뼈대를 그대로 차용한다. 1994년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내 돌아오지 않는 다리 북측 초소에서 북한의 초소병 정우진이 총상을 입고 살해되고, 오경필 중사는 부상을 입게 된다. 유일한 목격자이자 유력한 용의자인 남한의 이수혁 병장은 사건에 대해 묵비권을 행사하고, 이에 북한은 남한의 기습테러공격으로, 남한은 북한의 납치설로 각각 엇갈린 주장을 내놓는다.
첨예한 대립으로 중립국 감독 위원회에서는 책임수사관으로 한국계 스위스인인 군정보단 소령 베르사미를 파견한다. 베르사미는 인민군 장교출신인 아버지와 스위스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인물로, 사건 속 숨겨진 진실을 밝혀내기로 결심한다. 베르사미의 진심에 김수혁은 정우진, 오경필 중사 사이 벌어졌던 이야기를 털어놓고, 관객들은 그렇게 남과 북, 금기를 넘어선 애틋한 우정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현재와 과거를 교차하며 극을 전개해 나가는 ‘공동경비구역 JSA’의 무대는 무척이나 단출하다. 무대 위에 놓인 책상은 현재에서는 베르사미의 집무실이, 과거에는 김수혁, 정우진, 오경필이 우정을 쌓아가는 장소가 되기도 한다.
무대 전환도, 암전도 최소화한 ‘공동경비구역 JSA’는 그 빈 구역을 조명으로 가득 채웠다. ‘공동경비구역 JSA’는 빛을 최대한으로 활용한 공연 중 하나이다. 무대 위와 양 옆, 다양한 방향에서 나오는 조명들은 각 인물과 사건들을 부각시키며 관객들을 극으로 빠져들게 한다. 조명에 따라 무대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베르사미의 환상 속 세계를 구분하는 장치가 돼 준다.
조명으로 ‘공동경비구역 JSA’의 세상을 만드는 김영빈 조명디자이너와 만나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 조명과 무대, 함께 만들어 나간 뮤지컬 ‘공동경비구역 JSA’
간소한 무대와 무대를 가득 채우는 조명은 비극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었던 극의 인과 관계를 뚜렷하게 보여주면서 극의 설득력을 더하고 있다. ‘공동경비구역 JSA’가 이른바 ‘비움’과 ‘채움’의 균형을 이룰 수 있었던 데에는 조명팀과 무대팀의 화합이 있었다. 처음 기획단계에서부터 무대팀과 만나 끊임 없는 이야기와 합의를 이뤘기 때문이었다.
“‘공동경비구역 JSA’는 드라마가 강한 극이다. 처음 ‘공동경비구역 JSA’가 공연됐던 피콜로 극장은 지금 공연이 되고 있는 대명아트센터보다 더 아담하고 작은 소극장이었다. 장면은 계속 바뀌어야 하는데 공간적인 한계가 있고, 그래서 처음 무대 디자인 회의 때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조명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처음부터 디자인 콘셉트 회의에 참여해서 만들어가는 경우가 있고, 두 번째는 연출과 무대 디자인과 만든 이후 투입하는 경우가 있다. ‘JSA’는 처음부터 어떻게 조명을 꾸밀 것인가 연출과 디자이너와 만나서 이야기를 많이 했었다. 그때 가장 많은 이야기가 나왔던 것이 최대한 무대를 비우고 대신 다양한 각도의 라이트를 썼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공동경비구역 JSA’는 무대의 변화가 없는 만큼 연극적인 약속들이 많이 필요로 하는 극이다. 이러한 연극적인 약속은 ‘공동경비구역 JSA’의 조명을 통해 더욱 빛을 발하게 됐다.
“무대 전환이나 극적인 변환 없이 장면들이 바뀌는 것이다. 취조실이라고 해서 갑자기 세트가 나오는 것이 아니라 상징적인 탁자가 나와서 갓등과 어우러지는 공간을 만들고, 조명을 통해 남과 북, 사실적이지 않은 베르사미의 의식 속 공간을 만드는 것이다.”
극에서 가장 눈길을 모으는 조명 중 하나는 바로 베르사미의 의식세계를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취조실 위에 놓인 등과 전체 조명은 극의 풍경과 조화를 이루면서 보는 즐거움을 전해준다. 김영빈 조명감독은 이에 대해 “취조실에서 환상공간으로 넘어가는 공간에서 빛의 막을 만든 것이라고 보면 된다. 동승아트센터에서 공연될 때는 이 효과가 크게 나타나지 않는데, 현 공연장으로 오면서 분위기가 제대로 산 것 같다”며 만족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처음에 베르사미에 머릿속에 있는 아버지와 관련된 추억을 무대 위에서 표현하고 싶었다. 이와 관련한 일화가 있다. 공연 준비를 한창 하는데 베르사미 역을 연기하던 임현수 배우가 저에게 다가오는 것이었다. 그러더니 ‘덕분에 연기하기가 너무 편해졌다. 연기하기 어려웠던 장면인데 조명의 도움을 받아 조금 더 풀 수 있었다. 고맙다’고 말해주는데…그 따뜻한 한 마디가 얼마나 힘이 났었는지 모른다.”
