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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스피가 최근 1년새 30% 가까이 폭락한 가운데 국내 증권사에서 나온 매도 보고서는 단 3건 밖에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적 관련이 없음. [사진 = 연합뉴스] |
주식을 잘 아는 친구의 말을 믿고 어떤 종목을 매수했다는 사람은 많지만 증시 전문가인 애널리스트의 기업분석보고서를 보고 투자를 한다는 사람은 거의 못 본 것 같습니다. 일반 투자자들 사이에서 애널리스트들은 상당한 불신의 대상입니다. 애널리스트들이 좋다고 하면 팔아라고 할 정도입니다.
사실 애널리스트들이 제시한 투자의견, 목표주가는 100% 신뢰하기가 어려운 게 사실입니다. 주가가 오를 때는 덩달아 목표주가를 올리면서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고 외치다가 주가가 하락하면 또 목표주가를 내리면서 "가격이 싸졌다"고 이야기합니다. 특히 삼성전자가 연초 대비 30%, 카카오가 60% 하락하는 급락장에서도 "사라"를 반복했다는 점은 문제가 있어 보입니다.
그런데 이 문제가 비단 애널리스트 개개인의 자질 때문일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우리나라 투자 문화도 바뀌어야 할 부분이 분명 있습니다. 애널리스트의 법인 영업, 매도 보고서에 대한 과도한 비판 등 애널리스트가 소신을 펴기 어려운 환경적인 문제도 있습니다.
이번엔 애널리스트가 목표주가와 투자의견을 어떻게 산출하는지, 그리고 애널리스트가 보고서에 낙관적인 전망을 담을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인지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먼저 주가수익비율(PER)을 복습하겠습니다. PER은 실적 대비로 주가가 싸다, 비싸다를 평가하는 지표입니다. 시가총액을 영업이익으로 나누어서 산출합니다. 삼성전자의 경우 현재 시가총액이 331조원, 지난 한해 영업이익이 52조원이었습니다. 작년 실적을 기준으로 한 삼성전자의 PER은 6.36배(331조/52조)입니다. 코스피 시장 전체의 PER은 현재 9.62배입니다. 삼성전자는 코스피 대장주임에도 코스피 시장 전체의 밸류에이션보다도 낮은 가격에 거래되고 있는 것입니다.
애널리스트들은 이 PER 공식을 이용해서 목표주가를 산출합니다. PBR(주가순자산비율), PSR(주가매출비율), EV/Evidta(상각 전 세전이익 대비 기업가치) 등 다른 방식도 사용하는 지표가 다를 뿐 방식은 거의 비슷합니다.
'PER=시가총액/영업이익'이기 때문에 '시가총액=영업이익 x PER'입니다. 주가는 보통 실적에 선행하기 때문에 영업이익은 내년이나 내후년의 예상 실적을 추정해서 반영합니다. 실적 전망에는 당연히 주관적인 관점이 들어가게 됩니다. 내년에 반도체 경기가 살아난다고 하더라도 애널리스트마다 반도체 가격 반등 시점이나 반등의 폭에 대한 예상은 다들 다를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 여기서 PER로 어떤 숫자를 넣을 것인가 하는 점은 완전하게 애널리스트의 선택입니다. 누구는 시장 전체의 평균 PER을 넣기도 하고 누구는 업종의 평균 PER을 넣기도 합니다. 또 같은 업종이라도 하더라도 상대적으로 주가가 높은 외국기업을 포함해 평균을 내느냐, 국내 상장사들의 평균만 반영하느냐도 큰 차이를 낳습니다.
예상 실적에 임의의 밸류에이션, 즉 PER을 곱하면 목표 시가총액이 나오게 되고 이를 발행주식수로 나누면 목표주가가 됩니다. 직접 삼성전자의 목표주가를 구해보겠습니다. 내년 삼성전자의 연간 영업이익을 40조원으로 예상하겠습니다. 그리고 삼성전자의 밸류에이션은 PER 8배 정도면 무난할 것 같습니다. 40조원에 8을 곱한 320조원이 목표 시가총액이 됩니다. 삼성전자의 발행주식수는 대략 60억주 정도 됩니다. 결과적으로 목표가는 5만3300원이 됩니다.
