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경 명예기자 리포트 / 박병무 VIG파트너스 대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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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12개월 이내 스태그플레이션이 올지, 아니면 경기가 연착륙할지는 변수가 너무 많아 두고 봐야 할 것이다. 다만 현재의 물가 상승 상황에서 미국은 연말까지 기준금리를 3% 이상으로 올린다는 것이 시장의 컨센서스(전망치 평균)이고, 한국 역시 기준금리를 올릴 것으로 예상된다. 과거의 자료를 볼 때 기준금리와 주가는 '역상관관계'가 성립했다. 즉 현재와 같이 기준금리가 상승할 것으로 전망된다면 앞으로 상당 기간 주가로 대표되는 자산가격은 하락세를 지속할 것이고, 이에 따라 투자심리도 극도로 위축될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공포심이 커지는 상황에서 일반적인 개인투자자는 여러 가지 이유로 자산을 매각하게 된다. 추가 하락을 막으려는 자발적 손절매, 대출이자율 상승과 자산가격 하락에 따른 마진콜 등 (금융사의) 강제 매매가 자산을 매각하는 이유에 해당한다. 혹은 손실을 감수하면서 원하지 않는 자산을 보유하게 되는데 장기 보유키로 결정한 투자자는 대부분 주가나 자산가격이 상당히 오른 시점에 매수했을 가능성이 크다. 공포가 지배하는 상황에서 (투자를 업으로 하지 않는) 일반 투자자가 군중의 투자심리(trendy investment)에 역행해 주식 등 자산을 매수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이런 심리적 패턴으로 일반 투자자는 주가지수로 대표되는 시장수익률을 초과(outperform)하는 수익을 내기 쉽지 않고, 오히려 지금 같은 시장 하락기에는 마이너스(-) 수익을 감수하면서 상당 기간 투자 활동을 중지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자산가격 하락기에 오히려 기회를 포착해 시장수익률을 초과하는 수익을 내려면 군중의 투자 경향에서 벗어나 투자하는 소위 '역발상 투자(contrarian investment)'가 필요하다는 것이 오랜 투자 전략 중 하나다. 역발상 투자 전략을 활용해 지속적으로 초과수익을 낸 대표적인 인물이 '오마하의 현인'으로 불리는 워런 버핏이다. 1980년부터 최근까지 미국 S&P500지수가 2688% 오르는 동안 버핏이 이끄는 버크셔해서웨이 주가는 14만917% 상승했다. 물론 이 같은 성과는 여러 투자 전략에 기반해 이뤄진 것이지만 그중 대표적인 것이 역발상 투자 전략이다. 버핏은 역발상 투자 전략에 대해 "다른 사람들이 두려워할 때 욕심부려야 한다. 남이 욕심부리면 두려워해야 한다(Greedy when others are fearful. Fearful when others are greedy)"는 간결한 문장으로 표현했다.
역발상 투자 전략을 통해 초과수익을 낸 투자자로는 조지 소로스, 레이 달리오 등이 있다. 또 최근 역발상 투자의 성공 사례로는 영화 '빅쇼트'의 실제 주인공 마이클 버리를 꼽을 수 있다. 2000년대 중반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등과 같은 주택금융상품에 대한 투자가 정점을 향해 치달을 때 버리는 서브프라임 시장 붕괴에 과감히 베팅해 엄청난 수익을 냈다. 역발상 투자는 주로 자산운용사나 헤지펀드가 사용하는 투자 전략이지만, 실제 기업에 장기간 투자하는 사모펀드(PEF) 운용사도 종종 사용하는 전략이다. 즉 자산시장 하락기에 역발상으로 투자하는 경우가 수익률이 좋다는 것이다. 세계적인 투자기관인 미국 캘리포니아공무원연금(CalPERs·캘퍼스)이 여러 사모펀드에 투자한 투자 연도별 펀드의 평균 수익률을 살펴보면 기술주의 붕괴와 닷컴버블이 시작된 2001~2003년에 설정된 펀드가 상대적으로 좋다. 또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닥친 남유럽 경제위기 시기인 2011~2013년에 설정된 펀드 수익률이 전후 설정된 펀드보다 수익률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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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PG의 역발상 투자와 관련한 경험은 내가 회사를 운영하거나 투자하는 데 큰 영향을 줬다. 나는 2000년대 중반에 하나로텔레콤(현 SK브로드밴드) 대표이사(CEO)가 됐다. 당시 주력 사업인 초고속인터넷 경쟁이 치열해 수익성이 악화됐고, 회사는 대규모 인력 조정 등 비용 절감을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내부 논의 끝에 역발상으로 새로운 성장동력에 과감히 투자하는 것으로 경영 방향을 결정했다. 당시 투자한 결과 IPTV의 원조라 할 수 있는 하나TV가 성장할 수 있었고 하나로텔레콤 실적 개선 주춧돌이 됐다.
