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외환보유액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외환보유액은 5월 기준 4477억1000만달러로 전월(4493억달러) 대비 15억9000만달러 감소해 석 달 연속 140억6000만달러 줄었다.
외환보유액이 단기간 이처럼 큰 폭으로 줄어드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외환보유액은 2015년 11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넉 달 연속 38억4000만달러 줄어든 후 꾸준히 늘어나는 모습을 보였다. 이후 지난해 10월 4692억1000만달러로 사상 최대를 찍은 뒤 7개월 만에 215억달러(약 27조원) 급감했다.
올해 들어 한국 무역적자가 심해진 가운데 미국·중국을 비롯한 주요국 경기 둔화 우려감이 겹쳤고,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빅스텝'(기준금리 0.5%포인트 인상)에 나서며 풀었던 돈줄을 조이자 시중에 달러가 귀해진 것이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안전자산인 달러 몸값이 치솟자 외환당국이 외환보유액을 활용해 원화값 하락 방어에 나섰고, 원화값 하락에 달러로 환산한 외화자산이 줄며 외환보유액이 급감하고 있다.
문제는 최근 정치권이 현금 살포성 추가경정예산까지 단행하면서 국가신인도를 떠받치는 외환보유액과 재정건전성이라는 두 축이 모두 흔들리고 있다는 점이다.
이날 국제통화기금(IMF) 최신 외환보유액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외환보유액 적정선은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다. IMF는 △연간 수출액의 5% △시중 통화량(M2)의 5% △유동 외채의 30% △외국인 증권 및 기타투자금 잔액의 15% 등을 합한 규모의 100~150% 수준을 적정 외환보유액으로 산출한다. 그런데 지난해 기준 한국의 외환보유액 비중은 98.94%로 관련 통계가 집계된 2000년 이래 최저 수준까지 가라앉았다. 적정 외환보유액 비중은 2020년(98.97%) 처음 100% 아래로 가라앉은 이후 재차 하락했다.
한국의 적정 외환보유액 비중은 2000년만 해도 114.27%에 달했지만 2018년 이후 급격히 하락하고 있다. 외환보유액이 늘어나는 속도보다 단기외채 등이 불어나는 속도가 더 빨랐기 때문이다.
여기에 최근 강달러 현상이 외환보유액 하락 속도를 더 부채질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전 세계 공급망 교란과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등 대외 불확실성이 부쩍 커진 만큼 한국이 더 많은 외화 비상금을 확보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우리나라는 외국인 주식 투자 비중이 높은 데다 북한 등 지정학적 현안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외환보유액을 넉넉히 쌓아야 한다"며 "정부가 수출 증가에 총력을 기울여 무역수지 흑자를 통해 원화값부터 안정시킬 필요가 있다"고 분석했다.
문제는 외환보유액이 줄면서 나라 곳간마저 빠르게 부실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국회는 6·1 지방선거를 코앞에 둔 지난달 29일 62조원 규모 역대 최대 추경안을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국회가 정부안보다 추경 규모를 2조6000억원 증액하며 올해 국가채무(1068조8000억원)는 전년 대비 103조5000억원 늘어날 전망이다. 올해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도 49.7%로 당초 정부안(49.6%)에 비해 악화하게 됐다. IMF에 따르면 2026년 한국의 일반정부 국가채무는 GDP 대비 66.7%까지 불어날 것으로 관측됐다. 지난해 51.3%에 비해 15.4%포인트 불어나는 것으로, IMF가 선진국으로 분류한 35개국 가운데 빚 늘어나는 속도가 가장 빠르다.
정부도 이 같은 기류를 심각하게 보고 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19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정책질의에서 "글로벌 신용평가사가 최근 우리나라 재정 상태를 예의 주시하는 분위기"라며 "우리 재정이 방만하게 운영되는 모습이 더 노출되고 부채비율 등이 악화되면 저희가 원하지 않는 결과로 갈 수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추 부총리는 "(재정 상황을) 정말 경계해야 한다"며 "바짝 긴장하면서 건전 재정 기조 확립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미 글로벌 신용평가사들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한국의 나랏빚 추세에 경고를 날렸다. 피치는 올 들어 한국 국가신용등급을 AA-로 유지하면서도 재정 여력에 대해서는 우려감을 표했다. 피치는 "한국이 단기적으로는 국가채무 증가를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국에는 재정준칙이 없어 재정정책에 제동 장치가 없다"며 "코로나19 국면 이후 어떻게 재정 규모를 효율화해 나갈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이 나와야 하는 시점"이라고 주문했다.
[김정환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