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금빛나 기자] “연극 ‘프라이드’는 어려운 연극이 아니에요. 오히려 명확하죠. 동성애는 소재일 뿐, 예전에 목소리를 냈던 사람들 덕분에 우리는 조금 더 나은 세상에서 살고 있고, 여전히 우리는 앞으로를 위해 각자의 프라이드를 지키면서 계속해서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거예요.”
배우 강필석은 괜히 ‘믿고 보는 배우’가 아니었다. 작품을 향한 강필석의 진지한 고민과 파고듦, 그리고 이를 통한 이해와 깨달음은 단순히 그가 ‘연기 잘 한다’를 넘어 자신이 연기하는 인물에 대한 강력한 설득력을 전달한다. 강필석의 연기는 눈을 뗄 수 없는 강렬함으로 관객들을 작품 속으로 끌어들이고, 어느덧 관객들은 하나 둘 씩 그의 연기에 설득당하고 만다.
‘믿고 본다’고 정평이 난 강필석이 현재 관객들과 마주하고 있는 작품은 1958년과 2015년을 살아가는 동명의 인물 필립·올리버·실비아를 통해 사랑과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을 담담하게 그려낸 연극 ‘프라이드’다. ‘프라이드’는 결코 쉬운 극이 아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참으로 불친절한 극에 가깝다. 러닝타임은 무려 3시간이나 되며,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극의 구성방식은 처음 본 관객들로 하여금 혼란을 주기도 한다. 극중 인물들이 보여주는 감정의 폭은 어찌나 큰지 이들의 감정변화를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바쁘며, 대사나 상황에 따라 수위 또한 높아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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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이드’의 대본을 읽으면서 상당히 좋은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쉬운 극이 아니라서 끌리는 건 있었어요. 그럼에도 출연을 놓고 처음 잠시 멈칫했던 것은 수위 때문이었어요. 사실 초연 때 출연제안이 제안이 들어와 원작 대본을 읽어봤는데 특정 장면(1막 엔딩에서 필립이 올리버를 겁탈하는 장면)의 수위가 너무 높은 거예요. 이 장면 때문에 못 하겠다고 생각했었죠. 하지만 작품이 주는 메시지가 모든 것을 뛰어넘을 정도로 좋았고, 결국 재연에 와서 참여를 결정했어요.”
‘프라이드’에서 강필석이 연기하는 인물은 필립, 감정의 변화가 가장 극적인 캐릭터이기도 하다. 1958년의 필립은 자신의 신념과 가족, 그리고 가진 모든 것을 지키기 위해 정체성을 부인하다가 무너진다면, 2015년의 필립은 잠시 눈만 돌리면 다른 남자와 붙어나는 경거망동한 남자친구 올리버로 인해 마음고생을 한다. 이 같은 인물의 변화와 감정의 폭을 소화하는 것이 때로는 힘들지 않느냐는 질문에 강필석은 “생각보다 재밌다”라며 웃었다.
“1막이 끝나고 난 뒤는 정말 힘들어요. 행위가 아닌 관계와 감정에 초점이 맞춰지면서 원작에 비해 수위가 낮아졌지만, 그럼에도 1막의 마지막 장면에 가면 언성이 높아지고 극한의 감정으로 가기 때문에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어렵죠. 아마 체력적으로 당하는 올리버들은 더 지칠 거예요. 그럼에도 이 연기가 즐거운 이유는 극이 각 인물들의 ‘힘듦’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의 일에 대해서 우리가 어떻게 될지 기다려보자’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던지고 막을 내려기 때문이죠. 해피엔딩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더 좋아질 것이라는 가능성을 남기고 이야기가 끝나서 개인적으로는 기뻐요.”
‘프라이드’는 시간이 흐름에도 변하지 않는 성적소수자들의 편견과, 이를 맞서는 이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동성애를 죄악시 하는 1958년은 물론이고, 과거에 비해 권리가 높아진 2015년에 와서도 편견은 존재한다. 예를 테면 미국드라마 ‘섹스인더시티’를 본 수많은 여자들이 게이인 남자친구와 쇼핑을 다니는 판타지를 꿈꾸는 것과 같은 사소한 것에서부터, 여전히 사회에 존재하는 혐오의식 등 말이다. ‘프라이드’에서 그 누구보다 편견에 대해 힘들어 했던 필립을 연기한 강필석에게 ‘편견’에 대해 물었다.
“어렸을 때는 편견이 있었죠. 그런데 나이가 먹고 시간이 흐르면서, 그들 또한 존중받아 마땅한 사람들인데 내가 누군가에게 뭐라 할 권리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물론 여전히 아름답다고 말할 자신은 없지만, ‘프라이드’를 통해 직접 만나보고 대화하면서, 그 누구보다 순수하고 친절하고 예의바르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며 존중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게 됐죠. 누군가를 비난하는 사람은 비난당해 마땅한 사람이라고 봐요. 우리는 누군가를 비난할 권리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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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MBN스타 |
‘편견’과 ‘비난’에 소신을 밝힌 강필석은 ‘프라이드’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었을까.
