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는 숫자에 불과해요. 같은 생각, 같은 고민을 공유하다 보면 10살 많은 언니·오빠들과의 벽도 없어지죠"
대학에 갓 입학했을 법한 앳된 얼굴의 손빈희(22·여)씨가 제2회 변호사 시험에 당당히 합격해 어엿한 변호사가 됐습니다.
14살 때 고졸 검정고시에 합격하면서 세간의 관심을 끌었던 그는 대학을 조기 졸업하고, 19살 때 동아대 로스쿨에 최연소로 합격해 또다시 주목받았습니다.
학원과 과외를 전전하며 명문대를 고집하고, 스펙쌓기에 열을 올리는 교육 풍토에서 그가 걸어온 길은 새로운 '롤 모델'이 되기에 충분합니다.
다음 달 중순이면 손씨는 '국제거래 전문변호사'가 되겠다는 다부진 꿈을 안고 미국 유학길에 오릅니다.
"우리나라도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이 많아지면서 국제 무역이 급증했잖아요. 수요는 많은데 이를 전문적으로 뒷받침해 줄 변호사가 부족한 실정입니다. 제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국제거래 전문변호사가 돼보고 싶어요."
중의학을 공부하는 아버지를 따라 중국에 갔을 당시 법을 잘 몰라 사기당하는 한국인을 많이 목격하고부터 손씨는 변호사의 꿈을 꿨습니다.
"무엇을 하든지 '법'이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어요. 선진국이라고 믿었던 우리나라도 아직 국제거래법에 있어서는 하위권에 머물러 있다는 사실을 알고 더 큰 도전을 꿈꾸게 됐어요"
국내 굴지의 기업들이 현지 사정을 잘 모르는 외국 로펌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현실도 그가 국제거래 전문변호사가 되겠다고 결심한 계기가 됐습니다.
한자가 가득한 두꺼운 법전을 공부하는 것이 힘들지 않았냐는 질문에 그는 "어릴 적 '홈스쿨링'을 통해 익힌 공부 방법이 많은 도움이 됐다"고 자신 있게 말했습니다.
늘 스스로 공부해왔기 때문에 시간을 활용하는 방법이나 집중도를 높이는 노하우 등이 몸에 배어 있는 것.
덕분에 손씨는 자신보다 평균 10살이나 많은 로스쿨 동기들 사이에서도 모의고사 시험을 보면 1등을 하는 등 꾸준히 상위권 성적을 유지해왔습니다.
"부모님은 늘 스스로 판단하고 책임져야 하는 상황을 만들어주셨어요. 좌절하고 극복하고 이겨내기를 수천번 반복했죠. 나이는 어리지만 누구보다 깊고 넓은 시야를 가졌다고 자부할 수 있어요. 문득 중국 생활이 떠오르네요"
손씨의 부모는 초등학생인 딸 셋을 중국에 두고 먼저 귀국했습니다. 타국에서 생활비며 살림살이며 집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대소사를 아이들 스스로 책임져야 했습니다.
그러는 동안 손씨 세 자매는 일찌감치 '자신만의 인생철학'을 세울 수 있었다고 합니다.
"제 고향은 인구 20만명의 작은 소도시인 충북 충주예요. 그런 제가 세계에서 제일 인구가 많은 중국 땅에서, 맏이로서 집안일을 이끌어 나가다보니 생활하는 것 자체가 배움이었죠"
어머니 윤미경(47)씨는 "어린 나이에 로스쿨에 들어갈 때만 해도 '수업을 이해만 해줬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했는데 기대 이상으로 훌륭하게 적응하더라"며 "간절히 원하는 목표가 있다보니 어려운 공부도 즐겁게 이겨내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딸이 주변에 휘둘리지 않고 넓은 세상 한 가운데에 우뚝 섰으면 좋겠다"고 소망했습니다.
손 씨는 2004년 8월 고입 검정고시를 통과한 뒤 8개월 만인 2005년에는 고졸 검정고시에도 합격했습니다. 이듬해 자신의 공부 노하우를 담은 '손빈희의 공부가 쉬워지는 동화'(미다스북스)를 펴내기도 했습니다.
이어 2006년 부산외대 법학과에 4년 장학생으로 입학, 3년
손 씨는 "홈스쿨링의 가장 큰 적은 '불안함'인 것 같아요. 사회에 나가서 잘 적응할 수 있을지, 내가 지금 잘하고 있는 건지 늘 불안하죠. 하지만 자신을 믿고 극복하면 분명히 성공할 수 있을 거라 확신해요"라고 조언 했습니다.
[사진 =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