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채에 꽂힌 슈퍼리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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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대형 증권사 PB는 3일 "고액 자산가들이 온라인 트레이딩을 통해 최근 장기 국채 비중을 부쩍 늘리고 있다"며 "15년 만에 찾아온 금리 쇼핑 기회라고 보는 것 같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고액 자산가를 포함한 개인투자자들이 국채에 본격적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한 것은 올해 2분기부터로 파악된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글로벌 인플레이션이 심각해지면서 급격한 금리 인상 조짐이 보이자 국채 투자 비중을 가파르게 높이고 나섰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2분기 개인의 국채 순매수액은 3조6540억원으로 1분기(1조4452억원)보다 두 배 가까이 늘었다. 2분기 매수액은 작년 전체(3조7523억원)와 비슷한 수준이다. 하지만 이는 시작에 불과했다. 미국이 6월과 7월에 이어 9월까지 3연속 자이언트스텝(기준금리 0.75%포인트 인상)을 밟으며 국고채 금리가 급등하자 가격이 크게 떨어진 채권에 대한 폭풍 매수에 들어갔다. 그 결과 매수액이 3분기엔 9조원을 훌쩍 넘었다.
한국투자증권이 30억원 이상을 맡긴 고액 자산가들의 포트폴리오를 분석한 결과, 미국 자이언트스텝 직전인 5월 20.3%에 그쳤던 채권 비중이 지난달에는 26.5%까지 급증했다. 반면 같은 기간 해외 주식을 포함한 주식 비중은 41.8%에서 32.5%로 크게 줄었다.
지난 8월까지만 해도 금리 상승에 맞춰 고금리 단기채 투자 비중이 높았다.
그런데 9월 들어 고액 자산가들을 중심으로 코로나 이전 낮은 금리(저쿠폰)로 발행된 장기 국채 매수가 급격히 늘었다. 삼성증권에 따르면 거액 자산가들의 채권 매수 비중에서 20년 만기 장기 국채가 차지하는 비중이 지난달 36%에 달했다. 8월까지만 해도 장기 채권 비중은 8%에 불과했다.
장기 국채를 대거 사들인 것은 금리가 더 이상 가파르게 오르긴 힘들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만기가 긴 장기 국채는 단기채보다 레버리지가 크다. 매년 받는 채권 이자(쿠폰)는 그대로지만, 금리가 떨어지면 채권 가격이 크게 올라 자본차익이 커진다.
지난달 10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100bp 이상 치솟아 4.3%까지 높아졌다. 현재 한국 기준금리가 2.5%지만 미국의 자이언트스텝에 맞춰 연말까지 3.5%까지 오를 것이라는 전망이 반영된 것이다. 장기 국고채 금리가 4%를 넘은 것은 10여 년 만의 일이다.
여기에 세계 경기 침체가 지속된다면 내년 어느 시점에 결국 금리가 낮아질 수 있다는 기대감까지 더해졌다. 미국 연준이 예고한 대로 올해 말까지는 기준금리를 1.25%포인트 높이더라도 내년이 되면 분위기가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정용택 IBK투자증권 수석연구위원은 "긴축 기조가 후반부로 접어든 만큼 장기 금리의 추가 상승보다는 하락에 베팅하는 것"이라며 "현재 장기 금리가 3%대 중후반인 만큼 절대적인 이자 수준 역시 매력적"이라고 밝혔다.
이종혁 KB자산운용 채권운용본부 이사도 "향후 물가는 점차 내려가고, 경기에 대한 부담은 커질 것으로 예상한다면 채권을 분할매수하기 좋은 시기"라며 "시차를 두고 채권 가격이 상승하는 순간이 올 것으로 기대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다만, 예상과 달리 금리가 계속 더 오르면 채권 가격이 떨어진다. 이 경우 중도에 매도할 경우 손실 가능성도 있다. 한 채권 운용 매니저는 "채권은 평가손실이 나더라도 만기까지 가져가면 수익이 확정된다"며 "장기 국채에 투자할 때는 거시경제 변수 움직임과 함께 자산 배분에도 신경 써야 한다"고 조언했다.
게다가 코로나 이전에 발행된 1% 초반의 저쿠폰 장기 국채는 거액 투자자의 최대 관심사인 절세에 유리하다.
일반 투자자는 채권 이자소득세가 15.4%에 불과하다. 하지만 고액 자산가는 이자·배당소득이 많아 금융소득종합과세 최고세율(49.5%)을 적용받는 경우가 많다. 이들에게는 이자는 적고, 비과세인 자본차익(매매차익)이 높은 채권이 유리하다.
이 때문에 9월에 장기 국채 수십억 원어치를 사들인 고액 자산가들도
[차창희 기자 / 강민우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