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주택자 '징벌 과세' 푼다…종부세율 4년전 수준으로

◆ 세제 개편안 ◆

↑ 21일 세제개편안이 발표된 가운데 서울 강남 지역 지하상가에 있는 부동산 중개업소 앞에서 한 시민이 세무 상담 안내 표지판을 보고 있다. [이승환 기자]

서울 방배동에서 30평대 아파트에 살고 있는 김 모씨는 경기 성남시 분당에도 30평대 아파트를 가진 다주택자다. 직장에서 은퇴한 후 생활비가 부족했던 김씨는 분당 아파트를 반전세로 내준 뒤 매달 월세 200만원 이상을 받으며 생활비를 보충해 왔다. 지난해 김씨는 다주택자 세금 중과로 종합부동산세만 5000만원이 넘게 나오자 신용대출을 통해 간신히 세금 낼 자금을 마련했다. 그러나 매년 이 같은 세금을 감당하기 힘든 김씨는 결국 분당 아파트를 매도하고 생활비는 최대한 아끼는 방법을 찾고 있다. 최근 수년간 다주택자들은 부동산 시장에서 막대한 규모의 징벌적 세금에 시달려 왔다. 전체 보유 아파트값은 강남 고가 아파트 1채보다 낮지만 여러 채를 갖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강남 고가 1채 아파트 소유자보다 종부세를 더 많이 내는 사례가 비일비재했기 때문이다. 특히 김씨처럼 은퇴 후 월세를 받아 생활하는 사람들 중에는 수입보다 세금 지출이 많아 어려움을 겪는 이가 늘었다.
하지만 21일 정부가 다주택자에 대한 중과제도 폐지 및 세율 인하 등 내용을 담은 종부세 개편안을 발표함에 따라 그동안 김씨와 같은 은퇴 다주택자들이 겪어온 어려움이 상당 부분 해소될 전망이다. 개편안에 따르면 우선 다주택자에게 적용하는 종부세 중과세율이 폐지된다. 그간 다주택자(3주택 이상·조정대상지역은 2주택 이상)는 과세표준 구간별로 1.2~6.0% 세율이 부과돼 2주택 이하(0.6~3.0%)보다 두 배 높은 세율로 종부세를 납부했지만, 이번 개정안은 주택 수와 관계없이 동일한 세율을 적용하기로 했다. 세율 자체도 0.5~2.7%로 낮아진다. 적정 세 부담 수준 등을 감안해 2019년 수준으로 종부세율을 낮추는 것이다. 2009년부터 2018년까지 종부세율은 보유 주택 수와 무관하게 0.5~2.0%였다. 2019년 종부세율을 0.5~2.7%로 올린 문재인 정부는 2021년 또다시 0.6~3.0%로 상향 조정했다.
이 기간 다주택자에게는 별도로 높은 세율을 부과했고, 2021년에는 그 세율을 두 배 높인 바 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결과적으로는 종부세가 하나의 징벌적 과세가 되고, 실제로 시장을 안정시키는 효과도 없었다"고 개편 배경을 설명했다.
개정안은 종부세 과세 기준을 '주택 숫자'에서 '주택 가액'으로 전환하는 내용도 포함하고 있다. 보유 주택 공시가격을 모두 더한 가액을 기준으로 과표구간을 설정하는 방식이다. 이는 중·저가 주택을 여러 채 보유한 다주택자와 비싼 한 채를 가진 1주택자 간 납세 형평성을 제고하기 위한 조치다.
종부세 과세표준을 산출할 때 합산액에서 빼주는 기본공제금액도 상향 조정된다. 기존 6억원이던 기본공제금액은 18년만에 9억원으로, 1가구 1주택자는 기존 11억원에서 12억원으로 상향 조정된다. 최근 수년간 주택가격이 급등한 만큼 이에 맞게 기본공제금액도 현실화하기 위해서다. 단 1가구 1주택자에 대해서는 올해 한시적으로 3억원 특별공제가 적용돼 14억원을 공제해주는 것으로 이미 정부·여당은 추진하고 있다. 과표구간 중 일부 지나치게 넓게 설정된 구간(12억~50억원)은 12억~25억원 구간(세율 1.3%)과 25억~50억원 구간(1.5%)으로 세분화된다.
전년 대비 연간 종부세 부담 상한도 기존 1주택 150%, 다주택 300%에서 보유 주택 수에 관계없이 150%로 단일화한다.
시장 전문가들은 그동안 징벌적 세금 부과에 따른 시장 왜곡 현상이 사라질 것이라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과도한 세금 부과로 오히려 매매와 전·월세 가격이 올랐는데 이번 조치로 상당 부분 정상화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고준석 제이에듀투자자문 대표 역시 "세금이 오른 만큼 임차인에게 전·월세 가격을 올리며 전가했던 현상이 조금씩 완화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번 세제 개편과 관련해 야당 측 입장이 최대 변수로 부상한 가운데 더불어민주당은 이날 2주택자에게까지 혜택을 주는 것에 대해선 동의할 여지를 내비쳤다. 김성환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2주택자의 종합부동산세를 우리 당도 현실에 맞게 상향 조정했고, 다주택자의 종부세 기준도 1주택자 기준에 맞춰 일부 상향 조정했다"면서 "1주택자, 불가피한 2주택자 등에 대해선 가급적 두껍게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민주당은 지난 대선 당시 '투기가 아닌 이직·취학 등으로 인한 일시적 2주택자에 대한 종부세 중과'에 부정적 의견을 밝힌 바 있다. 민주당은 서울과 수도권 민심을 고려해 부동산 세제에 대해 유연한 태도를 보이는 분위기다.
[박준형 기자 / 연규욱 기자 / 채종원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