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지난 28~29일 밤(현지시간) 독일 베를린 폴크스뷔네 극장. 국립현대무용단 ‘불쌍’은 전통 종교가 어떤 변화를 거쳐 현대인에게 다가오는지 파격적인 몸짓으로 보여줬다. 즉흥적으로 몸을 흐트러뜨리는 한국 전통 허튼춤과 서양의 팝핀, 힙합이 섞인 독창적 무용이었다.
무대 위에는 다양한 불상과 성모 마리아상이 세워져 있었다. 무용수들은 불상을 향해 정성스럽게 절을 하기도 하고 발로 차기도 했다. 마디 마디가 뒤틀린 분절춤으로 현대 사회 종교와 우상 의미를 질문했다.
무뚜뚝한 독일 관객 800명의 반응은 의외로 뜨거웠다. 동양에서 신성시되는 불상을 해체하고 재해석한 춤 자체가 신선하고 충격적이었다.
베를린 극장에서 무대 스태프로 일하는 오스트리아인 산드라 만은 “시대 흐름에 따라 변종되고 혼합된 불상 이미지를 다양하게 보여준 안무가 강렬했다. 전통과 현대가 결합한 완벽한 공연이었다. 특히 수많은 소쿠리로 공간의 경계를 만들고 허물어뜨리는 과정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고 관람 소감을 밝혔다.
그의 뇌리에 깊게 박힌 춤은 형형색색 플라스틱 소쿠리 1000개로 만들어진다. 무용수들은 소쿠리로 탑을 쌓고 무너뜨리고 던지면서 색다른 춤을 창조해나갔다.
안무가 안애순 국립현대무용단 예술감독은 “아시아 유목민족의 이동성을 상징하는 춤이다. 항상 새로운 공간으로 옮겨가 새롭게 적응하고 받아들이면서 변종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몸짓에 담았다. 압축된 시간과 공간이 담겨 있다”고 설명했다.
독일 작곡가 베아트 하네어슈미트는 무대 한 켠에서 색다른 음악을 들려준 DJ 소울스케이프(본명 박민준)에게 찬사를 보냈다. 국악과 힙합 등 다양한 시대 비트와 리듬을 혼합한 음악으로 춤에 생기를 불어넣었다.
미디어아티스트 염지혜의 영상도 작품 의미를 배가시켰다. 무인도와 숲 등 미지의 세계를 헤매는 영상이 춤의 주제를 선명하게 부각시켰다. 디자이너 임선옥이 중국과 베트남, 인도 등 동양 전통 의상 특징과 현대 패션의 상징성을 미니멀하게 압축한 무대 의상도 춤에 날개를 달아줬다.
미디어아트와 패션, DJ 음악, 현대무용의 절묘한 조화는 이 작품을 초청한 독일 최대 무용축제 ‘탄츠 임 아우구스트(8월의 춤)’ 의 올해 주제 ‘융합’에 가장 잘 부합된다.
축제 예술감독 스벤 틸은 “다양한 장르 예술을 창조적으로 접목시킨 국립현대무용단 ‘불쌍’은 올해 축제 주제를 빛낸 작품이다. 전통과 현대, 동양과 서양을 섞어 혼돈의 시대를 잘 표현했다. 혼란을 극복하기 위해 발버둥치는 무용수들의 움직임이 건강하고 에너지가 넘쳤다”고 호평했다.
매년 8월 열리는 ‘탄츠 임 아우구스트’는 춤 안에서 무더위를 잊고 삶의 즐거움을 얻기 위해 1988년 시작됐다. 현대무용의 흐름을 주도하는 유럽 대표 축제로 자리매김했으며 트리샤 브라운, 머스 커밍햄 댄스컴퍼니, 네델란드 댄스 씨어터, 윌리엄 포사이드, 라라라 휴먼 스텝스 등 세계적인 안무가와 현대무용단체들이 공연했다. 대중적인 춤과 실험적 작품이 공존하고 관객 참여형 워크숍을 열고 있다.
올해는 14개국 현대무용단체 20곳이 초청됐으며 관객 2만명이 관람했다. 그 중에서도 국립현대무용단 ‘불쌍’은 파격적인 주제와 창조적인 춤으로 2회 공연 모두 매진시켰다. 28~29일 무대 막이 내린 후 갈채가 끊이지 않아 커튼콜이 5번이나 이어졌다.
안 감독은 “어마어마한 불상을 세워놓은 파리 부다바에 충격을 받아 이 작품을 안무했다. 동양에서는 성스럽게 여겨지는 종교이지만 서양은 다른
‘불쌍’은 지난 6월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열린 현대공연예술축제 ‘파브리카 유로파’와 더불어 몰타공화국,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호주 시드니 등 해외 무대에서 극찬을 받았다.
[베를린 = 전지현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