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금빛나 기자] “무대디자인을 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우리는 ‘지금’ 이 작품을 ‘여기서’ 왜 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변만 내려질 수 있다면요.”
올해 20주년을 맞이한 창작뮤지컬 ‘명성황후’는 국내 뮤지컬 역사에서 빼놓고 이야기 할 수 없는 대작이다. 대한민국 뮤지컬의 첫 브로드웨이 진출작이며 첫 웨스트엔드 진출작으로 ‘뮤지컬 한류’에 앞장섰던 작품이자, 과거가 아닌 현 뮤지컬 시장에서도 여전히 살아 숨쉬며 관객들을 만나고 있으니 말이다.
이문열 작가의 소설 ‘여우사냥’을 원작으로 하는 ‘명성황후’는 1895년 을미사변(乙未事變, 고종 32년 일본 자객들이 경복궁을 습격해 자행한 명성황후 살해사건)을 중심으로 19세기말 위기의 조선을 그려낸 뮤지컬이다. 20년이라는 세월동안 크고 작게 무대와 내용을 수정해 나간 ‘명성황후’는 대한민국에서 안 가본 극장이 없을 정도로 전국을 돌고 돌, 1995년 초연무대가 열렸던 예술의 전당으로 다시 돌아왔다.
돌아온 ‘명성황후’는 눈길을 사로잡는 화려한 의상과 대한민국에서 둘째가면 서러울 명배우들의 열연, 전보다 조검 더 세련돼 진 넘버와 연출로 매회 관객들의 호평을 받고 있다. 그중에서도 관객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경사면으로 이뤄진 대형 원형 무대와 무대 전체가 수직 상승하는 2층 무대 등 한층 진보된 무대장치 기술로 보는 맛을 더욱 살렸다. 단순히 무대 기술만 좋은 것이 아니다. 이 같은 기술들은 다양한 영상과 LED와 결합된 영상미, 그리고 아름다운 무대미술과 만나면서 더욱 더 보는 맛을 더했다.
‘명성황후’의 무대는 뮤지컬 ‘영웅’ ‘신과 함께’ ‘아리랑’ 등 유수의 작품의 무대미술을 담당해 온 박동우 무대디자이너의 손끝에서 탄생했다. 20년 전 ‘명성황후’의 초창기 멤버이기도 한 박동우 무대 디자이너는 2015년 ‘명성황후’에서도 자리를 지키며 그 무대를 이끌어 나가고 있다.
◇ 뮤지컬 ‘명성황후’ 20년의 역사와 함께하다
‘명성황후’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는 누가 뭐라고 해도 2막의 ‘여우사냥’일 것이다. 명성황후와 고종, 그리고 외국 대사들이 다정하게 대화를 나누던 무대는 갑작스럽게 상승하고, 그 아래 조선의 국모를 죽이기 위해 작당 모의를 하는 일본 자객들이 나타난다. 2층은 가까운 미래에 닥칠 비극을 알지 못한 채 웃음이 이어지고, 1층은 간교한 이들의 치밀한 작전들이 펼쳐진다. 극명한 대비는 극의 긴장감을 극대화하고, 어느새 관객들은 그 속으로 깊게 빠져들게 된다.
“‘여우사냥’의 무대상승은 과거 기계고장이 일어나면서 그 이후 사용할 수 없었던 무대 연출이었다. 당시 환불사태가 일어나기도 했었는데, 예술의전당과 이야기 한 끝에 ‘현재의 기계는 불안정하니, 완전히 안정화 되면 그때 쓰자’라고 결론을 내렸다. 아시다시피 오페라극장이 한번 리모델링이 되지 않았느냐. 그때 고장 났던 장치를 가동하는 것이 가능해졌고, 덕분에 무대상승 효과를 관객들 앞에 다시 선보일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거대한 회전무대 역시 ‘명성황후’의 볼거리 중 하나다. ‘명성황후’는 회전무대를 효과적으로 사용한 작품으로 꼽힌다. 무대 중앙에 놓인 회전무대는 흥선대원군과 명성황후·고종의 권력교체, 뒤에서 술수를 꾸미는 일본 등의 풍경을 극명하게 보여줄 뿐 아니라, 심지어 전투신에서의 시체까지 효과적으로 제거해 준다. 일각에서는 ‘회전무대를 이용한 장면전환의 교과서’라고 불리기도 한다.
