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근 서울발레단장 겸 상명대 무용학과 교수는 13년째 발레극 ‘호두까기 인형’을 진행해오고 있다. 이 공연은 박 교수의 야심작이다. “발레는 어렵고 지루하다”라는 편견에 맞선 작품이기 때문.
모든 연령층을 대상으로 이해하기 쉬운 무대를 연출했다. 발레의 기술적 요소와 함께 한 편의 이야기를 담은, ‘동화’ 같은 작품이다. 발레를 많이 접하지 못한 사람도 즐길 수 있도록 ‘관객과의 소통’을 중시했다.
세계적인 발레리나 반다레바(Oksana Bondareva), 발레리노 자칸 아이도스(Aidos Zakan)도 함께 출연한다.
박 교수는 “관객과 소통하는 즐거운 발레극이면서도 볼거리가 풍부한 ‘호두까기 인형’은 세계적 무용수들의 참여로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고 작품을 소개했다.
서울발레단은 다양한 기획테마 공연을 통해 관객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그간 지역문화 발전을 위한 공연을 비롯해 오페라 발레, 뮤지컬 발레 등 타 장르예술과 함께 하는 공연을 선보여왔다. 또한 청소년을 위한 해설이 있는 발레공연, 문화소외지역 공연, 장애우와 함께 하는 공연, 어린이발레 ‘피노키오’ 등 다양한 관객층을 위한 공연을 기획한 바 있다.
서울발레단은 2000년 ‘박재근 발레단’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발레단 이름을 딴 ‘서울발레단’으로 이름을 바꿨다. 그 해 국립극장에서 한국 초연으로 오페라 발레 ‘카르멘’과 ‘이브게니 오네긴’을 선보여 평론가들의 호평을 받으며 명품 발레단으로 도약했다.
‘호두까기 인형’ 공연은 12월 6~7일 양일간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펼쳐진다.
박 교수는 “웅장하고 인상적인 무대세트와 화려하고 독특한 의상 및 소품을 제작해 러시아 원작의 분위기를 최대한 끌어올렸다. 기량이 뛰어난 주역 무용수의 긴장감 넘치는 무대를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하며 기대를 당부했다.
- ‘호두까기 인형’에서 ‘친숙함’을 강조했는데요.
“발레를 많이 접하지 않았던 분들이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요소가 코믹함이라고 생각했다. ‘호두까기 인형’에서는 웃긴 동작과 안무가 많다. 가족발레극이기 때문에 한 편의 드라마를 보듯 자연스러운 느낌을 살리려고 애썼다. 아이들도 50여명 출연한다. 절대 클래식발레처럼 지루하고 딱딱하지 않다.”
- 그래도 ‘발레’라는 장르에 한계가 있지 않을까요.
“장르의 한계가 아니라 우리나라 무용수들의 한계라고 본다. 기술은 좋을지 몰라도 개성이 없기 때문이다. 발레 교육 시스템의 문제가 크다. 우리나라엔 전문발레학교가 없다. 예중, 예고 등 몇 곳 있긴 하지만 일반학교 교과과정과 함께 발레 교육을 받는다. 그래서 부실할 수밖에 없다. 발레는 춤뿐만 아니라 역사, 캐릭터 댄스, 드라마적 요소 등 체계적인 교육 과정을 차례대로 밟아야 한다. 이걸 다 가르치는 곳이 우리나라엔 없다.”
- 그럼에도 한국발레 무용수들의 세계 진출이 가능할까요?
“물론 가능하다. 우리 발레무용수들의 실력은 전 세계에서도 내로라할 정도다. 손동작 하나, 시선부터 걸음걸이까지 기술적으로 완벽하다. 다만 캐릭터가 없다. 실제로 각종 대회 심사위원으로 참석해보면 한국 무용수들의 모습이 천편일률적이다. 2등까지는 하는데 1등을 못한다. 개성이 없어서다.”
- ‘호두까기 인형’에서는 무용수들의 개성을 살렸나요?
