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학개미 투자 길잡이 ◆
25일 한국예탁결제원 증권정보포털에 따르면 지난달 국내 투자자들의 일본 주식 매수 건수는 5911건을 기록했다. 매수 건수는 1년 전(3816건)과 비교하면 1.5배 증가했다. 월간 기록으로는 통계자료가 있는 2011년 이후 최대 수준이다. 이 기간 매수금액은 9678만 달러(약 1386억원)로 집계됐다. 지난 4월 일본 주식 매수 건수가 처음으로 5000건을 돌파했는데 이후 9월까지 월평균 5343건을 이어가고 있다.
올 4월부터 일본으로 향하는 투자자가 늘어난 것은 무엇보다 환율 효과다. 현재 엔화값은 달러당 150엔마저 위협하며 32년래 최저 수준으로 내려갔다. 국내 투자자에게 더 호재인 점은 달러당 엔화값이 달러당 원화값보다 가파르게 떨어졌다는 것이다. 100엔당 원화값이 3월 말 1000원 수준이던 것이 현재는 960원대에서 거래되고 있다. 25일에는 100엔당 962.49원에 거래를 마쳤다. 지난 6월에는 934원까지 높아지기도 했다. 한국 투자자에게는 더 적은 돈(원화)으로 투자가 가능해진 셈이다.
구체적으로 국내 투자자들은 일본 반도체, 로봇 관련 기업 주식을 사들였다.
국내 투자자들은 로봇 등 유망한 분야의 일본 주식을 산 것으로 나타났다. 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최근 한 달간 국내 투자자 매수 상위 일본 기업은 반도체 부품 기업인 롬, 글로벌 산업용 로봇 기업인 화낙, 공장 자동화 전문 기업인 키엔스 등이었다. 롬 주가는 반도체 업황이 악화되면서 올해 들어서만 59% 하락했는데 저가 매수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최근 국내 증시에서 로봇 섹터가 관심을 끈 것도 세계 산업용 로봇 시장의 절반을 차지하는 일본 기업(화낙, 키엔스 등) 주식에 매수가 몰렸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이들 기업도 올 들어 주가가 크게 하락해 화낙 주가는 18%, 키엔스는 31% 떨어졌다. 이 밖에 국내 투자자들은 게임 기업 닌텐도와 비즈니스호텔 운영업체인 교리츠 메인터넌스 주식도 사들였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일본 증시에는 로봇 등 세계적 경쟁력을 지닌 기업이 다수 상장돼 있고 2025년까지 큰 선거가 없는 점이 매력적"이라고 설명했다. 순매수 상위에 일본 주요 리츠인 닛폰 빌딩 투자법인이 포함된 것도 눈길을 끌었다.
국내 투자자의 식성은 일본 기업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이 기간 국내 투자자들은 일본에 상장한 미국 상장지수펀드(ETF)도 대거 매수했다.
최근 한 달간 순매수 1위인 닛코 리스티드 인덱스 미국 주식 나스닥100(Nikko Listed Index Fund US Equity(NASDAQ 100) Currency Hedge ETF), 3위인 아이셰어스 미국채 20년물(Ishares 20+ Year US Treasury Bond JPY Hedged ETF), 4위인 아이셰어스 S&P500(Ishares S&P 500 JPY Hedged ETF) 상품은 미국 투자 ETF다. 또 환헤지(환율고정)를 했다. 달러당 엔화값 변동에 따른 수익률 변화 없이 오로지 기초지수 수익률만 추종하는 것이다.
한국 투자자가 굳이 일본 증시에 상장된 미국 ETF에 투자한 이유는 환율인 것으로 풀이된다. '킹달러' 시대에 상대적으로 더 하락한 엔화로 투자하면 원화에 비해 더 적은 금액으로 투자가 가능하다. 그만큼 수익률은 높아지는 셈이다. 여기에 원→엔은 노출, 엔→달러는 헤지함으로써 엔화 강세에 따른 환차익을 얻으면서 달러 손실은 방어할 수 있다. 엔화가 강해질 것이라는 판단 아래 미국 자산 가치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는 것이다.
김형우 미래에셋자산운용 글로벌ETF마케팅본부장은 "일본 주식은 가격별로 10주, 50주, 100주씩만 살 수 있다 보니 1주 또는 10주씩 살 수 있는 ETF로 사는 경향이 있다"며 "이 상품들에 대한 수요는 국내 투자자들이 미국 주식시장의 저평가, 달러의 고평가 판단 아래 나오는 것으로 해석된다"고 말했다. 상품이 복잡한 만큼 리스크도 잘 따져봐야 한다. 우선은 수수료다. 원→엔→달러로 두 번 환전해야 하기 때문에 그만큼 환전 수수료가 비싸진다. 달러 헤지에서 발생하는 수수료도 고려해야 한다. 이들의 연간 총보수는 0.1~0.2%로 미국 대표 ETF인 SPY(SPDR S&P 500 ETF Trust, 총보수 0.09%)에 비해 약간 비싼 편이다. 엔화를 보유하고 있다면 수수료를 아낄 수 있다.
일각에서는 엔화 약세가 지속돼 달러당 160엔까지 떨어질 것이란 전망까지 나온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유로·파운드화와 같이 엔화 초약세의 가장 큰 원인은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와의 통화정책 차별화, 일본 경제의 취약한 펀더멘털에 따른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은 최근 엔화를 매입하는 등 외환시장에 개입한 바 있으나 '반짝 효과'에 그쳤다. 시장에서는 엔저의 근본 원인인 미국과 일본 간 금리 차가 쉽게 좁혀지지 않을 가능성이 큰 만큼 엔화 약세가 장기간 이어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아울러 일본 ETF는 거래량이 전반적으로 낮기 때문에 등 유동성을 확인해야 한다. 닛케이255와 같은 지수형 상품으로 투자하는 게 적합하다고 전문가는 조언한다.
[박윤예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