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대표님이 어린 시절은 어땠습니까?
저는 어린 시절을 경북 안동에 있는 작은 시골마을에서 보냈습니다. 아무래도 시골이다 보니 가구 수도 적고, 또래친구도 많이 없었어요. 자연스레 저는 동네 어른들과 말동무를 하며 하루를 보내곤 했죠. 그렇게 자연스럽게 사회성이 길러진 것 같아요. 모두들 여성으로서 사업을 성공시키기 힘들지 않았을까, 라고 말하는데 저는 악바리 같은 성격보다는 오히려 몸에 밴 친절함으로 사업을 성공시킨 케이스예요.
Q. 사회 생활을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나요?
20살이 되자마자, 서울에 올라와 경리사원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회사에서 유명할 정도로 부지런하고 성실했죠. 업무능력 또한 월등했고요. 그러던 중, 승진의 기회가 있었는데 여성이라는 이유로 누락되었습니다. 내 역량을 인정해 주지 않는 곳에 있는 것 보단, 내 스스로 역량을 떨쳐보여 줄 기회가 없을까 생각하고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처음 시작하게 된 것이 만화방이었습니다. 운영은 잘되었지만, 저랑 잘 맞지 않더라고요. 워낙에 활동적이고 능동적인 성격인데 만화방에서는 그저 책 반납이나 매장관리가 전부였으니까요.
Q. 보다 적극적인 사람이 되기 위해, 스스로 하신 노력이 있다면?
과감하게 만화 책방을 정리하고, 다른 사업구상에 들어갔어요. 그때 나이가 34살이었고, 두 딸 아이가 있으니 사업을 시작하는데 제약이 많았습니다. 어떤 사업을 해볼까 하던 찰나에 ‘미용사’라는 직업이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손님마다 각기 다른 스타일, 외모를 가지고 있으니 같은 커트를 해도 다 다르겠다.' 라는 생각으로 미용사의 길에 뛰어들었습니다. 변화를 좋아하는 저에겐 딱 맞는 직업이었죠.
Q. 미용실 운영, 성공적이었나요?
처음엔 아주 작은 미용실에서 시작했어요. 고작 두 개의 거울과 의자가 전부였으니까요. 그런데 오히려, 작은 미용실을 점차 넓힐 수 있다고 생각하니 희망이 솟는 것 같았습니다. 손님들 마다 원하시는 스타일을 맞춰 드리려고 노력했고, 매일 밤 미용실에 남아 마네킹을 상대로 파마 연습도 하고요. 그렇게 시작한 미용실이 어느새 번창을 해서 40평에까지 이르게 되었죠. 제 손으로 모든 것을 일궈내었다고 생각하니까 정말 벅차고, 매일 파마 약에 몸에 밸 정도로 노력한 것을 보상받는 기분이었습니다.
Q. 가발 사업에 뛰어드신 계기가 있나요?
워낙 미용실이 유명해지다 보니, 다양한 손님들이 저희 미용실에 많이 방문하셨어요. 그 중엔 가발을 쓰시는 대머리 분도 있었고, 원형 탈모 환자 분들도 많았어요. 그러던 어느 날, 한 소녀가 모자를 푹 눌러쓰고 저희 미용실에 들어왔습니다. 알고 보니 두피에 화상을 입어서 모발이 다 빠졌더라고요. 그날 밤, 어린 학생이 눈앞에 아른거려서 도저히 밤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가발을 하나 선물해 주고 싶어서 서울에 있는 가발 공장으로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기존에 있던 가발은 문제점이 너무 많더군요. 그렇게 '내가 한번 만들어 보면 어떨까?' 라는 생각으로 가발 사업에 뛰어들게 되었어요.
Q. 그렇게 시작한 가발사업, 첫 시작은 어땠나요?
'불완전' 그 자체였습니다. 물론, 그동안 쌓아 온 미용 노하우와 기술로 고객님들에게 자연스러운 가발을 선사할 수 있었지만 기존 가발이 가지고 있는 단점을 뛰어넘는 기술을 만들지 못했죠. 그 당시, 가발은 착용 법은 부착 형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인체에 무해한 본드를 두피에 발라 가발과 부착하는 방식이었는데, 워낙 두피가 약하다 보니 쉽게 짓무르고 통풍이 안 돼서 냄새도 났고요. '그러한 문제점을 타파해야하지 않을까?' 해서 94년에 김찬월 가모 연구소를 설립하게 되었습니다.