“당연하다. 발레극은 무용수의 역랑과 개성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안무가, 연출가의 생각도 중요하다. ‘호두까기 인형’에는 정해진 틀이 없다. 앞서 말한 코믹 안무도 그렇고 2부로 구성된 연출도 마찬가지다. 가령 심포니 발레는 음악에 맞춰 춤만 춘다. 클래식발레는 1막1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계획대로 연출된다. 하지만 ‘호두까기 인형’은 이런 틀이 없다.”
- 특별히 외국무용수를 섭외한 이유가 있나요?
“우선 악사나 반다레바, 자칸 아이도스는 전 세계를 대표하는 무용수다. 최근 가장 활발한 무용수들이기도 하다. 서울발레단과 통하는 부분이 많았다. 발레리나 악사나 반다레바는 우크라이나에서 태어나 세계 최고 권위의 모스크바 국제 발레콩쿠르에서 금상을 수상한 샛별이다. 발레리노 자칸 아이도스는 보스톤 발레단의 수석 발레리노로 발탁됐었지만 현재 알마티 국립발레단에 몸담고 있다. 화려한 수상 경력을 보유한 실력자다. 두 사람의 실력은 공연에서 확인해달라. 자신있다.”
- 서울발레단은 지방 군소도시 공연도 많이 했는데요.
“지방 소도시 주민들은 발레 공연을 접하기 어렵다. ‘지역봉사’라는 관점에서 문화소외지역 공연, 장애우와 함께 하는 공연 등을 했다. 또 우리나라 무용수들은 대학을 졸업한 뒤 진로를 정한다. 프로무용수로 가느냐 다른 일을 하느냐 두 가지다. 프로무용수가 아니어도 춤을 계속 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건 공연뿐이다. 그래서 규모 상관없이 하는 거다. 교육적인 차원에서다.”
- 상업적인 요소는 전혀 없나요?
“아니다. 우리도 돈을 벌어야 먹고 산다(웃음). 다만 수익 규모가 엄청 크지는 않다. 그래서 공연 기획 과정에서 비용 지출을 최대한 줄이려고 한다. ‘호두까기 인형’에서 볼 수 있는 의상들은 모두 우리가 직접 제작한 거다. 보통 의상비로만 5억 이상이 소모되는데 우리는 그 비용을 현저히 낮췄다. 그렇다고 의상이 형편없는 것도 아니다. 무대에서 반짝반짝 보석처럼 빛나는 의상을 볼 수 있을 거다.(웃음)”
- 해외 공연도 많이 하나요?
“1년에 최소 한번은 한다. 지금까지 유럽순회 공연, 미국이민 100주년 기념미국순회공연, 러시아 공연 등이다. 한국적인 발레를 보여주기 위해 많이 노력했다.”
- 한국적인 발레란 어떤 것인가요?
“1986년 삿포로동계아시안게임 때 ‘심청’을 초연했다. 88 서울올림픽 때도 했다. 그때 강력히 주장해 극에 넣은 것이 탈춤이다. 당시 작품이 한국발레의 대표작이 됐다. 3막에 탈춤과 봉사춤이 백미다. 이 작품으로 콜롬비아에 초청받아 다녀오기도 했다.”
- 발레에도 갈라쇼가 있나요?
“발레는 기본적으로 예산이 많이 들어간다. 그래서 큰 무대에서 큰 공연만 주로 열린다. 반면 갈라는 하이라이트만 빼서 보여줘야 하는데, 갈라쇼를 통해 대중에 보다 친숙한 발레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먼저 다가서는 노력이 필요하다. 내가 금난새 선생님을 좋아하는 이유도 이것 때문이다. 선생님은 연주 시작 전에 작품 포인트를 뽑아서 설명을 해준다. 전혀 모르는 사람도 들으면 다 알게 된다. 서울발레단도 같은 지향점을 갖고 있다.”
- 구상 중인 차기작이 있나요?
“2016년이 서울발레단 창단 30주년이다. 이때에 맞춰 ‘백설공주와 일곱난장이’를 선보일 계획이다. 보르도국립교향악단 지휘자가 작곡 중인데 이르면 내년이 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