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관님들의 '재테크 목록'…국회 제출한 신고내역으로 본 '금융 주머니' ◆
한국의 장관 후보자들은 부처 기능에 걸맞은 직무 능력보다 훨씬 중요한 준비 요건을 갖춰야 한다.
우선 본인과 자녀의 병역·교육처럼 전 국민이 관심을 갖는 이슈에서 논란의 소지가 없어야 하며, 재산 내역과 투자처에 있어서는 가히 성직자 수준의 청렴성이 요구된다.
인사청문회가 열릴 때마다 야당은 저인망식 재산 검증에 나서고, 정부·여당은 심각하지 않은 문제에도 정치적 부담을 회피하기 위해 후보자를 포기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이기 때문이다. 공직생활 30년 동안 모은 재산이 2억원에 불과할 정도로 검소하게 생활했던 박준영 전 해양수산부 장관 후보자는 배우자의 도자기 밀수 논란으로 낙마했고, 여야를 불문하고 정치권에서 능력을 인정받았던 최정호 전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는 3주택을 보유한 탓에 사퇴했다.
세월이 흐를수록 가혹해지는 인사청문회로 인해 고위공직자들이 몸살을 앓고 있다. 하지만 장관들도 재테크가 필요한 시대다. 그들도 종잣돈을 만들고 이를 불려 재산을 형성하는 것은 일반인과 다르지 않다.
매일경제신문이 윤석열정부에서 인사청문회를 거친 장관급 이상 공직자 11명의 재테크 내역을 분석했다. 그들이 장관으로 임명되기에 앞서 공개한 재산 내역을 참고로 어떻게 돈을 만들고 불리는지를 살펴봤다. 현 정권의 1기 내각 구성원 대부분이 1주택 소유주였으며, 주식 역시 삼성전자·HMM·애플처럼 일반인에게 친숙한 종목이 자주 등장했다. 전반적으로 사모펀드·중소형업체 주식에 거액을 투자하는 등 논란의 여지가 있는 투자는 삼가는 추세였다.
다만 장관들이 각자 분야에서 최고 위치에 올랐던 인물인 만큼 전공 분야와 관련된 이색 재테크와 특이한 재산 내역도 눈에 띄었다. 해양플라스틱 저감 예금에 가입한 환경부 장관, 언론사 주식에 투자한 언론인 출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등이 재테크를 본업에 일치시킨 사례다. 보유재산이 수십억 원인 장관들의 자산배분 전략은 일반 투자자 입장에서도 참고할 점이 많았다.
이 밖에도 한 장관은 한국환경연구원 소속인으로서 과학기술인공제회의 연금지급형 목돈급여 상품에 가입했다. 지난해 6월부터 총 6번에 걸쳐 원금 5억원을 납입했고 이에 대한 이자로 약 500만원을 받았다. 이 상품의 이자는 연 3.4%(변동금리)이며 10년 이상의 가입기간 중 매달 원리금분할 수령이 가능하다.
한 장관은 지난 2월부터 과학기술인공제회에서 연금을 수급하고 있다. 한 장관이 유일하게 보유하고 있는 주식 종목은 IBK기업은행으로 1억1066만원어치를 보유한 것으로 신고했다. 반면 한 장관의 배우자 김 모씨는 조각투자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보인다. 김씨의 총증권가액은 약 1746만원이지만 보유 종목은 67개에 달한다. 종목당 적게는 2주, 많게는 150주를 보유하며 초분산투자에 나선 것이다.
이 상품은 세계은행이나 국제통화기금(IMF) 임직원 등 관계자가 가입하는 직장신협상품으로, 현지 생활에서 송금·환전·보험 혜택 등을 누릴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 총재는 2014년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IMF 고위직인 아시아·태평양 담당 국장에 올랐다. 당시 월급 수령 등 목적으로 해당 계좌를 개설한 것으로 보인다.
이 상품은 잔액에 따라 금리나 수수료 면제 혜택 수준이 달라지는데, 이 총재의 경우 금리 혜택보다도 현지 생활에서 필요한 각종 수수료와 보험료 환급 혜택을 고려해 잔액을 유지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예금 중 1만달러에 대해서만 연 1% 이자를 받고 나머지 금액에 대해서는 연 0.05~1%의 이자를 받는 등 금리 혜택은 크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 ATM거래·직불거래 수수료 월 최대 20달러 환급, 대출금리 최대 0.25%포인트 인하, 차량보험료 75달러 환급 등 일상생활과 관련된 혜택은 활용도가 높다. 이 총재는 국내 예금은행 중에서는 NH농협은행과 신한은행에 계좌를 개설했다.
이 총재의 배우자 최 모씨도 미국 생활 당시에 개설한 것으로 보이는 뱅크오브아메리카(BoA) 계좌에 아직까지 약 7277만원을 보유하고 있다. 최씨는 국내 예금은행 중에서는 KB국민은행에만 계좌를 개설해 약 2억3172만원을 넣어뒀다.
