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학개미 투자 길잡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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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스트리트의 투자자들은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가 기준금리를 0.5%포인트 올리는 '빅스텝'을 밟았지만 유동성 흡수 효과는 1~2년에 걸쳐 서서히 나타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한동안 가파른 물가 상승세가 이어질 것이기 때문에 인플레이션에 견딜 수 있는 기업들을 분석해 발굴하라는 조언이다. 투자 전문가들은 지난 1~4일 열린 '밀컨 글로벌 콘퍼런스 2022'에서 이러한 메시지를 쏟아냈다.
최대 채권 운용사인 핌코의 에마뉘엘 로만 최고경영자(CEO)는 "약 40년 만에 다시 돌아온 인플레이션 시대에 아직 뚜렷한 정답이 안 보인다"면서도 "당분간은 시장에 대한 가격 결정력과 인플레이션 대응력을 갖춘 회사를 발굴해 투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케이티 코흐 골드만삭스 최고투자책임자(CIO)는 "인플레이션이 한동안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면서 "경기 침체를 유발하는 소비자들의 씀씀이는 서서히 둔화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면 일반적으로 금융자산을 보유한 투자자들이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 금융자산은 명목가치가 고정돼 있어 물가 상승분만큼 실물자산에 대한 구매력 하락이 불가피해서다.
특히 인플레이션은 주식에 가장 심각한 타격을 준다.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높여 물가를 억제하기 때문에 시중 자금이 예금과 채권으로 쏠리고 상대적으로 주식에 유입되는 자금이 줄어드는 것이다. 물가 상승→구매력 하락, 물가 상승→이자율 상승→주식에 대한 유동성 감소라는 두 가지 현상이 동시에 나타난다. 전 세계 투자 전문가들이 인플레이션 방어를 적극적으로 주문하는 이유다. 실제로 역사를 살펴보면 오늘날은 1980년 전후와 흡사하다는 평가가 많다. 당시 전 세계적으로 1·2차 오일쇼크가 일어나면서 물가 급등과 경기 침체가 동시에 찾아오는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이 벌어질 조짐을 보였다.
1976년 5%를 밑돌았던 미국의 물가 상승률은 1979년 11%까지 치솟았다. '인플레이션 파이터'로 불린 당시 폴 볼커 연방준비제도 의장은 "중앙은행의 역할은 파티가 한창일 때 접시를 빼는 것"이라고 강조하면서 기준금리인 연방기금금리를 급격히 올렸다. 1979년 10월 6일 연준은 기준금리를 11.5%에서 4%포인트 깜짝 인상했다. 최근 연준이 올린 0.5%포인트는 '베이비스텝'에 가까울 정도다. '토요일 밤의 학살'이라는 헤드라인이 신문을 장식했다. 하지만 연준은 1981년 7월 22일 기준금리가 22.36%에 도달할 때까지 멈추지 않았다.
효과는 있었다. 다만 물가가 꺾이는 데는 4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연준에 따르면 미국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978년 7.6%에서 1979년 11.3%를 기록한 뒤 1980년 13.5%로 정점을 찍었다. 이후 1981년 10.3%, 1982년 6.1% 1983년 3.2%로 서서히 안정됐다. 물가가 안정되기까지는 고통이 뒤따랐다. 경기는 침체됐고 기업이 파산했으며 실업률이 한때 10%를 웃돌았다. 실직자가 연준에 무기를 들고 난입하는 소동이 벌어질 정도였다. 투자자들은 이러한 역사적 사실 때문에 '빅스텝'이 몇 차례 이어져도 당분간 인플레이션이 지속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월스트리트의 투자자들은 인플레이션에 대한 적극적인 헤지를 주장한다. 물론 인플레이션 종목 투자에는 장단점이 있다. 물가 상승에도 포트폴리오의 가치와 소득 구매력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 장점인 데 반해 자칫하면 투자 상품 가치가 하락할 수 있다는 것이 단점이다.
특히 전문가들은 시장 지배력을 활용해 물가 상승분을 다른 기업에 전가할 수 있는 이른바 '가격 결정력'이 있는 기업들을 추천한다. 기업과 소비자 간 거래(B2C) 기업은 가격 인상이 어렵지만 기업 간 거래(B2B) 기업은 인상이 비교적 용이하다는 평가다.
앞서 뱅크오브아메리카는 인플레이션에 대항력을 갖춘 미국 상장사 7곳을 추천했다. △석유 시추 기술 업체 베이커 휴즈 △전기차 구동계 업체 보그워너 △금 생산업체 뉴몬트 △유리 기판·광섬유 업체 코닝 △무선 통신 네트워크 업체 아메리칸타워 △반도체 수율 모니터링 업체 KLA △첨단 소재·화학 업체 이스트먼 케미컬 등이다.
베이커 휴즈는 석유·가스 산업계에 장비와 기술을 제공하는 기업으로 미국 모든 주식 가운데 인플레이션에 가장 강력한 대항력을 갖춘 기업이라는 것이 뱅크오브아메리카의 분석이다. 2021년 영업이익은 14억2500만달러로 전년 대비 481.63% 폭증했다. 뉴몬트는 전 세계 최대 금 생산업체로 금값 상승에 따른 수혜를 고스란히 받는다. 실제로 주가는 금값 상승에 힘입어 1월 3일 60.98달러에서 5월 5일 현재 72.34달러까지 올랐다.
코닝은 유리 기판과 광섬유 장비를 생산하는 업체로 긁힘 방지 유리인 고릴라글라스를 개발해 사업이 탄력을 받고 있다. 5세대(5G) 이동통신 시대를 맞아 광섬유 수요가 늘어나는 것도 특징이다.
웜시 모한 뱅크오브아메리카 애널리스트는 이에 대해 "코닝은 유리가격 인상에 따라 수혜를 보는 기업"이라면서 "스마트폰과 자동차 유리 수요 증가가 주식 상승세에 모멘텀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KLA는 반도체 업계가 더 집적도가 높은 칩을 개발하고 공장을 확대할수록 매출액이 늘어나는 구조라는 평가다.
[실리콘밸리 = 이상덕 특파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