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시가 침체되면서 상장사들이 주가를 방어하기 위해 자사주 매입에 나서고 있지만 주가 부양 효과가 크지 않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가운데 주된 이유가 블록딜(시간 외 대량 매매)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16일 자본시장연구원은 상장사들이 매입한 자사주를 소각하지 않고 블록딜로 다시 시장에 유통하면서 효과가 급감했다고 지적했다. 상장사들이 자사주를 매입한 당시에는 주가 부양 등 주주 환원을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운영자금 확보, 임직원 보상을 위해 매입한 자사주를 대부분 처분하면서 투자자 신뢰를 상실했다는 분석이다.
올해 들어 금리 인상, 인플레이션 등으로 증시 상황이 악화하자 상장사들의 자사주 취득 규모가 급증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연초부터 지난달까지 상장사들의 자사주 취득 규모는 2조2138억원으로 전년 동기(1조1108억원) 대비 두 배가량 증가했다.
하지만 자사주를 취득한 상장사의 주가 부양 효과는 거의 없었다. 셀트리온의 경우 올해 1월 1000억원 규모 자사주 매입을 공시한 데 이어 2월, 5월 등 세 차례에 걸쳐 총 2512억원 규모 자사주 매입 계획을 밝혔지만 주가는 이날 종가 기준 연초 대비 24% 급락했다. 한샘도 올해 3월에 이어 지난달 500억원 규모 자사주 매입 계획을 발표했지만 주가는 24.44% 떨어졌다. 증권사들도 자사주 매입에 나섰지만 주가는 오히려 하락했다. 미래에셋증권은 지난 1월 836억원 규모 자사주 취득을 공시했지만 이후 주가는 연초 대비 18.36% 빠졌다. 키움증권도 1월 439억5000만원, 5월 들어 348억4000만원 규모 자사주 매입을 공시했으나 주가는 18.13% 떨어졌다.
자본시장연구원은 자사주 취득이 주가 부양 효과가 없는 이유로 블록딜을 꼽았다. 강소현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자사주 처분은 대부분 블록딜로 이뤄지는데, 이는 상당한 규모의 자기주식이 처분 공시와 함께 시장에 재유통된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자본시장연구원이 발표한 '국내 상장기업의 자기주식 처분 실태' 보고서에서 따르면 2020년 1월부터 올해 5월까지 자기주식 취득·처분 공시를 분석한 결과, 코스피 상장사의 자사주 총 취득 예정 주식 수는 2억8000만주였으나, 처분한 주식 수도 1억6000만주에 달했다. 코스닥의 경우 자사주 취득은 9930만주였으나 처분은 1억6900만주로 처분한 주식이 오히려 더 많았다. 연초부터 올해 5월까지 자사주 취득을 알린 총 365곳 상장사 중 90%에 달하는 316곳이 공시에서 취득 목적으로 주주 환원
기업들이 자사주 블록딜을 지배력 강화 수단으로 사용하면서 소액주주 이익이 침해되는 경우도 빈번했다. NHN은 2018년부터 지난해까지 총 869억원 규모 자사주를 취득했지만 소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김제관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