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금빛나 기자] “극중 주인공인 재희가 첫 사랑인 채경이에게 이런 말을 하죠. 3%로의 소금 때문에 바다는 썩지 않는다고. 인생을 썩지 않게 만드는 3%의 용기, 제가 ‘뜨거운 여름’에서 가장 하고 싶었던 말입니다.” (민준호 연출가)
질풍노도의 시기로 불리는 사춘기 시절부터 혈기왕성했던 대학시절까지. 연극 ‘뜨거운 여름’은 그 이름처럼 인생에서 가장 뜨겁게 불타올랐던 시절을 다루며 관객들과 마주하고 있다.
‘뜨거운 여름’은 배우 겸 연출가인 재희가 공연을 앞두고 첫사랑인 채경이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 들으면서 시작을 알린다. 재희는 과거 자신이 품었던 꿈과 열정을 회상하고, 시간은 과거로 흘러가 90년대 학창시절로 돌아간다.
재희의 질풍노도의 사춘기 시절을 다루는 1부는 불완전한 청소년기 실수를 거듭하며 꿈을 찾아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게임이 너무 좋아서 아버지의 지갑에 손을 대다 혼이 나기도 하고, 비싼 게임기를 타기 위해 게임 잡지 수필 공모전에 지원하기도 하고, 때로는 친구와 치고 박고 싸우다가 세상에 둘 도 없는 절친한 친구가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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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MBN스타 DB |
무엇보다 1부의 하이라이트는 재희와 채경의 풋풋한 첫사랑이다. 두 사람은 마이마이에 서로의 이어폰을 꼽아 함께 음악을 듣고, 꿈을 이야기 하며 사랑을 키워나간다. 아련한 첫키스로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재희와 채경이지만, 이들의 사랑은 채경의 미국 유학으로 인해 끝이 나게 된다.
2부는 재수를 통해 대학생활을 하게 된 재희의 모습을 그린다. 어렵사리 연극영화과에 입학하게 된 재희는 낙산 해수욕장으로 MT를 오면서 채경과 똑같이 생긴 사랑이와 만나게 된다. 문제는 사랑이가 교복을 입은 고교생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사랑이에 대한 마음을 멈출 수 없었던 재희는 틈이 날 때마다 낙산 해수욕장으로 내려가면서 장거리 연애를 시작한다.
90년대의 추억이 가득한 연극 ‘뜨거운 여름’의 극본과 연출을 맡은 민준호 연출을 만나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 “사춘기 시절 재희는 제 또 다른 자화상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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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스토리P |
90년대 사춘기를 보냈던 이들이라면 ‘뜨거운 여름’은 더욱 특별하게 다가올 것이다. ‘3! 4!’ ‘꿈에’ ‘나의 옛날이야기’ ‘너의 마음을 내게 준다면’ ‘너의 의미’ ‘사랑과 우정사이’ 등 공연에 사용되는 음악 대부분 90년대 사랑을 받았던 가요들이며, ‘스트리트 파이터’와 같은 추억의 게임들도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성인이 돼 출입한 나이트클럽 방문기며, 후배 군기 잡는 선배들 등 그 시기 청춘을 보냈던 이들이라면 공감할 수 있는 요소들이 곳곳에 숨어 관극의 즐거움을 더욱 높인다.
어디 이뿐인가. 재희의 사랑 이야기는 그 시절 꿈꾸었던 순수함을 가득 담으면서, 실제 이야기를 극화해서 무대 위로 올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게 한다.
“‘뜨거운 여름’은 제 이야기와 주변의 경험담들을 담아 만들어진 작품이다. 극중 채경이는 상상 속 인물이고, 사랑이의 스토리는 배우 이석의 실제 경험에서 가져왔다. 무용을 전공했던 것은 이를 대영이라는 인물로 투영시켰고, 덕분에 무대에서 시도 할 수 있는 움직임의 많았다. 제일 영감을 많이 준 친구는 진선규라는 배우다. ‘뜨거운 여름’에 특화된 배우이기도 하고, 이 작품이 나올 수 있도록 도와준 일등공신이기도 하다.”
‘뜨거운 여름’이 경험담이 아닌가 생각하게 하는 장면 중 하나는 게임과 관련된 에피소드이다. 재희가 게임잡지 공모전에 지원에 대상을 수상했던 부분이나, 게임에 빠진 아들을 염려해 부모님이 친구 부모님에게 전화를 걸어 주의를 둔 점등. 모든 것들이 만들어졌다고 하기에는 지나칠 정도로 ‘디테일’이 살아있다.
“저도 극중 재희처럼, 암기 거부증이 있을 정도로 공부를 안 했다. 극중 게임기를 사기 위해 아버지의 지갑에 손을 대기도 했고, 이 같은 사실이 발각돼서 크게 혼이 났다. 이를 토대로 글을 써 게임잡지 공모전에 보내 게임기를 타기도 했고, 그때 글을 보셨던 아버지가 극에서처럼 ‘너는 글을 사실적으로 쓰는 재주가 있다’고 칭찬하시기도 했다. 100% 픽션인 채경과의 이야기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일들은 극중 재희와 비슷한데 다른 점은 대학에 한 번에 입학했다는 것이라고 할까. 그래도 학창시절 국영수만큼은 나름 열심히 했더니 운 좋게 대학에 합격을 했다. 그게 재희와 나의 다른 점인 것 같다. 어린 시절 나는 실제로 만화책과 게임을 좋아했고, 그 분야를 좋아했던 친구들이 많았다.”
