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격한 금리 인상 여파로 증권사들의 이달 채권 운용 손실이 2조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주식시장 호황으로 역대 최대 실적을 달성했던 증권사들은 약세장에 거래량이 감소해 매매 수수료가 줄어드는 데 이어 채권 운용 손실까지 겹쳐 타격을 받게 됐다. 한 증권사 채권 운용 담당자는 "올해 금리 인상에 따른 채권 운용 손실을 어느 정도 대비했지만, 예상보다 금리가 더 단기간에 빠르게 오르면서 손실이 급격히 늘어났다"며 "현재 증권사 채권 운용 담당자들은 패닉 상태에 빠져 있다"고 말했다.
24일 한국신용평가에 따르면 국내 증권사들은 장단기 채권 금리가 한 달 동안 50bp(1bp=0.01%포인트) 오를 때마다 9000억원씩 채권 운용 손실을 추가로 보는 구조다. 국고채 3년물 금리는 올해 초만 해도 1.86%였으나 지난 22일 장중 3%를 돌파했다. 전날보다 4.4bp 오른 2.971%에 거래를 마쳤다. 지난 3월에는 금리가 100bp 급등한 바 있다.
박혜진 대신증권 연구원은 "4월 금리 변동성이 더 커졌고, 지난 21일 NH투자증권의 1분기 실적 발표에서 채권 운용 관련 대규모 손실이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며 "증권사들을 다 합치면 2조원대의 손실 발생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가 다음달 금리를 50bp 인상할 것으로 예고하면서 2분기 채권 시장 상황이 더 나빠졌기 때문이다. 각각 20조원가량 채권을 보유하고 있는 7개 대형 증권사의 실적 발표도 예정돼 있다.
증권사 채권 운용 수익은 지난해 말 금리 인상이 본격화하면서 급감하기 시작했다. 2018~2020년 증권사 연평균 채권 운용 수익은 6조원가량이었지만 지난해 2조원으로 급감했고, 올해 3월부터 손실을 기록했다. 이달 채권 운용 손실은 2조원이 넘을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는 지난해 증권사 채권 운용 수익 2조원과 맞먹는 수치다.
증권사들은 지난해부터 채권 보유량과 보유 기간을 줄였지만 금리가 단기간 급등해 손실을 피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다른 증권사 채권 운용 담당자는 "올해 초만 해도 국내 채권 시장에서는 연준이 기준금리를 한 번에 0.5%포인트 올리는 빅스텝에 나서지 않을 거란 전망이 더 많았는데,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3월에 상황이 급변했다"고 말했다.
박 연구원도 "증권사들의 채권 운용 능력이 과거보다 좋아져 금리가 0.5%포인트 내외에서 움직이면 수익을 거둘 수 있다"며 "하지만 3월 한 달 동안 1%포인트 급등한 것은 증권사의 예상 범위를 벗어난 것"이라고 설명했다.
증권사들은 지난해부터 채권 보유량을 줄이고, 채권 듀레이션(기간)을 짧게 가져가는 등 채권 가격 하락에 대비했지만 운용 손실을 피할 수 없었다. 금융당국이 증권사의 재무건전성을 강화하면서 반드시 보유하고 있어야만 하는 채권 물량이 있기 때문이다.
채권 운용 손실을 헤지(위험 회피)하는 방법까지 쓰고 있지만 오히려 이 같은 노력이 채권 시장의 불안정성을 키우는 일도 발생하고 있다. 채권 시장 상황이 좋지 않은 만큼 현재 증권 시장은 외국인 수급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는데, 외국인이 채권을 순매수해 조금이라도 채권 금리가 하락하면 증권사들은 즉시 헤지를 위해 보유한 채권 매도에 나설 것이기 때문이다. 증권사들이 손실을 줄이기 위해 손절을 거듭하면서 금리를 안정시키지 못하고 계속 올리는 악순환이 거듭되고 있다고 증권가는 분석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올해 2월까지만 해도 채권 운용 담당
윤석열정부가 대규모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할 경우 채권 시장 불안정성은 더 커질 전망이다. 예상대로 50조원의 대규모 추경을 편성하면 적자국채 발행에 따라 국채 금리가 더 오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김제관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