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언 드레이튼(Iain Drayton) 골드만삭스 파트너는 지난 17일 골드만삭스 서울사무소에서 매일경제와 만나 대선 이후로 한국 재계와 금융권의 달라진 모습에 기대감을 내비쳤다.
그는 경력 27년의 금융전문가로 일본 외 아시아·태평양지역 투자은행(IB) 부문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분 단위로 일정을 관리하는 고위급 인사지만 한국에서 활동하는 대기업과 국내외 사모펀드(PEF) 고객들을 선거가 끝나자마자 만나기 위해 일주일에 달하는 해외입국자 의무격리를 기꺼이 감내했다. 골드만삭스에 따르면 다른 월가의 투자은행들도 새 정부 아래 한국 시장의 전망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월가 주요 IB 가운데서도 골드만삭스의 고위급 인사가 가장 먼저 한국을 찾은 이유는 올 들어 지정학적 분쟁이 격화되면서 글로벌 공급망에서 한국이 가진 위상이 더욱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드레이튼 파트너는 "올해 시장은 인플레이션과 우크라이나 전쟁, 미·중 갈등으로 변동성이 높아지며 침체된 분위기지만 유일하게 한국 시장만은 다르다"면서 "대선 결과를 지켜본 많은 한국의 기업들로부터 낙관적인 분위기가 느껴지며 신규 투자 기회를 찾고 있다"고 강조했다.
골드만삭스에 따르면 대선 이후 이미 10여 곳에 달하는 국내 대기업과 국내외 사모펀드가 골드만삭스와 접촉해 투자 기회를 물색하고 있다. 이들은 주로 대규모 인수·합병(M&A)을 통해 신사업에 진출하거나 기존 사업의 핵심 역량을 강화하는 전략을 취할 것으로 기대된다.
국내 대기업이 신사업 진출을 준비 중인 분야로는 반도체, 2차전지, 로봇, 인공지능, 모바일 플랫폼, 콘텐츠, 데이터센터, 6G 네트워크 장비 등이 거론됐다. 드레이튼 파트너는 "특히 로봇, 모바일 플랫폼, 네트워크 장비, 반도체 산업 등 특정 산업에선 이미 많은 대기업들이 신규 투자와 신사업 인수 등을 심도 있게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그는 국내 대기업 가운데서도 세계 정상급의 경쟁력을 갖춘 기업은 미국·유럽 시장을 겨냥한 '빅딜'도 활발하게 벌이고 있다고 귀띔했다. 2020년 12월 현대차가 미국의 로봇 전문기업 보스턴다이내믹스 지분 80%를 11억달러(약 1조원대) 규모로 인수한 사례처럼 올해도 일부 한국 대기업이 해외 시장에서 비슷한 인수 기회를 적극적으로 탐색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국내외 사모펀드들도 대기업들의 투자 확대 기조에 맞춰 대응에 나서고 있다. 특히 해외 사모펀드들은 한국, 호주, 일본 등 선진 아시아 시장에 집중 투자할 계획을 갖고 있다. 과거 같은 아시아 시장에서도 빠른 성장 속도를 보였던 중국, 동남아시아, 인도 시장에 투자를 집중하던 것과는 달라진 모습이다. 선진 아시아 시장 내에서도 올해 한국 시장 전망은 가장 밝은 편이다.
드레이튼 파트너는 "많은 사모펀드가 아시아 시장에 투자하기 위해 수십억 달러 규모의 펀드를 조성하고 있다"면서 "최근 골드만삭스가 자문했던 고객 사례를 보면 한국은 아시아의 핵심 시장 중 하나로 앞으로 더 많은 외국 자본이 한국에 투자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가 사례로 제시한 건 스웨덴 발렌베리가가 소유한 유럽 최대 사모펀드 운용사인 EQT파트너스AB다. 지난 16일 EQT파트너스AB는 68억유로(약 9조2000억원) 규모로 베어링프라이빗에퀴티아시아(베어링PEA)를 인수하며 아시아 투자 플랫폼을 확장했다. 골드만삭스는 매각 측 자문사로 참여했다.
월가 투자은행의 시각에서 여전히 한국에는 전통적인 업종에서 기업가치가 저평가된 회사가 많다는 점도 한국 시장의 매력도가 높은 이유다. 골드만삭스에 따르면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주된 요인은 남북한 충돌 보다는 경기에 민감한 회사의 높은 기업이익 변동성과 낮은 이익성장 전망, 불투명한 지배구조 등에서 발생한다. 드레이튼
[안갑성 기자 / 사진 = 이승환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