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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은 인간의 문명을 상징하는 재료다. 산업화와 서구화를 의미하기도 한다. 종이에 자연적인 재료인 먹으로 일필휘지의 기운을 담는 동양화와 철이 만나면 어떻게 될까. 한국화가 조환(57)은 이 낯선 조합의 미학을 추구한다. 그는 1980~90년대 수묵 인물화로 왕성한 활동을 펼치다가 2000년대부터 철판을 자르고 용접해 사군자 형상을 빚는 조각과 설치 작업을 선보이고 있다. 먹의 깊이감과 모필의 강한 필력을 철이라는 재료로 대신하고 여기에 공간의 여백을 포용하여 한국적 정서와 정신성을 강조한다.
그가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인근 한원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연다. 대형 그림자 설치 작업을 포함해 총 18점을 선보인다. 이번 전시에선 철로 표현한 대나무 신작 앞에 흰 천을 세워 관람객에게 작품의 그림자를 보여주도록 했다.
작가는 “그림자는 허상이라 공허한 것인데, 그것도 본질일 수 있다는 불교적 세계관을 보여주려 했다”고 설명했다. 눈에 보이는 가시적인 것보다 숨겨진 것, 이면에 초점을 둔 작업이다. 먹과 붓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그는 8년 전부터 붓이 아닌 에어 플라스마(절단기)를 들고 작업하고 있다. 드로잉도 없이 공업용 철판을 자르고 이어 붙인 작업을 통해 꼿꼿한 대나무 잎과 매화, 소나무 이파리들이 탄생한다. 그의 작품은 철판으로 나뭇가지나 사군자, 소나무와 산을 형상화했다고 해 ‘철판산수’로 불리기도 한다.
그는 “철이라는 게 다루기 힘든 재료기 때문에 더 추상적일 수 있다. 이파리 하나 하나에 더 함축적이고 응축적인 의미가 담겨 있다”고 말했다. 그의 작업은 평면에서 조각으로, 또 설치로 전진하고 있다. 공간을 장악하고 싶은 작가의 욕구가 반영된 동시에 전통 수묵화를 이 시대 감성과 정서로 다양하게 변주하겠다는 의지의 결과물이다. 그는 틀과 관습에 얽매인 전통 수묵화를 현대화하는데 평생의 화두를 두고 있다. 1980년
[이향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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