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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의 허리가 사라졌다.
지난해 사상 최고 관객(1700만명)을 동원한 '명량'에 이어 올초 1000만명을 돌파한 '국제시장'까지 대박이 잇따라 터지고 있다. 그러나 몸집은 작지만 똘똘하게 실속을 챙기던 '중박 영화'는 찾기 힘들다. 영화 산업을 지탱하는 허리층이 급격히 얇아지고 있는 것이다.
총제작비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상업영화 한 편의 평균 제작비(약 60억원) 기준에 따르면, 통상적으로 700만~1000만명이 '대박', 300만~700만을 '중박'으로 친다. 왜 '중박'의 최저 기준이 300만명일까. 300만명의 입장권 매출은 총 제작비를 회수하고도 이익을 남기고 차기작 개발의 실탄이 되는 돈이다.
'중박'영화가 많다는 것은 영화판에 '플레이어'가 많다는 것으로 읽힌다. 또한 기회가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중박 영화'가 풍성할 때 영화산업은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조성희, 윤종빈, 김병우 감독 등 현재 충무로의 주목을 받는 감독들은 2012~2013년 그들의 개성이 대중적으로 인정받으면서 부각될 수 있었다.
지난해는 이러한 '중박'영화가 눈에 띄게 감소했다. 20일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2014년 1000만을 넘은 한국 영화는 '변호인'과 '명량' 두 편이나 나왔다. 그러나 300만~700만 사이의 중위권은 '끝까지 간다', '신의 한수'등 5편이었다. 반면 최초로 관객 2억명을 넘긴 2012년엔 중위권 영화는 '부러진 화살', '건축학 개론', '범죄와의 전쟁' 등 총 8편이었고, 2013년은 '감시자들', '신세계', '더테러라이브', '숨바꼭질' 등 9편이나 됐다. 한국영화 점유율은 2012, 2013년엔 모두 60.2%였지만, 지난해는 47.8%로 떨어졌다. 3년 연속 극장 관객이 2억명을 돌파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지난해 한국영화의 내실은 약해진 것이다.
쏠림 현상이 심화된 것으로 보인다. 영화를 유행처럼 소비하는 경향이 짙어지면서 공급자와 수요자 모두 '될 법한 영화'에만 몰린다는 것이다.
투자업계 관계자는 "100억원 이상의 블록버스터나 저예산 독립영화는 투자가 잘 붙는 반면, 예산이 애매한 작품들은 워낙 비슷한 소재와 컨셉이 겹치는 탓에 투자가 잘 붙지 않는다. 투자업계에도 양극화현상이 심하다”고 했다.
중소 배급사 관계자는 "국내 극장가는 특정 작품이 잘되면 몰아주고 나머지는 외면한다. 여러 종류의 영화가 조명받을 수 있는 환경 조성이 중요하다”고 했다.
물론 작품의 퀄리티도 문제였다. 지난해는 기대와 달리 짜임새가 엉성했던 한국영화가 많았다는 평이다. 인기 웹툰을 영화화했지만 외면받은 '패션왕', 초호화 캐스팅의 사극이지
전찬일 평론가는 "결국은 시나리오와 연출력이 관건이다. 작년 작은 영화들은 입소문만으로 중박 이상 흥행을 일궜다. 지난해 중박이 부재한 것은 그만큼 우리 영화판에 안일한 작품이 많았다는 얘기”라면서 "실험적이면서 관객의 마음을 읽는 중박 영화가 풍성해지길 기대한다”고 했다.
[이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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