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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규정한 환동해 해역은 한국 북한 러시아 일본이 에워싼 ‘동해’, 훗카이도와 사할린의 해협 건너 오호츠크해, 캄차카 반도 너머 아메리카 대륙과 연결되는 베링해까지 이른다. 동해는 호수 같은 바다지만 여러 갈래 길을 통해 바다와 육지를 연결한다. 환동해는 태평양으로 열려 있다. 두만강 하구와 연해주 지역에서는 만주와 몽골 그리고 시베리아 등 대륙으로 진출할 수 있다.
저자는 “환동해는 ‘열린 바다’이며 ‘열린 길’”이라며 “환동해 문명사는 바닷길을 통한 문명 교섭의 역사이자 ‘관계의 역사’”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저자는 환동해보다는 ‘청해(靑海)’ ‘동북아시아해’라는 명칭이 더 정확하다는 쪽이다. 환동해라는 이름은 한국이라는 국민국가적 관점의 영토 개념이 강하게 들어가있기 때문이다. 일본에게 동해는 ‘일본해’, 러시아에겐 ‘차르·소비에트의 바다’다. 따라서 그는 영토보다는 ‘관계’나 ‘교류’에 방점을 찍고, 이 지역 바다를 둘러싼 문명사를 ‘액체의 역사’로 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런 관점에서 역사를 바라보면 많은 사실들이 우리 눈에 들어온다.
유럽의 관점으로 보면 환동해는 극동에 위치한 변방의 바다지만 이 지역에 사는 사람들 입장에선 이곳이 변방일 리 없다. ‘아시아’라는 개념조차 유럽이 만들어낸 상상의 생각일 뿐이다. 중국 본토 중원(中原)이 ‘중심’이고, 이곳이 ‘변방’이라는 구분은 중화적 세계 인식의 산물이다. 저자는 “중국 역사마저도 중원의 정착민들과 북방의 유목민족들 간의 길항 관계에서 형성됐다”며 “중심과 변방, 문명과 야만의 임의적 관계 설정은 허구적이며 해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컨대 환동해는 러시아가 말살한 시베리아와 캄차카 원주민 문명, 근대 일본이 정복한 아이누의 문명, 중화에 의해 부인된 만주족과 무수한 유목민족 문명이 활발하게 그 세력을 펼친 무대였다. 이들 사이엔 ‘문명의 바닷길’이 존재했다. 담비의 길, 해삼의 길, 식해의 길, 곤포(다시마)의 길, 소그드 상인의 길, 동해 울릉도 길, 일본로 등을 통해 대륙과 해양을 그물처럼 연결하고 있었다. 환동해는 다양한 원주민 소민족과 ‘오랑캐’로 불리는 유목 민족들이 융합적으로 존재하는 공간이었다.
대륙 역사도 새로운 시각에서 다시 써야 한다. 세계를 호령했던 칭키즈칸의 ‘원(元)’도 대륙 국가로만 한정할 수 없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원은 고려를 침락해 복속시키면서 지금의 제주도인 탐라를 직접 관리했다. 연해주에서 환동해 루트를 통해 사할린으로 군대를 보냈다는 기록도 남아있다. 만주 지역에 살던 여진족은 두만강 하구와 연해주에서 동해 루트를 거쳐 울릉도와 일본을 드나들었다. 18세기 청(淸)의 강희제도 훗카이도 등에 탐사대를 보내 북방 해양을 지배하고자 했다. 저자는 “만주는 유라시아 대륙과 환동해권 해양세계를 잇는 오래된 문명의 회랑”이라고 분석했다.
중국, 일본, 러시아 등 많은 국가들이 환동해 주도권을 잡기 위한 노력을 지금도 아끼지 않고 있다. 교역과 물류, 더 나아가 나라의 운명을 갈음하는 계기라 보고 사활을 걸고 있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환동해 문명은 여전히 ‘장기지속’되고 있다. 저자는
[이기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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