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25년 전, 3천만 원의 빚을 지고 사업을 시작해 현재는 연 150억 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는 CEO가 있습니다. 현(現) 경북전세버스조합 이사장이면서 경북 상주 권역 내의 전세버스 사업을 석권하고 있는 (주)수정관광 이병철 사장이 그 주인공입니다. 그의 재미난 이력 중 하나는 쉰 살에 고등학교를 졸업해 현재 계명대학교 경영학과 3학년에 재학 중이기도 하다는 것입니다. 그의 인생에 어떤 일들이 일어났던 것일까요? 이병철 사장의 우여곡절 많은 인생 이야기, 그리고 성공비결을 직접 만나 들어보았습니다.
Q. 50살에 고등학교를 다니시고, 52살에 대학교에 입학하셨다고요. 어렸을 때 무슨 사연이라도 있으셨나 봐요?
A. 네. (웃음) 6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는데 집안 형편상 하루빨리 돈을 벌어야 하는 처지에 놓였었죠. 졸업을 불과 3개월 남겨두고, 고등학교를 중퇴했었어요. 그래서 최근에 다시 졸업장을 땄죠.
Q. 당시 막막하지 않으셨어요? 그래서 무엇을 하셨나요?
A. 80년대 초반 당시 일일 학습지 문화가 처음 도입되고 있었어요. 그걸 보는 순간 ‘이거다!’ 싶었죠. 일주일에 한 번씩 우편으로 학습지를 보내는 영업을 시작했는데, 회원이 점차 늘어나면서 23살 때쯤 됐을 때 40여 명의 직원들을 거느렸어요. 정말 그때는 자만심이 하늘을 찔렀죠. 결혼까지 했고요.
Q. 그럼 이 전세버스 사업은 언제부터 하신 건가요?
A. 학습지 사업이 망하고 나서였죠. 80년대 후반에 학원들이 생겨나면서 학습지 시장이 줄어들기 시작했거든요. 어렸으니 경영에 대해 전혀 몰랐죠. 시장을 예측하거나 계획을 세우는 일도 못했고, 그렇게 속수무책으로 큰 빚을 지고 말았습니다. 망연자실한 채로 몇 날 며칠을 보냈는데, 이렇게는 안 되겠다 싶었죠. 결혼도 한 몸이라 어떻게든 다시 재개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당시 시골마을에서 전세버스 한 대를 전세해 계모임이며 효도관광을 떠나는 여가문화가 유행하던 때였는데, 이번에는 전세버스 사업에 뛰어보자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돈은 없었습니다. 저희 집 논과 처가의 땅까지 담보를 잡고난 뒤 겨우 자금을 마련했습니다.
Q. 사업에 뛰어드실 때, 당시 시대적으로 유행하고 있는 것을 사업 아이템으로 잡으시는군요. 전혀 모르던 분야에 뛰어드는 게 두렵지는 않으셨나요? 초기에 어려움이 많으셨을 것 같은데요?
A. 말도 못하죠. 부랴부랴 대형면허를 취득하고 사업에 나섰습니다. 첫 손님을 태우던 날을 아직도 못 잊습니다. 행선지는 경북 울진의 백암온천이었어요. 초행길이다 보니 길을 알 수가 있나요. 그 길이 그 길이고, 좌회전인지 우회전인지가 헷갈리니 대략난감이었죠. 손님들 앞에서 차를 세우고 길을 물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요. 길도 모르는 전세버스 기사라고 하면 신뢰가 그대로 무너질 수도 있으니 좌불안석이었습니다. 그 때 제 나름의 전략을 짠 것이 바로 ‘주유소 들르기’였습니다. 기름을 한꺼번에 많이 넣지 않고, 조금씩 조금씩 넣어가면서 길을 물어가자는 전략이었죠. 그때만 생각하면 아직도 등에 땀이 흐릅니다. 그날 이후 밤잠을 설쳐가며 지도를 놓고 길 공부를 했지요.
Q. 수정관광은 언제 차리셨어요?
A. 그렇게 한 푼 두 푼 돈을 모아가면서 ‘내 회사’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강해졌어요. 때마침 유명했던 한 전세버스 회사가 부도가 났는데, 저에겐 희소식이었죠. 이전만 하더라도 신규 사업자를 내는 것이 쉽지 않았어요. 이것이 기회라는 생각이 들어서, 인수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 회사는 제 근거지인 상주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영천에 있는 회사였어요. 영업의 근거지는 상주이고, 차의 근거지는 영천이 되니 불편함이 많았습니다. 시에서는 허가를 해주지 않아 사업 근거지를 옮길 수도 없었고요. 3년 동안 영천과 상주를 오가며 사업을 하다가, 행정소송 끝에 근거지를 상주로 옮겼어요. 이 때 회사이름을 ‘수정관광’이라고 바꿨어요. 제 고향이 수정리였거든요. 오랜 시간 끝에 제 고향에 자리 잡게 된 것을 기념해서 이름을 그렇게 지었습니다.
