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H지수(HSCEI)가 가파른 낙폭을 보이면서 10조원 규모에 달하는 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투자자들의 원금 손실 우려가 커지고 있어서다. 전체에서 절반가량이 이미 손실 위험 구간에 접어들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상장지수펀드(ETF)나 개별 종목 투자는 하락한 만큼 손실을 감내하면 되지만, ELS는 계약 조건에 설정된 수준 밑으로 떨어지면 손실이 대폭 발생한다. H지수는 중국 본토 기업이면서 홍콩 거래소에 상장돼 거래되고 있는 종목으로 구성돼 있다. 홍콩증시의 대표지수인 항셍지수와는 다른 것이다.
24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H지수가 올해 36% 넘게 하락하면서 관련 ELS가 원금 손실 발생 구간(녹인·knock-in)에 진입한 상품이 빠르게 늘고 있다. 대부분 ELS 상품이 H지수 5000~6000 사이를 녹인 구간으로 설정하고 있는데, 최근 5200선까지 깨지며 손실 경고음이 커진 것이다. 한국투자증권에 따르면 11일 현재 H지수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ELS 발행 규모는 10조3036억원에 달한다. 이 중 H지수 5500 이상에서 손실이 발생하는 상품 규모만 2조5111억원이다. H지수가 추가로 하락해 5000선이 무너지면 손실 발생 상품 규모는 5조7167억원으로 폭증한다. 손실 규모는 각 상품의 계약 조건에 따라 다르지만 ELS 상품 특성상 대폭 손실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H지수 5000~5500 선에서 손실 발생 규모가 급증한 것은 증시가 호황이던 지난해 2~3분기에 가입한 ELS 상품이 많았기 때문이다.
백두산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기초자산이 H지수인 공모 ELS 중 녹인 구간이 5500 위인 상품이 2조5000억원으로 전체 중 26%이며, 5000~5500 사이에 있는 상품 잔액 비중은 3조2000억원으로 30%"라고 설명했다.
H지수는 연초 대비 36% 넘게 급락해 코스피(-25%)와 상하이종합주가지수(-17%) 등에 비해 부진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 미국발 금리 인상과 긴축 가속화로 홍콩 증시에 상장된 기술주들이 타격을 입었고, 중국 정부의 반독점 규제 등 정책 우려까지 겹치며 투자심리가 악화된 것으로 분석된다. 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3연임이 결정된 후로 홍콩 증시가 급락하고 있는 상황을 고려하면 향후 추가적인 하락 가능성도 있다. 이 경우 ELS 관련 투자자들 손실은 더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홍콩 증시 하락세가 내년 초 이후 진정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김경환 하나증권 연구원은 "홍콩 증시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전 세계와 중국 증시 대비 유독 부진한 이유는 긴축으로 인한 경기 침체에 더해 극단적인 산업 정책, 부동산, 미·중 관계 등 구조적 위험이 중첩됐기 때문"이라며 "다만 상반기 홍콩 증시가 이미 주가순자산비율(PBR) 1배를 하회하며 이 같은 우려를 상당 부분 반영하고 있어 내년 상반기에 회복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ELS뿐 아니라 관련 ETF 상품도 손실 폭이 커지고 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해 KODEX 차이나H레버리지(H)는 62% 급락했다. 해당 상품은 H지수 일별수익률의 2배를 추구하는 레버리지 ETF로, 홍콩 증시 반등을 노리고 높은 수익을 내기 위한 공격적 투자자금이 몰렸지만 그만큼 큰 손실을 보고 있는 상황이다. 반면 H지수를 역으로 추종하는 KBSTAR 차이나H선물인버스(H)는 35% 급등했다.
ELS는 H지수를 비롯해 S&P500, 유로스톡스, 코스피 등 지수를 추종하는 상품이 가장 많은 유형을 차지하고 있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올해 3분기에 발행된 ELS 중 해외 및 국내 지수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지수형 ELS는 6조339억원으로 전체 발행 금액의 76.2%에 달했다. 하지만 올 들어 전 세계 증시 하락이 이어지면서 지수형 ELS 인기도 시들해졌다. 3분기 전체 ELS 발행 금액은 지난해 4분기 말과 비교하면 68.3% 줄어들었다. 특히 H지수를 기초자산으로 포함한 ELS의 발행 금액은 1조1169억원으로 전년 동
반면 ELS 미상환 발행 잔액은 전년 동기 대비 30% 증가한 68조7442억원을 기록했다. 미상환 발행 잔액이 증가했다는 것은 상환 조건을 충족하지 못한 ELS 상품이 늘고 있다는 의미다.
[김금이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