현재 내가 몸담고 있는 사모펀드(VIG파트너스)에서 단행한 상조회사 투자 건도 역발상의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상조 산업에 투자했던 2015~2016년에는 상조회사가 300여 개로 난립해 있었다. 난립한 상조회사를 통합하고 자본금을 확충해 소비자의 신뢰를 회복하면 어떨까 하는 역발상을 통해 상조회사 투자를 결정했다. 이후 5개 이상의 상조회사를 통합해 '프리드라이프'라는 대형 상조회사를 만들어 금융회사에 버금가는 자산을 보유한 회사로 키웠다고 생각한다.
역발상 투자를 위한 전제조건이 있다. 우선 투자 대상에 대한 정확한 분석이다. 투자 대상이 기업일 경우 해당 기업이 현재 어떤 상황인지, 신규 사업은 무엇이고, 자산 등 재무 상태는 어떠한지 등이다. 다음은 투자자가 단기간에 장부상 손실(평가손실)을 감수할 수 있는 장기 투자 재원이 있는지다. 전제조건이 충족된다면 역발상 투자의 첫 번째 단계는 기존의 투자 심리에 합리적인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다. '싸게 사서 비싸게 파는 것'이 일반적인 투자 심리라면, 오히려 '우리는 바닥이나 꼭지를 모르니 저평가됐다고 분석된 자산을 프리미엄을 주고 사는 것이 좋지 않을까'라는 의문을 갖는 식이다. 또는 '투자는 시장을 이길 수 없다'는 심리에 대해 '이 말이 맞을 수도 있지만 틀릴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다. 이런 의문이 역발상 투자의 시작이 될 것이다.
대부분의 일반 투자자는 역발상 투자의 전제가 되는 '정확한 분석 능력'과 '장기 투자 자금'이란 두 가지가 충족되지 않아 역발상 투자를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전제조건도 상대적이라고 볼 수 있다. 금리 상승과 자산가치 하락기를 맞은 지금, 기업 경영진은 물론이고 일반 투자자도 최소한 역발상의 출발점이 되는 의문을 제기하고 다음 문제를 생각해 보면 어떨까.
지금 상황에서도 무수한 의문이 제기될 수 있을 것이다. 과연 현재의 인플레이션은 기준금리 이자율을 올린다고 해결될 수 있을까. 올린다면 어느 정도까지 이자율이 올라갈 것인가. 그동안 주목받았던 빅테크와 플랫폼 기업들의 가치가 폭락하고 있을 때 이들에 대한 투자를 피하는 것이 정답일까. 아니면 적극적으로 옥석을 가릴 필요는 없을까. 신재생에너지산업이 각광받고 있는 지금 전통적인 에너지, 에너지원에 기초한 석유화학산업은 도태될 것인가. 인플레이션과 금리 상승기에는 모든 기업이 다 힘든 것인가. 이런 시기에 오히려 높은 성장을 하는 기업은 없을까. 의문을 자유롭게 가져보는 것이 역발상의 시작이자 가장 중요한 단계임을 강조하고 싶다.
▶▶ 박병무 대표는…
1961년생. 서울대 법학과 학사·석사, 연세대 경영대학원 경영학과(MBA), 미국 하버드대 로스쿨을 졸업했다. 김앤장 변호사로 사회생활을 시작해 주로 기업 인수·합병(M&A) 업무를 맡았다. 뉴브리지캐피털(현 TPG) 한국대표 등을 지내고 현재 VIG파트너스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투자 전문가다.
[정리 = 강봉진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