“‘명성황후’에서 회전무대는 그 자체가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경사가 있는 회전무대를 통해 국제적인 소용돌이 가운데에서 익사해 가는 조선의 느낌을 효과적으로 전해줄 뿐 아니라, 장면전환 역시 원활하게 해 준다. 사실 회전무대에서 높낮이를 만들어 낸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경사가 있는 회전무대 덕분에 손쉽게 어전(御前)장면 연출이 가능해 졌다.”
‘명성황후’는 20주년 기념공연을 맞이하게 되면서 무대 전반적인 부분을 수정하고 다듬었다. 이전까지의 ‘명성황후’가 붉은 색조를 강하게 사용했다면 2015년에 오면서 좀 더 모던한 색으로 바꿨다.
“20주년 공연에 오면서 ‘명성황후’는 조금 더 단순하면서도 추상적으로 변화됐다. 작품을 무대 위로 올리면서 구성들을 살펴봤더니 구상적이면서도 설명적인 세트들이 남아 있더라. 예를 들면 한성의 시가지 모습이 그려진 막이 있다든가 버드나무 가지라든지…남아있던 실제적인 세트들을 단순화 시켰다. 작업을 마친 뒤, 초연 때 기록했던 자료들을 살펴봤더니 처음에 추구했던 방향들이 이번 공연에 오면서 대부분 이뤄졌더라. 굳이 아쉬운 부분을 하나 꼽으라고 한다면 ‘실버들’ 장면이다. 실버들이 조금 더 촘촘하게 돼서 그 자체로 막의 기능을 할 수 있게 했어야 했다. 아마 내년에 공연에 다시 한다면 그 부분도 이뤄질 것 같다.”
↑ 뮤지컬 ‘명성황후’ 무대 / 사진제공=에이콤 인터내셔널 |
이제 스무 살의 나이가 된 ‘명성황후’는 전보다 더 단순하면서도 상징적으로 바뀌었다.
“제가 가지고 있는 스타일이라고 볼 수 있다. 저는 공연이 가지고 있는 특성 중 하나가 극장성이라고 본다. 극장성이라는 것은 실제 장소인 관객의 눈앞에 그려주는 것이 아니라, 머릿속으로 상상하면서 재구성할 수 있도록 그 폭을 넓혀 주는 것이다. 공연이 가지고 있는 특성이라고 보고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을 함축적인 세트를 좋아한다. 무대를 올리기 전 세트를 점검하는데 초연 때부터 쓰였던 구상적이고 설명적인 세트가 남아 있었다. 중간말 한성의 시가지 모습이 그려진 막이 대표적이다. 그런 것들을 다 추상화 시키고 단순화 시켜서 바뀌었다. 2015년 ‘명성황후’에서 가장 달라진 점은 이러한 부분이 아닐까 싶다.”
◇ “절실하면 없던 능력도 생기나 봅니다.”
박동우 무대 디자이너가 ‘명성황후’ 무대세트에 대해 자랑하는 것이 하나 더 있었다. 이른바 가벼움이었다. 모든 무대 세트들이 콘테이너 하나에 정리할 수 있을 정도로 부피가 작으며, 회전 무대만 설치할 수만 있으면 어느 극장에서든지 무대를 올릴 수 있을 정도로 심플하다는 것이다. 어느 곳에서도 최적화 된 공연을 보여줄 수 있을 정도로, 물리적으로 좋은 장점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초연에는 부피가 나가는 세트가 꽤 있었는데, 이러한 부분들을 정리하게 된 것이 1997년 ‘명성황후’가 브로드웨이 공연을 가게 되면서부터였다. 무거운 것을 들고 갈 수 없지 않느냐. 그때를 기점으로 ‘명성황후’의 무대는 순회공연이 가능한 세트로 탈바꿈을 했다. 이후 조금씩 수정과 변화를 하면서 2014년까지 공연했고, 2015년에 오면서 또 한 번 탈바꿈을 하게 됐다.”