◇ “공연이 좋아 시작한 일, 이제는 운명이다”
무대를 만들어 나감에 있어 조명과 무대 세트간의 팀워크는 무척이나 중요하다. 무대 위 극의 리얼리티를 더하기 위해 최대한 세트를 세우고자 하는 무대팀과, 각 공간에 빛을 전해주기 위해 굴곡과 막힘 여부가 중요한 조명팀과 무대를 만들어 감에 있어 간혹 의견충돌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공간과 빛의 협력을 이룬 ‘공동경비구역 JSA’은 어떠했을가.
“물론 부딪칠 때는 있었다. 무대 장치 설치가 늦어지거나, 촉박하게 공연을 준비를 할 때 서로 예민해 지면서 갈등이 생기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좋은 공연을 만들자’라는 공동의 목표를 가지고 모인 사람들이지 않느냐. 무대만 좋다고 조명만 좋다고 좋은 공연은 아니다. 예전에는 다른 사람들이 ‘조명 좋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내가 조금 했나’싶었는데 이제는 그게 마냥 좋은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다. 모든 것이 어우러져야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김영빈 조명디자이너는 지금까지 했던 작품 중 인상 깊은 작품으로 현재 공연 중인 ‘공동경비구역 JSA’와 더불어 과거 학생들과 함께 했던 뮤지컬 ‘지붕위에 바이올린’을 꼽았다.
“상업극은 아니고 중앙대학교 국악대 학생들과 함께 작업했던 뮤지컬 ‘지붕위에 바이올린’을 각색한 작품이 생각이 난다. 그 당시 무빙을 쓴 것도 아니고 활용 했던 장비 또한 다양하지 않았음에도 무척 좋았다. 물론 상업극에 비해서는 퀄리티는 떨어질지 모르겠지만, 한국적인 정서 때문인지 며칠 안 했는데도, 거의 5~6년이 지났음에도 잊히지가 않는다.”
김영빈 조명 디자이너가 공연계에 뛰어든지 어연 10년이 지났다. 10년 전 평범한 직장인이었던 김영빈 조명 디자이너는 공연과 만나 사랑에 빠졌고, 이후 운명처럼 그 길로 뛰어들게 됐다.
“공연이 좋아서 시작을 했다. 저는 사실 이 일을 늦게 시작한 편이다.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계속 공연을 보러 다녔는데, 어느 날은 작품을 보다가 ‘내가 공연을 위해 잘 할 수 있는 것이 있을까’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제 전공이 전기공학 분야였는데, 조명이나 이런 부분에서 도울 수 있지 않을까 싶은 마음이 들더라. 그래서 조명과 관련해 공부가 하고 싶어졌고, 어떻게 하면 할 수 있게 될까 찾다가 무대예술 아카데미라는 곳을 알게 됐다. 지금은 비록 그 아카데미가 사라졌지만, 그 곳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그때 함께 배웠던 친구들과 팀을 만들었는데, 지금 제가 몸담고 있는 디자이너 그룹 스테이지워크(STAGEWOKRS)다. 어느덧 10년이 넘었는데, 저 뿐 아니라 팀원 모두 굉장히 활발하게 활동을 하로 있다. 저희 팀의 친구들 면면도 다양하다. 화학과를 다니다가 갑자기 공연을 보고 조명이 마음에 들어서, 전공을 틀어 유학을 갔다 온 후 활동하는 친구들도 있고, 공연 동아리 활동을 하다가 아예 직업을 삼은 경우도 있다.
공연을 사랑해서 이를 직업으로 삼고 이제는 소명이 된 김영빈 디자이너가 바라는 미래의 꿈은 ‘좋은 조명 디자이너’가 되는 것이었다. 그런 그에게 앞으로의 꿈과 목표에 대해 물었다.
“목표라면 좋은 작품을 만나서 활동하는 것이죠. 언제 어디서나 작품과 어우러질 수 있는 더 좋은 조명디자이너가 되고 싶은 것이 꿈이예요.”
금빛나 기자 shinebitna917@mkculture.com /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bnstar7 디자인=이주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