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형토큰공개(STO)를 개발하는 블록체인 B사도 다 만들어놓은 서비스를 시장에 내놓기까지 몇 년을 허비했다. 담당부처가 없다며 서로 미루는 통에 유관부서를 찾아 설득하는 데에만 2년 넘게 걸렸기 때문이다. 어렵사리 특례로 서비스를 내놓기는 했지만 여전히 담당부처가 없다 보니 신사업 구상이나 새로운 서비스 출시는 꿈도 꾸지 못하는 상황이다.
가상자산 투자자 환경도 어렵긴 마찬가지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한국에서만 우선 시행된 '트래블룰' 등 각종 규제가 발목을 잡고 있어서다. 지난 17일 빗썸에 따르면 이 회사를 통해 가상자산을 입출금한 건수는 지난해에 비해 올해 평균 42%나 급감했다. 한 달 전 트래블룰이 시행되면서 투자자들의 개인 지갑이나 해외 거래소로 송금하기가 훨씬 불편해졌기 때문이다.
트래블룰은 자금세탁 방지를 위한 제도다. 국제 기준이자 꼭 필요한 제도이기는 하지만, 국내에서는 시행 초기부터 갈라파고스 규제로 꼽히고 있다. 가장 큰 이유로는 코인 산업 진흥을 위한 부처가 없고, 자금세탁 방지 등 규제 부처만 있는 엇박자 정책 환경이 꼽힌다. 거래소 간 입출금이 어려워지면 단순 매매뿐 아니라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한 탈중앙화금융, 대체불가토큰 등 서비스가 활성화되기도 어렵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가상자산 수익과 관련해 완전 비과세와 정부 기구 설립 등을 공약으로 내거는 등 기대감이 높은 가운데, 가상자산과 블록체인 업계에서는 주무부처를 신설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세계적으로 관련 생태계가 급성장하고 있는 만큼 한국도 산업을 키워야 한다는 주장이다.
가상자산 시장의 향후 성장성을 봐도 관련 부처가 필요하다. 국제 컨설팅기업 보스턴컨설팅그룹(BCG)에 따르면 한국 가상자산 시장은 2026년까지 1000조원 규모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BCG는 2026년에는 블록체인 관련 산업과 기업에서 4만명의 신규 일자리가 창출되고 5조원의 경제적 생산 가치가 생길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한국 가상자산 시장의 산업 진흥 정책과 규제는 해외보다 한참 느리다. BCG 보고서에 따르면 가상자산 관련 산업의 발전 성숙도는 '거래소-발행-지갑-상품-결제 측면'에서 모두 해외보다 3~5년 뒤처졌다. 싱가포르의 경우 이미 2020년 동남아시아 최대 은행인 싱가포르개발은행(DBS)이 디지털자산 거래를 위한 가상화폐 거래소를 설립했다.
코인 발행도 마찬가지다. 코인 발행은 코인공개(ICO)나 거래소코인공개(IEO) 등을 통해 이뤄진다. IEO는 투자자가 거래소를 통해 코인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방법이다. 공모주 청약과 비슷하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2017년 이후 ICO가 전무하다. 정부가 국내 ICO를 사실상 금지했기 때문이다.
국내의 유망한 코인들은 전부 해외에서 ICO를 한다. 게임사 코인으로 유명한 위메이드의 '위믹스'나 컴투스의 'C2X' 모두 해외에 상장했다. 가상자산 업계 관계자는 "어차피 해외에서 상장해도 국내에서 거래가 되는 상황에서, ICO만 해외에서 하느라 국부가 유출되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STO와 같은 실물 기반 가상자산도 발행하기 어렵다. 국내 STO는 대표적으로 카사, 비브릭, 루센트블록 등이 있다. 카사코리아의 카사는 금융위원회가 주관부처로, 금융혁신법에 근거해 출시됐다. 판매 상품은 수익증권의 디지털 유동화증권이다. 반면 세종텔레콤의 비브릭은 중소벤처기업부가 주관부처다. 지역특구법에 근거한다. 판매 상품은 디지털 부동산 펀드다. STO 비즈니스를 하고, 소비자가 보기에는 비슷한 부동산 수익권을 구매하게 되지만 사업 뒤에서 돌아가는 규제와 토큰 발행 논리는 전혀 다르다. 중구난방으로 사업이 진행되다 보니 신규 사업자가 새로운 사업을 도입하
투자자 보호를 위해서도 주무부처가 필요하다. 최화인 블록체인 에반젤리스트는 "주무부처 설립과 함께 당장 시급한 업계 현황은 시행령 등을 통해 가상자산 업계에 가이드라인(기준)을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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