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전문]
Q. 모두들 CEO들의 사회초년생 시절이야기를 궁금해 하시곤 하는데요. 사회 초년생 시절, 어떠셨어요?
A. 여성지 프리랜서 기자로 사회에 첫 발을 내딛었습니다. 일하는 게 즐거워서 정신없이 타이핑했던 것 같아요. 정말 사람들이 생각하는 기자의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머리 질끈 묶고 운동화 신고 정신없이 뛰어다녔죠. 제 이름을 달고 기사를 쓰는 거니까 단어 하나도 대충 쓸 수 없었습니다. 보다 정확한 자료, 멋진 문장을 만들기 위해서 자료조사에 엄청 공들였습니다. 전문가를 찾아가기도 하고 논문도 읽고 정말 수백 권, 수천 권의 책을 읽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쌓아온 콘텐츠들이 다 저의 머릿속에 들어왔고 훗날 저의 사업에 큰 재산에 되었습니다.
Q. 주부관련 사이트를 만들어 보자! 라는 계기가 있었나요?
A. 기자로 활동을 하던 중, IMF가 터지게 되었고 출판사들이 망하기 시작했습니다. 더 이상 고료를 받을 수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죠. ‘지금껏 글만 쓰며 살아왔는데 이제 무엇으로 밥벌이해야 하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에게 남은 거라곤 그동안 주부관련, 육아관련 기사를 쓰면서 모아온 콘텐츠 뿐 이었습니다. 그 때, 'IP사업(정보제공사업)을 해보면 어떠냐?' 라는 제안을 받게 되었고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Q. 그 당시 IP사업에 많은 사람들이 뛰어들곤 했지만, 좋은 정보를 제공해야지만 수익이 들어왔잖아요?
A. 주부관련, 육아관련 콘텐츠는 대한민국에서 최고라고 자부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지금도 그렇고요. 당시 매일 정보들을 업데이트 했던 것 같아요. 처음에는 수백 개였던 정보들이, 수천 개가 되면서 정보를 클릭하는 사람들도 급증하게 되었습니다. IP사업은 방문자들이 정보를 클릭하면 그 클릭수대로 돈이 들어오는 방식이었는데, 그 당시 한 달에 1,000만원 정도 벌었습니다. ‘정보가 돈이 될 수 있구나.’ 라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Q. IP사업에서 인터넷 사업으로 넘어오신 이유가 있으신가요?
A. IP사업은 '정보를 제공하고, 돈을 받는다.' 라는 단순한 사업구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언젠간 한계가 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던 차에 2000년, 인터넷 시대가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인터넷 사업은 정보를 제공할 수 도 있고, 그 정보를 재가공시켜서 다양한 사업으로 확대 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드림미즈’라는 회사를 설립해서 여러 사이트를 만들기 시작했죠. 주부와 관련 된 모든 콘텐츠를 활용한 사이트를 만들었습니다. 주부교육을 담당하는 ‘사이버주부대학’, 아이들 교육을 담당하는 ‘맘스쿨’, 조기영어교육을 담당하는 ‘쑥쑥닷컴’ 등, 사이트를 개설했습니다.
Q. 보통 인터넷 사업은 젊은 청년들이 많이 뛰어들고 있는 분야인데, 젊은 사람 따라잡기 힘들진 않으세요?
A. 사실 이 나이에 인터넷 사업을 한다고 하면 다들 놀래죠. 보통 제 또래는 독수리 타법에 메일도 못 보낼 거라고 생각하시는데, 그건 편견입니다. 미디어와 콘텐츠를 다루는 사업을 하다보니까 남들보다 트렌드에 민감한 편이고, 감각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인터넷 사업을 하는데 있어서 젊은 사람에 비해 결코 경쟁력에서 뒤쳐진다거나 기술력이 뒤처지진 않습니다. 오히려 그동안 살면서 여러 경험을 해봤으니 고객을 상대하는 노하우나 직원들을 끌어주는 리더십 같은 것이 능숙하다고나 할까요...?!(하하)
Q. 대표님 말씀을 들어보면 위기 한 번 없었을 것 같은데, 위기 있었나요?
A. 회사를 운영하면서 위기가 없다는 건 다 거짓말일 겁니다. 인터넷 사업은 24시간 돌아가기 때문에 매 분, 매 초 위기의 순간들이 들이닥치곤 합니다. 가장 힘들었을 때를 회상해 본다면 회사가 자금난에 허덕일 때, 그리고 직원들이 줄사표를 제출했던 시기 같습니다. 제 욕심에 사이트를 무리하게 확장시켰고 직원들의 업무량이 늘어나면서 다들 버티지 못하고 하나 둘, 회사를 떠났습니다. 직원을 붙잡아봤지만 월급을 2배를 올려달라고 요구하더라고요. 월급 인상해 줄 자금은 없고, 회사는 텅텅 비어가고 앞이 보이지 않는 답답한 시간들이었습니다.
Q. 위기의 벽을 깨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하셨습니까?
A. 우선, 회사 재정비에 들어갔습니다. 중소기업청에서 자금을 지원한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고 심사를 받았어요. 그 당시 2억 원의 자금을 받아서 자금난을 극복하고 '사이트부자'라고 불릴 정도로 우후죽순으로 만들어낸 사이트를 대대적으로 정리하기 시작했습니다. 방문자가 낮은 사이트, 수익이 나지 않는 사이트를 폐쇄하고 나니 직원들이 부담하는 업무량이 줄기 시작했고 남은 사이트에 보다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그 계기로 남은 사이트를 더 탄탄하게 다져나가 수익구조를 만들어 냈습니다.
Q. 사이트를 정리하시는 과감함과 결단력이 있으신 것 같습니다. ‘깡다구’있다는 말, 들어보셨을 것 같은데 어린 시절 어떤 분이셨나요?
A. 어린 시절 제 모습은 지금과는 많이 다른 것 같습니다. 크게 눈에 띄지 않는 아이였죠. 조용히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하는 학생이었습니다. 그래도 주위에는 늘 친구가 끊이질 않았습니다. 책을 많이 읽다보니 제 머릿속에 '정보'들이 많았거든요.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주니 자연스럽게 친구들이 모여들더라고요. 그러다 글재주 하나로 주부나 육아관련 잡지사에서 프리랜서 기자로 일을 하기 시작했죠. 그때 ‘깡다구’가 생긴 것 같습니다. 이리저리 취재하느라 뛰어다니고, 인터뷰 한 번 해달라고 사정사정 하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니까 성격이 외향적으로 변하기도 했고요.
Q. 앞으로의 사업 계획이 있으시다면?
A. '정보'하나로 시작한 사업은 어느새
[사진=㈜드림미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