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금빛나 기자] 브라운관에서 활약하던 배우 남보라가 연극 무대에 출사표를 던졌다. 중극장 연극 ‘택시 드리벌’로 연극이라는 영역에 처음으로 발을 내딛게 된 남보라의 각오는 남다르다. 비록 부족한 것도 많고 배워나가야 할 것도 많지만, 최선을 다해 발전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는 욕심과 운명처럼 다가온 연극인만큼 사명감을 동시에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감독 장진의 대표적인 작, 연출극인 ‘택시 드리벌’은 택시 기사인 덕배의 하루를 통해 팍팍한 도시에서 살아가는 현대 소시민의 군상을 유머러스하게 표현한 코미디 연극이다. 11년 만에 김수로 프로젝트로 다시 태어난 ‘택시 드리벌’에서 남보라는 비운의 첫사랑 화이가 됐다.
“늘 연극 무대에 오르고 싶었던 차에, 운 좋게 기회가 왔죠. 연극을 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하지만, 한 편으로는 관객들과 직접 만난다는 것에 긴장이 많이 돼요. ‘택시 드리벌’이 공연되는 연강아트홀의 객석이 총 600석인데, 이 600석이 꽉 찬다는 가정 하에 10번만해도 6천명의 관객들과 만나는 셈이잖아요. 심지어 연극은 방송이나 영화와 달리 중간에 편집도 안 되는 살아있는 라이브 무대에요. 작은 실수까지도 보일 수 있기에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는데, 그럼에도 공연을 보고 좋아해주시는 관객들을 보면서 힘을 얻을 때가 많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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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정일구 기자 |
연극무대에 처음 선 남보라가 처음 해결해야 할 과제는 무대 발성과 굵직하면서도 섬세한 감성연기였다.
작은 표정과 숨소리 모두 담을 수 있는 기술이 개입되는 영화·드라마의 연기와 배우의 목소리와 연기만으로 모든 메시지를 전달해야 하는 연극에서 필요로 하는 연기는 다를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연극에서 주로 활동했던 배우들은 카메라 앞에서 ‘목소리를 줄이고 최대한 자연스럽게 행동해 달라’고 지적을 받고, 반대로 영상 쪽에서 주로 활동했던 배우들은 기존에 선보였던 방식과는 전혀 다른 발성과 감정전달법을 요구받게 된다. 이는 남보라도 마찬가지였다.
“방송에서 중요한 장면은 클로즈업으로 얼굴 표정 조금만 움직여도 보이는데, 연극은 그게 아니잖아요. 넓은 무대에서 섬세한 감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좋을지 여전히 공부 중이에요. 한숨을 쉬는 연기도 방송에서는 ‘하’라고 짧게 내뱉으면 되는데, 무대에서는 ‘하아’라고 크게 내뱉어도 안 들린다고 하시는 분이 계세요. 이러한 작은 감정들은 어떻게 표현해야 될까 여전히 어려운 것 같아요. 소리 전달도 마찬가지에요. 아무리 대사를 전하는 감정이 좋더라도 소리조절이 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며 많은 선배들이 조언해 주시더라고요. 무대에 오를 때마다 제 작은 숨소리마저 객석 끝까지 닿을 수 있도록 해야겠다 생각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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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정일구 기자 |
연극을 통해 다시 한 번 연기에 대해 공부하고 있다고 고백한 남보라는 ‘택시 드리벌’를 연기하는 지금이 마치 대학교 입시를 준비했을 때의 느낌과 비슷한 것 같다며 웃었다.
“모든 고3들이 그랬던 것처럼 저도 정말 힘들었는데, 그래도 그때 했던 것들이 지금의 연기 생활을 하는데 도움이 많이 됐어요. 지금의 남보라를 있게 해준 셈이죠. ‘택시 드리벌’ 역시 제 연기 인생에 다시 한 번 밑바탕이 돼 주는 작품이 될 것 같아요. 지금 받고 있는 이 에너지들을 잊지 않고 유지한다면 언젠가 큰 밑거름이 돼 줄 것이라고 믿고 있어요.”
‘택시 드리벌’에서 남보라가 연기하는 화이는 적은 분량임에도 관객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긴다. 수십 년 전 저수지에 빠져 죽은 화이는 덕배의 마음속에 살아남아 때로는 아름답고 순수하게, 또 때로는 가슴 아플 정도로 툭 튀어나와 애절한 존재감을 발산하기 때문이다.
“화이를 연기하는 게 쉽지 않아요. 관객들이 한참 웃고 있을 때 갑자기 툭 튀어나와 분위기를 순식간에 바꾸기 때문이죠. 중간 중간에 나타날 때마다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스러워요. 다른 배우들처럼 웃길 수는 없고, 그렇다고 너무 죽은 사람처럼 하면 감정교류가 없을 것 같고…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어쨌든 화이는 덕배의 기억 안에서 행복했던 시절의 인물이라는 거죠. 슬픔을 가지고 있는 캐릭터지만 최대한 밝고 행복하게 그리고자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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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정일구 기자 |
앳된 얼굴의 남보라지만, ‘택시 드리벌’ 세 명의 화이 중 가장 맏언니다. 다른 화이들과 친하게 지내느냐 물어보았더니 “‘택시 드리벌’에서 화이들이 가장 젊은데, 어린 막내들이 많이 힘들어 하더라”고 털어놓았다. 여전히 어려보이는 남보라이지만, 동생들을 생각하는 모습이 제법 어른스러움이 묻어 나와 보였다.
부쩍 성숙해진 것 같다 느꼈더니, 외모와는 다르게 어느덧 나이가 27살, 20대 후반에 접어들었다. 2006년 시트콤 ‘웃는 얼굴로 돌아보라’로 연예계에 발을 내딛은 남보라는 10년을 한 해 앞두고 혹독한 ‘아홉수’를 겪었다. 처음 주연으로 나선 드라마 ‘내마음 반짝반짝’은 시작 전 주연배우 교체 논란에, 방영 내내 저조한 시청률을 벗어나지 못했으며, 심지어 기존에 계획된 횟수의 반 밖에 채우지 못한 채 막을 내리는 조기종영의 아픔을 겪었다.
폭풍 같은 시간이 지나간 뒤 남보라는 잠깐의 휴식기 동안 대학도 졸업하고 부지런히 여행도 다니며 마음을 비워나갔다. 그리고 그녀의 말마 따라 운명처럼 ‘택시 드리벌’을 만나게 된 남보라는 그 빈 공간을 새로운 연기를 채워나갈 예정이다.
“올해는 제게 있어서 유독 길었던 것 같아요. 27살이라는 나이가 이상하게 다가오는 것 같아요. 25살까지 마냥 천진난만했다면, 지금은 뭔가 제 나이에 책임도 져야하고, 준비해야 할 것 같아요. 바라는 것이 있다면 서른이 됐을 때 우왕좌왕하기 않고 저를 잘 다독여서 좋은 미래를 맞이했으면 해요.”
금빛나 기자 shinebitna917@mkculture.com /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bnstar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