Q. 감회도 남다르셨겠어요?
A. 네. 제 회사를 만들고 나서, 제 나름의 원칙도 세웠어요. 당시 지입차가 불법 문제로 떠오르고 있었는데, 저는 절대 지입차를 쓰지 않겠다는 원칙을 세웠습니다. 직접 정비기술도 배우고, 제가 손해를 보더라도 고객의 여행을 끝까지 책임지고 만족을 드리기 위해 노력했죠. 그것은 결국 저에 대한 고객들의 신뢰로 이어졌고, 이것이 다시 소개로 이어져 매출이 상승하는 효과들을 가져왔죠. 알음알음 12대의 낡은 중고버스를 사들여 시작했는데, 저를 찾아준 고객들에게 진심으로 최선을 다한 것이 결국 탄탄한 영업으로 이어졌어요. 언젠가부터 ‘수정관광’은 상주권역에서는 메이저 전세버스 회사로 이름을 알려가기 시작했습니다.
Q. 경북전세버스조합 이사장은 어떻게 하시게 됐어요?
A. 뭔가 사업의 기반을 잡아나가면서 한계를 느꼈어요. 결국 전세버스 사업은 지역민들과 함께 상생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했죠. 또 사업을 하다 보니 보험처리에서나 사고수습에서도 혼자서는 많은 어려움을 느꼈어요. 그때 전세버스 사업자가 지역별로 조합을 결성해 운영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 조합의 권력이 엄청나게 막강했습니다. 차고지의 허가를 대행하고 차량 점검이나 자동차 보처리 등의 핵심 업무를 대행하는 것이 주 업무였는데요. 조합원들의 권익을 보호하는데 앞장서고, 업계 수준을 함께 끌어올리는 노력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불현듯 이사장에 도전해보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조합 활동을 전혀 하지도 않던 사람이 쑥 들어와서 하겠다고 하니 아니꼽게 보는 시선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제 승리였죠. 오히려 신선하게 봐주시는 분들도 있었고 뭔가 바꿔보겠다, 해보겠다 하는 열의를 높이 사준 것 같습니다.
Q. 그래서 이사장으로 계시면서 어떤 일들을 하셨나요?
A. 업계 전체가 무계획적으로 영업을 벌이는 풍토를 고치기로 했어요. 가까운 영업권끼리 묶어 지역협의회를 구성하고, 공동 시장 대응을 해나가기로 한 것이죠. 출혈 경쟁보다는 갈등을 해소하고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했습니다. 조합원들의 격을 높이기 위한 교육도 강화했고요.. 조합원들의 수준이 높아져야 업계의 수준이 높아지고 미래를 담보한 발전이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Q. 최근에 다시 고등학교를 졸업하셨다고요. 실제로 수업까지 들었다고 하던데, 어려운 점은 없었습니까?
A. 고등학교를 졸업하기로 마음을 먹은 것은 스스로 좀 더 떳떳해지기 위해서였어요. 일을 수행하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지만 왠지 스스로 위축되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거든요. 처음에는 용기가 안 났지만, 막상 다녀보니 참 즐거웠어요. 수업도 같이 듣고, 어린 친구들과 이야기도 나누고요. 잠깐의 학교 생할이었지만 아이들의 마음을 통해 그동안 잊고 지낸 꿈을 되찾았고 책임감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이병철 장학회’를 만들어 매년 모교의 3학년 학생 세 명을 선정해 100만 원씩 장학금을 주면서 지금도 그 인연을 소중하게 이어가고 있습니다. 지금 생각해봐도 제가 일생을 살면서 매우 잘한 선택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최근에는 대학생으로서의 도전에도 나섰습니다. 학문적 깊이가 더해지니 시장을 보는 눈도 더욱 넓어졌다는 느낌이 듭니다. 요즘의 추세에 맞게 사업 전략도 다변화시켜 나가고 있습니다.
Q.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요?
A. 최근 상주의 명품 쌀을 활용한 ‘쌀국수 사업’에 뛰어들었습니다. 지역 특산물을 가지고 제대로 된 사업을 한 번 해보고 싶었거든요. 당장 수익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제 미래를 책임질 신사업이 될 것이라는 확신이 큽니다. 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