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월세시대 가속 ◆
↑ 올 1~8월 서울 월세 계약이 전세를 넘어선 가운데 2일 송파구의 한 아파트 단지 앞 중개업소에 월세 매물이 빼곡히 붙어 있다. [박형기 기자] |
실제로 개포래미안포레스트 전용면적 84㎡의 올해 1~9월 월세(반전세 포함) 계약 건수는 36건으로 전세 계약 건수 16건에 비해 두 배 이상 많은 것으로 집계됐다. 인근 래미안블레스티지 전용 84㎡ 역시 올해 월세 계약 건은 총 38건으로 같은 기간 전세 계약 건수 28건보다 많았다.
우선 최근 3년간 전셋값이 너무 가파르게 올랐기 때문이다. 아파트나 빌라 매매가격이 급등하면서 전셋값이 함께 오른 데다 2020년 임대차법이 도입되며 전세 물건이 품귀현상을 빚었다. 전셋값이 급등하자 목돈을 마련하지 못한 임차인들이 늘어난 보증금만큼 월세로 돌리게 된 것이다.
최근 가파르게 상승 중인 금리도 전세의 월세화를 부추기고 있다. 금리가 오르면서 전세자금대출이나 신용대출을 받기가 부담스러워졌기 때문이다. 현재 전세대출 금리가 5% 선인 반면 서울 아파트의 전·월세 전환율은 4% 수준이다. 은행에서 돈을 빌리는 이자보다 적은 돈을 집주인에게 월세로 내는 것이 임차인 입장에서는 이익이다. 집주인도 매달 은행 예금 이자보다 높은 수준의 현금이 들어오니 마다할 이유가 없다.
여기에 '깡통전세'에 대한 불안도 전세의 월세화를 부추기고 있다. 이날 유경준 국민의힘 의원실에 따르면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전세금반환보증에 가입한 주택 가운데 전세 보증금과 담보 대출금을 더한 수치가 집값의 90%에 달하는 비중이 26.1%에 달했다. 보증보험에 가입한 전세 10곳 중 3곳은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할 위험에 노출돼 있다는 의미다.
다만 전문가들은 월세화가 진행되더라도 국내 임대차시장에서 전세가 소멸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박합수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겸임교수는 "임차인 입장에서 전세는 목돈을 모을 수 있는 자산 축적의 수단이고, 장기적으로 봤을 때 자가를 보유하거나 월세를 내는 것에 비해 들어가는 총 주거비가 싼 장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박 교수는 "물가상승세가 잦아들고 미국 정부가 금리를 더 이상 올리지 않게 되면 자연스럽게 월세화 진행에도 제동이 걸리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미국이 적어도 내년 상반기까지 금리 인상을 이어갈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국내 임대차시장의 월세화 역시 내년 상반기까지 이어질 것이란 뜻이다.
집주인이 한번에 거액의 보증금을 받는 전세보다 매달 현금을 받는 월세는 세입자 사정에 따라 받지 못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이런 위험 때문에 월세 비용은 전세 비용보다 높은 게 일반적이다. 세입자에게 전세는 매월 고정 월세를 걱정하지 않고 2~4년간 살 수 있다는 점에서 주거 안정성이 높아지는 장점이 있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금리가 오르면 그에 맞춰 집주인이 월세도 높이는 게 정상이지만, 최근 전셋값 상승이 멈추면서 월세를 무리하게 올리면 세입자들이 다시 전세를 선택할 수도 있다"며 "최근의 월세 인기는 금리 상승과 전세·매매시장에서 월세가 유리할 수밖에 없는 여러 조건이 잘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집주인 가운데 갭투자자가 많다는 점도 전세가 사라질 수 없는 이유로 꼽힌다. 함영진 직방 데이터랩장은 "집주인이 보증금 전부나 일부를 되돌려줄 여력이 있어야 월세 전환이 가능한데, 갭투자로 집을 산 사람들은 그정도 여윳돈이 없다"며 "갭투자가 사라지지 않는 한 전세시장도 남아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반면 임재만 세종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지금처럼 집값이 소득 대비 높은 수준을 유지하면 전세의 월세화는 지속적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전까지는 집값이나 전세 보증금을 마련할 길이 없는 저소득층이 월세를 이용했다면 최근에는 높아진 집값과 집값을 뒤따라 상승한 전셋값 때문
임 교수는 "전세가 갖고 있는 고유의 장점도 많지만 전세 계약을 맺고 싶어도 돈이 없어 월세로 살아야 하는 계층이 늘어나고 있어 우려된다"며 "공공임대와 민간임대제도를 이 같은 추세에 맞춰 정교하게 재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동은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