투자의견은 현재주가와 목표주가의 괴리율에 따라 결정됩니다. '매수', '중립', '매도' 3단계로 가정하면 보통 목표주가가 현재 주가보다 15% 이상 높다면 '매수', 15% 이상 낮다면 '매도' 의견이 나가고 차이가 15%보다 적다면 '중립'이 되는 식입니다. 제가 산출한 삼성전자의 목표주가 5만3300원은 현주가 5만5500원과 큰 차이가 없으니 투자의견은 '중립'이 되겠습니다.
분석 대상 기업의 주가가 10% 하락하더라도 목표주가를 더 낮추면, 목표주가는 떨어졌는데 투자의견은 중립에서 매수로 올라갈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주가가 2배가 오르더라도 그에 맞춰서 목표주가를 계속 올려주면 주가가 당초 제시했던 목표주가를 훌쩍 뛰어넘어도 투자의견은 계속 매수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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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널리스트의 매도 보고서가 희귀한 것은 애널리스트들의 법인 영업과 주주들의 항의로 인한 환경적 영향이 크다는 분석이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 [사진 = 연합뉴스] |
애널리스트는 무엇을 하는 직업인가요? 일반 투자자들은 시장과 종목을 분석하는 사람들로 알고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직장인으로써 애널리스트들은 법인 대상 영업을 하거나 이를 지원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큰 돈을 굴리는 펀드매니저가 자동차업종이 궁금하다면 어느 증권사에 자동차 담당 애널리스트를 불러 자동차업종의 현황과 전망을 듣고 추천 종목도 받습니다. 실제로 이 펀드매니저가 그 종목을 사려고 할 때 애널리스트가 소속된 증권사를 통해 주문을 내줍니다. 애널리스트는 그게 바로 자신의 실적이 되는 것이죠.
애널리스트가 내는 투자의견이 매수 일색인 것은 이런 법인 영업의 탓이 큽니다. 이 업종은 어떠냐고 물어보는데 "다 빠질 거에요"라고 하면 영업을 할 수가 없습니다. "길게 보면 좋다. 사라"라고 말할 수 밖에 없게 만드는 것입니다. 나중에 주가가 떨어져 손절을 하더라도 그 주문을 우리 증권사로 넣을 테니 일단 매수하라고 권하게 됩니다.
매도 보고서가 안 나오는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매도 보고서는 영업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본인은 소신이 있는 애널리스트라는 명성을 얻을지 몰라도 매도 보고서를 들고 영업을 다닐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매도 보고서의 부작용이 큽니다. 최근 몇년 동안 바이오업종 담당 애널리스트 대부분이 업계를 떠났습니다. 바이오업종은 열성 주주들이 많은 것으로 유명한데요. 자신들이 투자한 회사에 조금이라도 부정적인 내용이 담겨있다면 그 내용을 수정하라고 하루 종일 항의전화를 해댄 탓입니다. 수년전 국내 한 대형주에 대한 매도 보고서를 썼던 외국계 증권사 애널리스트의 경우 금융당국에 불려가 리포트를 쓰게 된 경위를 해명했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주주들이 그 애널리스트가 공매도 세력과 짜고 주가를 인위적으로 떨뜨렸다고 대량의 민원을 넣은 탓입니다.
매도 보고서의 타깃이 된 기업에서도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해당 기업의 IR 직원에게는 생계가 걸린 문제입니다. 읍소도 하고 화도 내면서 애널리스트를 압박하게 됩니다. 특히 대기업이라면 문제가 커지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회사 차원의 보복이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매도 보고서가 아니더라도 기업 지배구조 개편 등 핵심적인 경영 사안에 쓴소리를 한 보고서가 갑자기 사라지는 일도 비일비재합니다.
이같은 문제의 해결책은 생각보다 단순합니다. 리포트를 유료화하면 됩니다. 애널리스트들이 펀드매니저를 쫓아다니면서 영업을 할 필요가 없어집니다. 소신이 강한 리포트는 잘 팔릴테니 애널리스트들도 자신감을 갖고 자신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피력하려 할 것입니다.
사실 몇차례 이런 시도가 있었지만 모두 실패했습니다. 무료로 내놔도 안 보는데 유료 리포트를 보겠느냐는 비아냥만 남았습니다. 애널리스트들의 영혼 없는 리포트는 분명 비판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도 애널리스트들의 소신을 응원할 준비가 돼있는지를 되짚어보았으면 좋겠습니다.
[고득관 매경닷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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