◇ “진짜 ‘재희’와 ‘사랑’은 결혼에 성공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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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스토리P |
재희와 고교생 사랑의 사랑 이야기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이석이 낙산해수욕장에 갔다가 민박집 딸인 여고생과 연애를 하게 됐다는 경험담에서 모티브를 따온 것이다. 극중 재희와 사랑이는 ‘연기로는 먹고 살기 힘들다’라는 현실적인 한계에 부딪쳐 헤어졌지만, 실제 러브스토리의 주인공인 이석은 어땠을까.
“극중 재희와 사랑은 헤어졌지만, 현실 속 재희와 사랑은 아름다운 사랑의 결실을 이뤘다. 중간에 잠시 헤어지기도 했지만, 결국에는 인연은 이어지더라. 결혼까지 성공한 것으로 알고 있고, 얼마 전 진짜 ‘사랑’이가 ‘뜨거운 여름’을 보러 오기도 했다.”
뜨거운 여름’이 특별한 이유는 탄탄한 스토리 뿐 아니라, 이를 풀어내는 과정이 다른 작품들과는 남다르기 때문이다. 배우들의 몸과 연기로 골목의 담벼락을 만드는가 하면, 작은 뮤지컬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격렬한 무용과 노래들이 불쑥불쑥 등장하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저는 실험성이 좋다. ‘거울공주와 평강이야기’의 경우 뮤지컬로 장르구분이 되지만 정작 노래는 7곡 밖에 되지 않는다. 공연 내내 소리가 나오고 움직임은 있지만 전형적인 뮤지컬 형식과는 거리가 멀다. 개인적으로 약간의 이단아 기질이 있는 것 같다. 누가 시켜서 작업을 할 경우 기존의 형식에 맞춰서 만드는데, 개인적으로 제 작품을 만들 때는 남들이 안 하는 것을 시도해보고 싶다.”
‘뜨거운 여름’은 2014년 초연무대에 이어 7개월 만에 재연을 올리게 됐다. 재연 무대에 오르면서 달라진 점이 있을까.
“재연에 오면서 시도했던 모험이 바로 마지막 장면에서 암전 속 채경의 목소리만이 흘러나오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깜깜한 암전 속 음악과 함께 채경의 목소리만 들리면 좋을 것 같아서 과감히 시도해 봤는데, 반응이 생각보다 좋지 않더라. 무엇보다 저는 칠흑 같은 어두움을 원했는데, 동선 체크하는 야광별이 너무 잘 보이더라. 결국 2주 만에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 “제가 사람은 따뜻해요”
민준호 연출이 무대에 올리는 작품들 사이 공통점이 있으니 바로 일상적이면서도 따뜻한 시각으로 작품을 풀어낸다는 것이다. ‘나와 할아버지’에 이어 ‘따뜻한 여름’은 주인공의 성장기를 다룬 작품이기도 하다. 이에 대해 민준호 연출은 “제가 참 따뜻한 사람이다.(웃음) 잘난 연출이 아니다. 같이 시작한 사람들은 다 같이 잘 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다”며 말문을 열었다.
“아무래도 제가 제일 관심이 많은 부분인 것 같다. 연극적인 것을 만드는 것이 좋고, 사랑보다는 사람의 성장을 그려나가는 것이 더 좋다. 저도 계속 변하고 싶은 사람 중 하나니, 사람이 바르게 평등하게 살아가고 따듯하게 살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는 것, 자연스럽게 보고 생각할 수 있게 되는 작품을 만드는 것이 좋다. 사람들이 공연을 보고 카타르시스를 느끼지만 그런 중에도 고민을 남기고 싶고, 웃고 즐기고 봤는데 나중에 생각을 할 수 있는 그런 작품을 만들어보고 싶다.”
민준호 연출이 ‘뜨거운 여름’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어느 부분일까. 이에 대해 민준호 연출은 채경에게 했던 ‘바다가 썩지 않은 이유’를 꼽았다.
“내가 작품에서 가장 좋아하는 대사가 ‘3%로의 소금 때문에 바다는 썩지 않는다’이다. 세상은 참 힘들고 잔인한 곳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계속해서 살아갈 수 있는 가장 큰 요인은 바로 3%의 용기인 것 같다. 제 진심어린 말이기도 하고, 그 넓은 바다가 썩지 않게 한다는 것이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는 것 같았다.”
마지막으로 떠나는 길, 민준호 연출은 하고싶은 말로도 3%를 꼽았다.
“공연으로 성공하고 싶었던 생각도 없었고 존경하는 연출이 되고 싶은 마음도 없다. 이 일을 계속하는 것은 3%의 용기와 즐거움이다. 저에게 명예도 없고 돈도 없지만 동료가 있으니, 이는 다른 이들이 가지고 있지 않는 힘이라고 생각한다.”
금빛나 기자 shinebitna917@mkculture.com /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bnstar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