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학개미 투자 길잡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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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현지시간) 필라델피아 반도체지수는 전 거래일보다 3.45% 하락한 2275.34에 거래를 마쳤다. 특히 이날 반도체 장비 기업인 램리서치는 6.43% 하락했고 엔비디아도 3.36% 조정받았다. 주요 미국 반도체 기업들로 구성된 필라델피아 반도체지수는 지난 6일 이후 3거래일 만에 약 9.84%나 떨어졌다. 필라델피아 반도체지수는 올해 들어 42% 이상 하락했다.
당장 반도체주 하락의 직접적인 원인은 미국 상무부에서 발표한 중국 반도체 산업 추가 규제안이다. 18㎚(나노미터) 이하 D램과 128단 이상 낸드플래시 등과 관련된 생산 장비에 대한 수출 금지가 이번 규제에 포함됐다. 또 고성능 인공지능(AI) 학습용 칩과 슈퍼컴퓨터용 특정 반도체 칩에 대해서도 수출 제한 조치를 부과했다.
앞서 미국 상무부는 엔비디아와 AMD의 고성능 반도체 칩, 램리서치, 어플라이드머티어리얼즈, KLA의 반도체 장비에 대해 수출 제한 조치를 시행한 바 있다. 로라 첸 씨티그룹 연구원은 투자 메모에서 "이번 규제 조치는 장기적으로 중국뿐 아니라 전 세계 반도체 산업에 악영향을 줄 것"이라고 경고했다.
PC 수요 감소에 따른 실적 악화 우려도 반도체주 급락으로 이어졌다. 특히 지난 7일 발표된 AMD의 잠정 실적이 직격탄이 됐다. AMD는 PC 수요 둔화로 크게 흔들린 3분기 실적을 예고했다. PC 중앙처리장치(CPU)가 포함된 클라이언트 관련 매출을 직전 분기 대비 54% 급감한 10억달러로 전망했다. 이는 월가 컨센서스(20억달러)의 절반에 그친 수준이다. 전체 3분기 매출도 월가가 예상했던 67억달러를 크게 밑도는 56억달러로 제시했다.
AMD 잠정 실적에서 커진 우려대로 지난 3분기 PC 수요는 급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우선 10일 시장조사기관 가트너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3분기 PC 출하량은 전년 동기 대비 19.5% 줄어들었다. 이는 1990년대 중반께 PC 출하량 데이터를 집계하기 시작한 이후 최악의 감소 폭이라는 게 가트너의 설명이다.
기타가와 미카코 가트너 수석연구원은 "이번 3분기 PC 시장은 역사적인 저성장세를 기록했다"며 "공급망 병목현상은 완화됐지만 일반 소비자와 기업 모두 PC 수요가 약해 오히려 재고가 급격히 쌓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팬데믹 때 대부분의 소비자가 이미 새 PC를 구입해 개학 시기에 맞춰 진행한 대규모 할인과 프로모션도 소용이 없었다"며 "기업들도 거시경제적 불확실성으로 인해 비용을 줄이는 과정에서 PC 구입을 미루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팹리스에 비해 상대적으로 선방했던 세계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1위 기업인 대만 TSMC 주가도 이날 대폭락했다. 중국과의 지정학적 리스크가 불거지면서 11일 대만 증시에서 TSMC 주가는 무려 8.33% 급락한 채 장을 마감했다. 대만 증시에서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TSMC 주가 폭락으로 대만 자취엔지수도 4% 이상 급락했다. TSMC는 반도체 전체 매출에서 삼성전자와 인텔을 제치고 1위를 차지하며 굳건한 입지를 굳히고 있지만 지정학적 리스크에는 맥없이 무너졌다.
11일 블룸버그는 중국에 대한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의 규제 발표 이후 한국 일본 대만 등 전 세계 반도체 섹터의 시가총액이 2400억달러(약 344조2800억원) 사라졌다고 보도했다.
이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뿐 아니라 대만 TSMC가 8.33% 대폭락했고 일본의 도쿄전자, 네덜란드 ASML 등도 급락했다.
월가에서는 다만 장기적으로 볼 때 팹리스 업체에 비해서는 TSMC의 전망이 낫다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줄어드는 PC 시장에서 잘 버티고 있는 애플과 협업 관계에 있고 미국이 중국에 추가한 규제도 장기적 호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애플의 PC 수요는 경쟁 업체에 비해 견조한 것으로 나타났다. 10일 IDC에 따르면 애플은 글로벌 PC 출하량 상위 5개 업체 중 유일하게 전년 동기 대비 출하량이 늘었다. 애플의 올해 3분기 출하량은 약 1만60대로 전년 동기 대비 40.2% 증가했다.
미국의 추가 대중국 규제가 TSMC에 수혜가 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도현우 NH투자증권 연구원은 "공급과 수요 밸런스가 중요한 메모리 산업에 큰 수혜라고 판단한다"며 "미국의 추가 규제로 중국 기업의 첨단 반도체 생산이 원천적으로 봉쇄될 것으로 전망되고 중국 기업과 잠재적 경쟁 관계인 TSMC에도 장기적으로 호재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중국 정부 지원을 바탕으로 중국 기업의 메모리 반도체 생산량이 늘 경우 20년 이상 경쟁을 통해 소수 기업으로 재편된 현재 메모리 산업의 공급 구조가 경쟁 위주로 전환될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중장기적으로는 반도체 기업들을 매수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현재 밸류에이션(기업 가치 평가)이 매우 낮기 때문이다.
미국 투자은행(IB)인 코웬의 매슈 램지 연구원은 "거시경제적인 상황이 반도체 산업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지만 실적이 튼튼한 기업들의 가격이 낮아져 매력적인 진입 시점이 됐다"며 "현재 반도체 종목들의 가격은 역사적 저점에 가까운 수준이고 결국 데이터센터, 5G 인프라 등으로 인해 중장기적 반도체 수요는 회복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램지 연구원은 톱픽으로 팹리스 기업인 엔비디아, AMD, 마벌테크놀로지와 더불어 전력 반도체(전력을 변환·처리·제어하는 반도체) 기업인 모놀리식파워시스템스, 프로그래머블 반도체(FPGA) 기업인 래티스 세미컨덕터 등을 꼽았다.
[이종화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