Q. 그래도 잘 운영되고 있던 미용실을 닫고, 가발사업에 뛰어드는 일은 쉽지 않았을 텐데?
네, 물론 쉽지 않았습니다. 주변의 반대도 무척이나 많았죠. 당시에 저희 미용실이 월 매출이 1,000만 원대가 넘어가고 있었을 때니까요. 그래도 뭐 어쩌겠어요. 이미 마음을 먹고 난 뒤라 '꼭 해내고야 말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발에 대해 배울 곳이 없으니 무작정 서울에 있는 가발공장을 돌아다녔어요. 거기서 가발이 생산되기까지의 과정을 눈에 익히고 배웠습니다.
Q. 특허로 유명하신데, '김찬월표 특허'는 무엇인가요?
가발 뿐 만 아니라, '결속 고정 방식'이라는 가발 착용 법을 고안해내었습니다. 기존에 있던 착용법의 문제점을 보완해 통풍과, 자연스러움이라는 강점을 가지고 있는 기술인데요. 고객님들 두피에 남아있는 튼튼한 자모에 실리콘을 붙여 고정 틀을 만들어 낸 후, 면실을 이용해 가발과 엮는 방식입니다. 이 기술로 특허기술을 보유하게 되었고, 98년 정부로부터 신 지식인상도 수여받았습니다.
Q. 연구에 어려움은 없으셨는지요?
사실, 매 순간이 어려움이었습니다. 기존에 있던 방식과는 차원이 달랐으니, 어디 가서 배울 수 있는 부분도 없었고 도움을 청할 곳도 없었습니다. 매일 마네킹 머리를 가지고 가발과 엮어보곤 했습니다. 어느 날은 금세 떨어지기도 하고, 실이 끊어지기도 하고요. 또 어떤 날은 너무 세게 엮여 떨어지지 않더라고요. 연구에 진전이 없는 날이면 속상한 마음에 눈물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수없이 노력하니 결국엔 되더라고요. '아, 이제 드디어 고객들이 원하던 기술을 만들어냈다.'라는 마음에 설레서 잠이 오지 않았죠.
Q. 고객들의 반응은 어땠습니까?
그야말로 뜨거웠습니다. 처음엔 의심을 하는 분들도 있었어요. 아무래도 가발을 쓰시는 분들에겐 착용감도 중요하지만, 쉽게 떨어지지 않는 튼튼함이 필요하거든요. 그런 분들에게 더 자신 있게 권해드렸어요. 한번 써보시라고요. 백이면 백, 다 만족하시고 주위에 친구 분들까지 데리고 와주셨어요. 저를 믿고 머리를 맡겨주시는 고객분들 때문에 더 열심히 뛰게 되는 것 같습니다.
Q. 지금까지고 직접 가발 시술을 하시는지요?
네, '김찬월 가모 연구소'가 유명해지면서 전국 각지에서 저희 연구소를 찾아주셨어요. 꼭두새벽부터 저를 만나기 위해 찾아온 손님들을 보니 뭐라 감사를 드려야할지, 스스로에게 사명감도 생겼고요. 그런 분들을 위해서 서울, 경기도 부평, 부산, 대구에 지점을 냈습니다. 매 주마다 정기적으로 지점들을 방문하면서 직접 시술하고 있습니다.
Q. CEO분께서 직접 시술을 한다니, 조금 의외인데요?
다들 그렇게 말씀해주시곤 하시더라고요. 제가 생각하는 CEO는 맨 꼭대기위에서 아랫사람들을 지시하고, 명령을 하달하는 것이 아니라 같이 현장에서 움직이면서 조직이 발전하기 위해 끊임없이 협동해 나가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이름을 걸고 하는 사업이니 만큼 더욱 현장에서 열심히 뛰어들어야죠. 매일 고객들을 만나 뵙고, 그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생각에 즐겁게 일하고 있습니다.
Q. 앞으로의 소망이 있으시다면?
'가발전문학교'를 설립하는 것이 저의 소망입니다. 과거보다 미용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면서 미용업에 대한 시선들이 많이 좋아졌습니다. 그런데 '가발'에 대해서는 아직 부족한 것 같습니다. 많은 공부나 이론이 필요한 사업임에도 불구하고요. 제가 가지고 있는 노하우와 기술을 후배들에게 전달해 더 많은 고객분들이 좋은 가발을 만나 활짝 웃을 수 있게 해드리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