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스톤이 하 회장을 영입하는 과정에서 가장 먼저 주목한 것은 한국 사회 곳곳에 거미줄처럼 펼쳐진 그의 네트워크였을 것이다. 한미은행장을 지낸 뒤 한국씨티은행을 14년간 이끌어 '직업이 은행장'이라 불린 인물이다. 후배들을 위해 용퇴한 뒤 은행연합회장을 지낸 그는 2017년 자리에서 물러난 뒤에는 SK하이닉스 이사회 의장을 맡으며 재계로까지 영향력을 확장시켰다. 40여 년 금융인으로서 쌓아온 그의 네트워크는 재계, 금융계뿐 아니라 법조계까지 다양한 영역 곳곳에 퍼져 있다.
하 회장은 "항상 새로운 도전과 모험이 즐겁다"고 말한다. 정통 뱅커에서 사모펀드 수장으로서의 새 출발에 대해서도 '가슴 뛰는 새로운 도전'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하 회장 체제 아래 블랙스톤 한국법인은 명맥을 유지해온 PE(사모펀드) 부문을 강화하는 한편 부동산 부문을 새롭게 확장할 계획이다. 블랙스톤은 이를 위해 미국계 글로벌 부동산 투자사 안젤로고든 출신 김태래 씨를 한국 부동산 부문 대표로 영입했다. PE 부문은 수년째 한국 투자를 이끌어온 국유진 대표가 계속 맡고 있다.
블랙스톤과 창업자인 스티븐 슈워츠먼 회장은 하 회장의 영입을 발표하며 "지난 15년 동안 입지를 구축해온 핵심 시장인 한국에서 투자팀을 확장하고 (하 회장 같은) 베테랑을 영입하게 돼 기쁘다"고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하 회장은 경기고와 서울대 무역학과를 나와 미국 노스웨스턴대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를 받은 후 1981년 외국계 은행인 씨티은행에 입사했다. 심사역, 딜러 등을 거쳐 자금담당 이사, 투자은행사업부문장을 역임한 후 2001년 48세의 나이에 한미은행장에 선임되면서 '최연소 은행장' 타이틀을 달았다.
이후 2014년까지 은행장을 다섯 번 연임하며 14년간 CEO직을 지냈다. 은행 수장 임기가 2~3년으로 짧은 국내 금융업계에서는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가 남긴 장기 집권 타이틀은 현재까지도 깨지지 않고 있다.
하 회장은 국내 금융업계에서 손꼽히는 '미국통'으로 알려져 있다. 유창한 영어 실력을 바탕으로 한 그의 인맥은 바다 건너 월가와 정계에까지 퍼져 있다. 특히 국가 경제가 위기를 맞았을 당시 그의 해외 네트워크가 힘을 발휘했던 일화는 지금까지도 회자된다. 하 회장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한국과 미국이 통화스왑을 체결해 제2의 외환위기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하는 데 일조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국씨티은행장으로 재직할 당시 그간 쌓은 네트워크를 활용해 2008년 10월 당시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과 로버트 루빈 미국 재무부 장관의 만남을 성사시켰다. 하 회장이 직접 강 장관과 루빈 장관 미팅에 동행하며 한국과 미국의 연결 고리를 자처했다. 당시 미국은 한국과의 통화스왑에 미온적이었지만 이 만남 직후 300억달러 규모의 한미 통화스왑 계약이 체결됐다.
기여도를 인정받아 외국계 은행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국내 은행업계를 대변하는 전국은행연합회장직을 맡았다. 은행업계에 37년간 몸담아온 정통 '뱅커'로서 누구보다 은행업에 대한 이해도가 높았던 만큼 소신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특히 규제 개혁의 필요성에 대해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당시 하 회장은 산업자본이 인터넷전문은행을 주도적으로 경영하는 데 한계가 있어 은산분리 완화가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냈다. 방만경영을 하던 은행들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모습을 지켜봤던 하 회장은 악습의 고리를 끊고 금융혁신을 해야 한다고 봤다. 그가 재임하는 동안 케이뱅크가 인터넷전문은행으로는 처음으로 은행업 인가를 받아 은행연합회의 신규 회원사가 됐다. 1992년 회원사로 가입한 평화은행 이후 25년 만에 신규 회원사가 나온 것이었다.
하 회장은 직원들과 수평적인 소통을 하기로 유명하다. 일찍이 직급 호칭제를 폐지해 화제가 됐다. 한국씨티은행 시절 하 회장은 자신을 '하영구님' 또는 '영구님'으로 부르지 않고 '행장님'으로 부르면 벌금 1만원을 받겠다는 규칙을 세웠다.
그렇게 모은 벌금을 기부하거나 직원들 회식비로 썼다는 일화는 잘 알려져 있다. 당시만 해도 한국의 수직적인 조직문화에서 직급을 생략하고 상사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쉽지 않았지만, 하 회장은 은행 내부 전산망에서도 직원들의 직급을 모두 없애는 등 수평적인 사내 분위기를 조성했다. 전국은행연합회장 시절에는 점심시간 무렵 이중섭 작가 그림전에 함께 갈 '번개모임'을 제안하는 등 직원들과 격의 없이 만나기도 했다.
하 회장은 최근 산업계에서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2019년 SK하이닉스 사외이사로 선임된 하 회장은 2020년 선임사외이사를 거쳐 지난해부터 이사회 의장을 맡고 있다. 은행업계에서 쌓은 전문성과 관록을 이사회 의장으로서 회사 경영에 십분 활용하고 있는 셈이다. 미국의 '반도체 굴기'에 대비해야 하는 SK하이닉스 입장에서도 전 세계에 뻗어 있는 하 회장의 현지 네트워크를 활용해 폭넓은 자문을 얻을 수 있어 '윈윈'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이사회의 독립성과 권한을 살리면서 책임경영을 통해 한국 기업의 약점으로 꼽히는 지배구조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게 하 회장의 시각이기도 하다.
1220조원의 자금을 굴리는 글로벌 최대 대체투자 자산운용사인 블랙스톤이 하영구 한국법인 회장 영입을 계기로 인력과 조직 재정비에 나서면서 한국 시장 공략을 본격화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불어닥친 2008년 한국 시장에 진출했던 블랙스톤은 2014년 철수했다가 최근 다시 서울 광화문에 한국법인 사무실을 열었다. 블랙스톤의 한국 시장 재진출은 투자은행업계에서 갖는 상징성이 크다는 평가다. 블랙스톤이 한국에서 철수할 때만 해도 국내 인수·합병(M&A) 시장이 글로벌과 아시아 시장에서 차지하는 존재감은 미미했다.
하지만 그사이 시장 규모가 커지고 조 단위 대형 매물이 잇따르면서 글로벌 투자사들도 관심을 가질 만한 시장으로 급부상했다. 매일경제 레이더M 리그테이블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M&A 시장 규모는 71조5030억원에 달했다.
그 결과 블랙스톤의 경쟁사인 글로벌 펀드들도 한국 시장 공략 속도를 높이는 추세다. 특히 국민연금을 비롯한 국내 기관투자자들의 위상이 날로 높아지면서 블랙스톤도 한국 시장에 좀 더 공을 들여야 한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 하영구 회장은…
하 회장은 1953년 전남 광양 출신으로 경기고, 서울대 무역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노스웨스턴대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1981년 외국계 은행인 씨티은행에 입사해 자금부 수석딜러, 자금담당 총괄이사, 투자은행사업부문장, 소비자
[조윤희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