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집마련 꿈 멀어지는 2030 ◆
이달 결혼식을 앞둔 직장인 이 모씨(34)는 신혼집으로 서울 동작구에 위치한 한 아파트를 월세로 구했다.
올해 초 결혼 준비를 할 때까지만 해도 그는 저축한 돈과 대출을 끌어모아 어떻게든 내 집을 마련하려고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대출 금리가 급격히 상승하고, 집값마저 조정되는 모습을 보이자 무리한 대출로 집을 사는 이른바 '영끌 투자'를 포기하기로 계획을 수정했다. 경제 상황까지 불확실해지면서 내 집 마련 시기가 언제 다시 찾아올지는 현재로서 판단하기 어려워졌다. 이씨는 "집값이 더 조정될 때까지 당분간 월세로 살며 관망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9일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올해 들어 8월까지 서울 지역에서 아파트를 신규 매입한 20·30대는 총 4150가구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1만6345가구)에 비해 4분의 1가량으로 급감한 수치다. 모든 연령대의 주택 매매 건수에서 차지하는 비중으로 따져 봐도 20·30대 매수는 41.8%에서 35%로 줄어들었다. 관련 통계가 처음 공개된 2019년 이후 최저 수준이다.
내 집 마련을 늦추는 대신 20·30대는 전세도 아닌 월세로 몰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세 보증금 대출 부담이 커지면서 상대적으로 목돈 마련이 어려운 젊은 층 세입자들이 월세를 선호하는 경향이 뚜렷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8월 서울 아파트 평균 월세 가격은 126만2000원으로, 2019년 4월(109만원) 이후 41개월 동안 한 번의 내리막 없이 지속적으로 올랐다.
이런 가운데 한국은행이 원화값 하락과 5%대 고물가 추세를 잡기 위해 12일 금융통화위원회를 열고 빅스텝(한 번에 기준금리 0.5%포인트 인상)을 밟으며 현재 2.5%인 기준금리가 3%까지 치솟을 것이라는 관측이 강해지고 있다. 이에 우리 경제 부채 '취약 고리'인 20·30대가 먼저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20·30대 가구 평균 금융 부채는 8455만원으로, 1년 새 12.7% 급증했다. 평균 금융 부채 증가율(7.7%)의 2배에 가까운 속도로 불어난 것이다. 20·30대의 빚은 전 연령층을 통틀어 60세 이상 고령층(13.2%)에 이어 둘째로 불어나는 속도가 빨랐다.
[연규욱 기자 / 김정환 기자 / 김유신 기자]
서울 8월 월세수급지수 100.1
수요가 공급 첫 추월
금리 급등에 전세대출 부담
'깡통전세' 우려도 월세 부추겨
청년 많이 찾는 원룸·오피스텔
월세 20만원 올려도 금세 동나
매수심리는 급격히 얼어붙어
아파트 매입비중 3년래 최저
30대 직장인 A씨는 최근 월세를 구하다 당황스러운 일을 겪었다. 온라인 중개플랫폼을 통해 조건에 맞는 집을 찾아 공인중개사와 집을 보기로 약속을 잡았는데 불과 1시간 만에 "집이 나갔으니 오지 않아도 된다"는 전화를 받은 것이다. 다른 사람이 집을 보지도 않고 계약금을 넣었기 때문이었다. A씨는 "고민하다 집을 몇 번이나 놓쳤다"며 "이제는 계약 만료가 얼마 안 남아 웬만한 조건들은 내려놓고 가격만 맞으면 들어갈 생각"이라고 했다.
2030세대에게 월세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가 되고 있다. 금리 인상으로 인해 전세자금대출 이자 부담이 커지자 월세로 수요가 몰리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 아파트의 경우 올해 들어 처음으로 월세를 구하는 세입자가 집주인보다 많아졌다.
9일 한국부동산원의 월간 주택가격동향 조사에 따르면 지난 8월 서울 아파트 월세수급지수는 100.1을 기록했다. 지수가 100보다 높으면 월세 세입자의 수요가 공급보다 많다는 뜻인데 지난해 11월 이후 10개월 만이다. 반면 전세수급지수는 일찌감치 100 이하로 떨어져 꾸준히 하락 중이다. 서울 아파트 전세수급지수는 3개월 연속 하락해 지난 8월 87.7을 기록했다.