취득 당시인 2000년 주당 액면가액(500원) 기준으로 취득가액을 82만5000원으로 신고했지만, 해당 회사의 자본금은 당시 10억원에서 현재 509억원 수준으로 성장했다.
박 장관의 배우자 권 모씨는 인수·합병(M&A) 이슈로 주가가 상승한 적이 있는 YTN 주식을 5200주 보유하고 있다. 매입단가는 약 4033원이며 지난 4월 10일 기준 평가금액은 총 1879만8000원이다. 권씨는 이외에도 브라질국채를 6847만4000원어치 보유할 정도로 투자에 관심이 있는 편이다. 올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원자재 가격 상승에 풍부한 원자재 보유국인 브라질의 헤알화 가치가 급등하며 브라질국채가 주목받은 바 있다.
박 장관의 차녀 박 모씨(30)도 다양한 주식 종목을 보유하고 있다. 박씨는 SK하이닉스(190만원), 삼성전자(136만원), 삼성SDI(120만원) 등을 포함해 신세계인터내셔날, 대한항공 등 총 843만원어치의 주식을 보유 중이며 예금을 포함해 총 1억1379만원의 재산을 신고했다.
이 밖에 미국 주식, 혹은 국내에 상장된 해외 상장지수펀드(ETF) 등이 많았다. 테슬라, 엔비디아, 아이셰어스 세미컨덕터 ETF(SOXX), TIGER 차이나전기차 SOLACTIVE, TIGER 미국나스닥100 등 기술주와 KINDEX 미국고배당S&P 등 배당주가 골고루 있었다. '보복 소비' 시기에 가격이 크게 올랐고 불황에도 강한 'HANARO 글로벌럭셔리 S&P(합성)' ETF를 보유한 점도 돋보인다. 루이비통, 몽블랑, 에스티로더, 에르메스 등 60여 개 선진국 명품 기업에 투자하는 ETF다.
2003년생으로 올해 만 19세인 딸 이 모양도 부친과 비슷하게 5000만원을 해외주식 위주로 투자했다.
애플, 메타(페이스북), 월트디즈니 등 생활 속에서 쉽게 접하고 잘 알 수 있는 기업에 투자하라는 철칙도 지켰다. 이처럼 어릴 때부터 주식을 시작해 우량주에 장기 투자할수록 수익률은 더 높아진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 포트폴리오는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의 특징을 보이는 제약·바이오 비중이 높았다. 주식 100여 종에 약 2억3000만원을 투자했는데 이 중 제약·바이오 주식이 대다수였다.
녹십자, 신풍제약, 삼성바이오로직스, 한미약품, 휴젤, 씨젠, 휴온스, CJ바이오사이언스, 제일약품, SK케미칼, 셀트리온제약, 셀트리온헬스케어 등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곳들은 물론이고 숨은 보석 같은 제약·바이오 기업도 많았다.
현대바이오, 제넨바이오, 제넥신, 레고켐바이오, 녹십자엠에스, 지씨셀, 세운메디칼, HK이노엔, 에이비프로바이오, 콜마비앤에이치, 박셀바이오, 큐라클, 액세스바이오 등이다.
또 '윤석열 테마주'로 알려진 덕성 주식도 갖고 있는 등 이슈와 테마에 민감한 주식을 보유하며 단기 차익을 노리는 투자 스타일로 보인다. 바이오 기업도 임상 1상, 2상, 3상 등 신약 개발 진행 상황에 따라 주가 변동 폭이 큰 게 특징이다.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은 본인이 보유한 금융자산은 1억5000만원 수준이지만 배우자인 이덕청 전 미래에셋자산운용(인도) AI부문대표가 20억원이 넘는 금융자산을 운용하고 있다.
배우자 자산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미래에셋 퇴직 후 지난해 11월에 설립한 투자회사 오페스글로벌의 자본금 약 9억9000만원이다. 또한 이 전 대표는 친정인 미래에셋의 계열사 미래에셋생명·미래에셋증권 등에 10억원이 넘는 예금을 예치해두고 있다.
이 전 대표가 직접 투자한 펀드는 KODEX 미국S&P에너지 등으로 투자액은 약 7000만원이다. 이 가운데 비중이 가장 큰 KODEX 미국S&P에너지 펀드는 최근 에너지 종목 상승세에 힘입어 큰 수익을 가져다줬을
나머지 2개 펀드는 하락세를 보이고 있지만 투자액이 총 2000만원대에 그쳐 손실액이 상대적으로 적었을 것으로 보인다.
외국계 컨설팅 회사의 아랍에미리트 지사에서 근무했던 김 장관의 장남은 두바이 은행인 에미레이트NBD(Emirates NBD)에 1억8000만원가량의 예금을 예치하고 있다.
[문재용 기자 / 서정원 기자 / 명지예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