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김진선 기자] 연극과 뮤지컬 공연 등 문화 예술을 즐길 수 있는 대학로에 팬덤 바람이 불고 있다. 공연이 끝난 공연장 앞에는 배우를 기다리고 있는 팬들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일명 ‘퇴근길’이다.
무대에서 내려온 배우들은, 공연은 끝났으나 퇴근은 할 수 없는 셈이다. 이들은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팬들에게 인사를 건네고, 사인, 셀카 등의 팬서비스를 행한다. 2시간이 가깝게 펼쳐지는 공연이 끝나고 힘들 법 하지만, 퇴근길은 배우들에게는 결코 지나칠 수 없는 관문이다.
무대 위에서 열연을 펼친 배우를 눈앞에서 만날 수 있는 것은 팬들의 입장에서 보면 행운이자, 행복일 수도 있다. 좋아하는 배우에게 선물을 전하고, 궁금한 것을 묻는 것을 통해 친밀감을 형성하기도 하며, 마음을 전함으로서 만족을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이 같은 현상이 단순하게 팬덤 현상이라는 점은 단정 지을 수 없는 문제다.
↑ 사진=MBN스타 DB/ 위 기사와 관련 없음 |
대학로에는 몇몇 배우들이 ‘대학로 아이돌’ ‘대학로 프린스’ 등으로 불릴 정도로, 마니아층이 형성돼 있다. 그 정도로 ‘대학로 안’에서 뜨겁다는 것이며, 작품에 끼치는 영향력도 막대하다는 것이다.
해당 배우가 나오는 작품은, 작품성을 떠나 ‘회전문 관객’이 생기기 십상이며, 이는 곧 ‘작품’보다 ‘특정 배우’를 보기 위한 기회가 늘어난다. 물론 작품은 두 세 번 보면 작품의 깊이를 느낄 수 있을 뿐 만 아니라, 좋은 작품은 입소문이 나긴 마련이지만, 팬들이 의견이 작품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다는 것은 무시할 수 없는 사실이다. 때문에 퇴근길 문화가 깊어질수록 연극이나 뮤지컬은 대중문화가 아닌 마니아만이 즐길 수 있는 분야로 고착될 수밖에 없다.
때문에 몇 몇 배우들은 기자 간담회에서 “마니아 분들이 오시는 것도 좋지만 일반 관객들도 많이 오셔서 봐주셨으면 좋겠다”고 고민 아닌 고민을 토로하기도 한다. 일부 관객들에게만 사랑받는 것도 물론 좋지만, 다양한 관객들의 사랑을 고루 받는 퍼블릭한 작품을 만드는 것은 쉽지 않다는 것이다.
‘퇴근길’은 팬들과 배우가 서로 위하는 마음에서 생긴 문화다. 팬들은 ‘좋아하는 배우에게 마음을 전하는 것’이라고, 배우들은 ‘나를 응원하는 팬들의 마음’이라고 퇴근길에 대해 말한다.
한 관객은 MBN스타에 “공연이 끝나고 배우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은 뮤지컬의 묘미 아닌가. 퇴근길이 없어지면 뮤지컬도 재미없어질 것 같다”고 힘 있게 말하며 해당 배우들에 대한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팬카페 주소를 알려주기도 했다.
또 다른 관객은 “힘들게 공연했으니 뭔가 주고 싶은 마음이다. 배우가 퇴근길을 못하고 가더라도 어쩔 수 없다, 누가 기다리라고 한 것도 아니지 않은가”라며 퇴근길에 대해 즐거운 추억쯤으로 간주했다.
↑ 사진=MBN스타 DB/ 위 기사와 관련 없음 |
한 배우는 MBN스타에 “퇴근길은 쉽지 않다. 공연이 끝나고 긴장이 다 풀려버릴 때도 있어, 정신이 없을 때도 있다. 배우이기 때문에 컨디션 조절을 잘하고, 무대 위에서 더 멋진 모습으로 관객들을 만족시키고 싶다”고 전했고, 또 다른 배우는 “결코 퇴근길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과도한 선물이 부담스럽고, 공연을 ‘작품’ 자체로 즐겨주길 바랄 뿐”이라고 밝혔다.
또 다른 배우는 “기다려 주는 분들에게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이지만, 퇴근길은 힘들고 선물도 부담스럽다. 마음은 알겠지만, 더 많은 작품을 보고 객관적인 시각을 키울 수 있는 팬들이 많아졌으면 좋게다”고 바람을 전했다.
한 공연 관계자들은 “퇴근길은 절대 막을 수가 없다. 매니저가 있는 배우들은 매니저가 데리고 가지만 소속사가 없는 배우들은 꼼짝없이 팬들에게 둘러싸일 수밖에 없다”며 “퇴근길 문화는 공연이 끝난 배우들의 진정한 퇴근길을 막는 꼴”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공연 관계자는 “고가의 선물을 주는 팬들은 정말 우리가 봐도 부담스럽다. 퇴근길이라고 해도, 정도가 있어야 하지 않는가. 과연 누구를 위한 퇴근길인지 알 수가 없다”며 “진정 배우들을 생각한다면 빨리 그들을 놓아주는 게 팬들의 도리가 아닐까”라고 입장을 밝혔다.
퇴근길은 대학로의 좁은 골목을 막기도 한다. 공연장 주차장에서 만난 한 관리자는 “정말 해도 해도 너무 한다. 공연이 끝나고 나면 차가 빠질 수도 없이 이곳을 가득 채운다”며 “말도 마라. 1시간은 넘게 이러고들 여자들이 모여 있는데, 도대체 관리도 할 수 없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이에 대해 원종원 문화평론가는 “팬덤은 늘 존재했고, 90년대 외국에서도 일었던 현상이다. 퇴근길도 대학로 라이브엔터테인먼트의 특성 아닌가. 그런 행위를 하는 것도 관객의 자유”라며 “비록 배우들에 집중해 작품을 보더라도, 장기적으로 봐서는 낙관적이다. 앞으로 관객들이 양질의 콘텐츠를 보고 효용가치를 따지게 되고, 공연계는 더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는 과도기나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이어 “하지만 1시간 정도나 배우의 퇴근을 막는 것은 지나치다. 좀 더 성숙한 배려가 필요하다. 무조건 적인 사랑보다 성숙된 관극문화 정립이 필요할 때”라고 덧붙였다.
김진선 기자 amabile1441@mkculture.com/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bnstar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