임차인들이 월세로 쏠리는 현상은 금리 인상의 영향이 크다. 전세대출 이자부담이 증가하면서 차라리 월세가 더 저렴하다는 판단 때문이다. 최근 주요 시중은행의 전세대출 금리는 최저 4% 초반에서 최고 6% 중반 수준이다. 반면 서울 아파트 전월세전환율은 지난 7월 기준 4.26%에 그치고 있다. 전월세전환율은 전세금을 낮춰 이를 월세로 돌릴 때 적용하는 비율로 가령 전월세전환율이 5%고 전세금을 1억원 낮출 경우 연간 500만원, 월세 약 42만원을 내게 된다.
집주인들 역시 은행 금리 수준에 맞춰 월세 수익률을 높이려 하지만 금리 인상 속도가 워낙 가팔라 전월세전환율이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격차가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추가적인 금리 인상이 예상되기 때문에 세입자들의 월세 선호 현상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박원갑 KB부동산 수석전문위원은 "전월세전환율과 금리가 비슷한 수준으로 균형이 맞춰질 때까지 월세화는 피할 수 없다"고 했다.
아파트뿐만 아니라 원룸, 투룸 같은 소형 빌라(연립·다세대주택)·오피스텔 월세 수요도 급증하고 있다. 최근 2년간 아파트 못지않게 전세가격이 올랐고 깡통전세에 대한 우려도 크기 때문이다. 원룸을 구하는 20대 직장인 B씨는 "요즘 전세가격이 내리고 있다고는 하지만 2년 전과 비교해 많이 올랐다. 전세대출 이자를 생각하면 월세가 낫다"고 했다. 여기에 "최근에 깡통전세 사고가 이슈가 되다 보니 전세금을 떼일 걱정이 없는 것도 장점"이라고 덧붙였다. 부동산원에 따르면 아파트 평균 전세가율은 68.9%인 반면 오피스텔은 84.9%다. 특히 전용면적 40㎡ 이하 오피스텔은 전세가율이 87.5%로 더 높다.
소형 빌라·오피스텔의 월세 오름세도 심상치 않다. 부동산원 월간 주택가격동향 조사에 따르면 최근 3개월간(6~8월) 빌라 월세는 매달 평균 0.07~0.08% 상승했다. 전용 40㎡ 이하의 경우 월세가 0.1~0.12% 올라 그 이상 면적에 비해 가파른 상승률을 보였다. 오피스텔도 상황은 비슷하다. 지난 6~8월 3개월간 평균 상승률은 0.16%였는데 이 기간 전용 40㎡ 이하는 평균을 웃돌았다.
원룸이 밀집한 서울 신촌의 한 공인중개사는 "월세를 찾는 사람이 많아지자 집주인들도 덩달아 월세를 올리고 있다. 연초보다 10만~20만원 비싼 가격에도 금방금방 나간다"고 전했다. 특히 "대학가 주변은 대면수업이 재개된 것 역시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했다.
투자자 입장에서 소형 빌라나 오피스텔이 임대수익을 노린 상품이라는 것 또한 월세 상승에 영향을 주는 요인이다. 박합수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겸임교수는 "원룸, 투룸의 경우 수익형 부동산 성격이 강하다. 기대하는 수익률 역시 금리를 따라 올라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월세에 빠르게 반영되는 것"이라며 "게다가 월세는 통상 1년 계약이 많아 인상폭도 빠르게 반응한다"고 했다. 문제는 원룸, 투룸은 주로 사회초년생, 대학생 및 취약계층 등이 거주하는 경우가 많아 부담이 더욱 크게 다가온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추가적인 금리 인상이 예상되는 만큼 취약계층을 위한 공공임대 확대, 금융지원 정책 등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이에 반해 금리 인상으로 매매시장이 침체로 돌아서면서 2030세대의 매수심리는 급격히 얼어붙었다. 지난 8월 2030세대의 서울 아파트 매입 비중은 28.6%로, 지난해 7월 44.8%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던 것에 비하면 16.2%포인트 줄었다. 대선 직후 윤석열 정부가 규제 완화에 나설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에 한때 42.3%까지 올랐으나 불과 4개월 만에 20%대로 내려앉았다.
[이석희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