1997년 ‘명성황후’의 뉴욕 브로드웨이 공연은, 작품 뿐 아니라 국내 뮤지컬 역사에 있어 주요 사건으로 꼽힐 만큼 그 의미가 깊다. 20년간 ‘명성황후’의 무대 디자인을 책임졌던 박동우 무대디자이너 역시 가장 인상 깊은 무대로 뉴욕 공연을 꼽으면서, 이와 관련된 에피소드를 공개했다.
↑ 뮤지컬 ‘명성황후’ 무대 / 사진제공=에이콤 인터내셔널 |
“지금도 기억나는 것이 1997년 뉴욕 공연에 가야 하는데, 회전무대에 문제가 생겼던 것이다. 무대를 설치하기 위해 무대 기계회사에다 회전무대를 의뢰를 했는데, 그 당시 무대 제작을 맡은 회사에서 공연을 얼마 안 앞두고 못 만들겠는 것이다. 하는 말인즉슨 그걸 만들기 위해서는 비용과 시간과 짐의 양도 어마어마해지고, 절대 공연 전에 완성시킬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순간 아득해지더라. 그동안 준비해 왔는데 무대 때문에 공연을 못 한다는 생각을 하니…그때부터 정말 절실하게 연구를 시작했다. 물리적인 구현 방법 자체를 바꿀 수 있을까 연구를 하다가 새벽에 갑자기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무대 자체를 회전시키는 이중 회전무대의 아이디어가 생긴 것이다. 일반적으로는 바퀴가 회전체에 붙어있지만 이건 바퀴가 바닥에 붙어어 초경량 화 할 수 있었고 조립하는 시간을 많이 줄일 수 있었다. 뉴욕 스태프들도 이를 보고 박수를 치며 감탄을 하더라. 그때 생각했다. 정말 절실할 때, 절체절명의 순간에서는 평소에 없던 능력도 나온다는 것을.”
◇ 무대 디자이너? NO!…무대를 그리는 시인이자 화가
‘영웅’ ‘신과 함께’ ‘아리랑’ ‘명성황후’ 등 굵직굵직한 작품의 무대를 책임졌던 박동우 무대 디자이너는 작업에 있어서 시각적 기승전결의 플롯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희곡 작가의 경우 무대에 대한 최종 결과물을 상상하지만, 그 시각적인 결과물만큼은 전문적으로 구성하기 힘들다. 저는 그걸 구성해야 완성도 높은 작품이 탄생한다고 본다. 작품을 생각하지 않고 너무 시각적으로 큰 장면이 이어진다면 이는 좋은 작품이라고 할 수 없다. 무대 디자이너는 시인이자 화가이자 건축가이다. 시인이라고 하는 이유는 ‘우리 시대의 오늘날의 관객들에게 이 텍스트를 어떻게 해석해서 전달해 줄 것인가’와 같은 시대를 보는 문학적인 마인드와 가깝기 때문이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개념적인 것을 시각적인 것을 이뤄야 하니, 무대라는 도화지 위에 그림을 그리는 화가이며, 거기서 그치지 않고 이를 구현시키면서 실물을 만들어 내니 건축가인 것이다.”
무대 디자인에 대해 시를 쓰는 작업이자 그림을 그리고 건물을 세우는 과정이라고 설명한 박동우 무대 디자이너는 작품 선택 기준에 대해서 “우리는 ‘지금’ 이 작품을 ‘여기서’ 왜 하는가”라고 밝혔다.
“‘영웅’ ‘명성황후’ ‘아리랑’ 등, 이런 작품들은 우리가 겪어왔던 우리 시대의 아픈 일면을 보고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생각해 보게 하는, 이른바 우리 사회를 착하게 만드는 작품들이다. 앞으로도 더 많은 많은 관객들이 봤으면 좋겠다.”
금빛나 기자 shinebitna917@mkculture.com /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bnstar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