“어렵게 생각하면 어려울 수 있는데, 저는 개인적으로 어렵다고 생각을 하지 않았어요. 생각보다 명확해요. 각자의 입장에서 개개인의 프라이드를 지켜나가면서 계속해서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것이죠.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것들은 과거 우리를 대신에 용기내 목소리를 내 주었던 사람들 덕분이며,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도 계속해서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극은 말하고 있죠. 1958년에 비교해 봤을 때 2015년의 환경은 훨씬 좋아지고 편해졌지만, 그럼에도 해결되지 못한 차별은 있어요. 이 같은 차별은 소수자들에게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죠. 물론 중간 중간 감정적으로는 도달하기 힘든 지점은 있지만,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있어 어렵지는 않았어요.”
‘프라이드’는 각각 더블캐스팅으로 돼 있다. 강필석이 연기한 필립의 또 다른 캐스팅은 배우 배수빈이다. 같은 역할을 연기하는 배수빈과의 관계는 어떻냐는 질문에 강필석은 “매우 좋다”고 답했다.
“수빈이형은 이번 작품을 통해 처음 만나게 됐는데, 정말 생각이 잘 맞아요. 신기할 정도로 잘 맞아 생각보다도 훨씬 잘 지내고 있고, 상대방에 대한 배려나 성품을 볼 때마다 정말 좋은 배우라는 것이 느껴져요. 수빈이형과 워낙 잘 맞다보니 농담 삼아서 둘이 올려달라고 말하기도 해요. 올리버보다 더 좋아요.(웃음)”
필립의 영혼의 반려자 올리버 역에는 정동화와 박성훈이 맡았다. 캐스팅 별로 매력이 다르다는 것이 공연의 최대 장점, 강필석은 각 올리버들과의 호흡 또한 최고라며 후배 칭찬에 들어섰다.
“동화는 확실히 감각이나 집중력이 좋은 배우에요. 그리고 기본적으로 애교가 정말 많아서, 진짜 웃음이 나올 때가 많아요. 어떻게 보면 올리버가 말도 안 되는 짓을 하는데, 그럼에도 보고 있으면 ‘아이고’하게 만드는, 그런 사랑스러움이 있어요. 성훈이 같은 경우는 허우대 뿐 아니라 감각도 좋아요. ‘리얼’한 감각들이 있어요. 간혹 강한 남자가 나와, 무대 위에서 당황할 때가 있지만 기본적으로 캐치하는 것들이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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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에도 동료 배우들을 향한 강필석의 칭찬과 자랑은 한동안 계속됐다. 동료에 대한 좋은 이야기를 자기 이야기처럼 늘어놓는 강필석을 보면서 그가 후배들에게 존경을 받는 선배이자 좋은 배우임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됐다. 무대 위 매 순간 최선을 다하면서 ‘믿고 보는’이라는 수식어를 따낸 강필석이지만, 최근 필모그라피를 보면 맡은 배역들이 지나치게 진지하고 무게가 있다. 이에 대해 언급하니 강필석은 “그냥 때로는 실없고 진지하게 웃기고 싶기도 하다”며 은근슬쩍 로맨틱 코미디 장르에 대한 욕심(?)을 보이기도 했다.
올해로 연기경력 11년,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데, 강산이 한 번 변하고도 1년이 지난 지금, 강필석 연기에 대해, 그리고 배우로서 자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지금까지 걸어온 길들을 후회하지는 않아요. 연기를 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 분명히 젊었을 때랑은 다른 것이 있어요. ‘얼마나 더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도 해요. 나이가 들 테고, 언젠가는 지금 하는 연기와 다른 연기를 해야 할 것이고…누군가가 나를 찾아주지 않으면 할 수 없는 것이 연기잖아요. 그런 시기가 분명히 올 거예요. 선배들도 어떤 배우든 그 시기가 다 온다고 하더라고요. 그랬을 때 어떻게 해쳐나갈 것인가에 대한 두려움은 있어요. 모든 것에는 할 수 있는 때가 있는데, 요즘은 ‘기다려라’의 때가 아니라 뭔가 ‘해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들어요. 연애나 결혼에 있어서는 ‘아 큰일났구나’라는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웃음)”
연애에 대해 슬쩍 언급한 강필석에게 이상형이 어떻게 되느냐고 물어보았다. 순간 쑥스러워 하던 강필석은 “그냥 선한 사람이 좋다. 웃는 모습이 선한 사람”이라며 호쾌한 웃음을 보였다. 이러다가 혹시 공연과 결혼한 것이 아니냐고 말했더니 “정말 끔직한 소리”라고 딱 잘라 말한다.
올해는 결혼하기 힘들 것 같다고 장난스럽게 말한 강필석에게 남은 하반기의 목표에 대해 “공연 열심히 하기”라고 밝혔다.
“배우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사람이잖아요. 그런 배우가 되고 싶어요. 오래 남는 배우가 되고 싶고, 좋은 배우가 되고 싶어요. 제일 바라고 원하는 것은 같이 하는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좋은 배우가 되는 것이에요.”
금빛나 기자 shinebitna917@mkculture.com /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bnstar7 디자인=이주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