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학개미 투자 길잡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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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증권투자 업계에 따르면 영국 증시에 주식예탁증서(DR) 형태로 상장된 러시아 기업 주가가 최근 크게 폭락했다. DR란 기업이 해외에서 주식을 발행하기 위해 외국의 예탁기관이 현지에서 증권을 발행해 기업 주식과 전환이 가능하게 한 증서다. 현재 러시아는 주식 시장을 닫아 놓은 상태여서 영국에 상장된 DR 주식이 러시아 기업 주가를 추정하는 데 활용되고 있다.
우선 러시아에서 가장 큰 기업인 천연가스 재벌 가스프롬은 2일(현지시간) 올해 고점 대비 93.76% 떨어지며 58센트에 거래를 마쳤다. 가스프롬에 이어 러시아에서 두 번째로 큰 기업인 루크오일 주가도 고점 대비 99.2% 폭락하며 72센트 수준까지 떨어졌다. 루크오일은 장중 25센트를 기록하기도 했다.
러시아의 유명 석유 기업인 로스네프트의 최근 종가도 60센트로 올해 고점 대비 92.8% 하락했다. 러시아 최대 은행인 스베르은행 주가도 올해 고점 대비 99.75% 폭락했다. 최근 스베르은행 종가는 고작 4센트였다.
러시아 기업들이 영국 증시에서 폭락했다는 사실은 서학개미에게도 충격을 주고 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본격적으로 침공하자 서학개미들은 '포성에 사라'는 격언에 따라 러시아 주요 지수를 추종하는 미국 상장지수펀드(ETF)를 대거 순매수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아이셰어스 MSCI 러시아 ETF(ERUS)' '반에크 러시아 ETF(RSX)' '디렉시온 데일리 러시아 2배 ETF(RUSL)' 등은 각각 지난달 24일부터 이달 2일까지 미국 증시 순매수 결제액 상위 16위, 27위, 36위에 올랐다. 3개 ETF 합산 순매수 결제액은 2478만5120달러로 10위에 해당한다.
이 중 RUSL은 이미 상장폐지가 결정됐다. 지난달 28일 미국 ETF 운용사 디렉시온은 RUSL을 상장폐지하겠다고 공지했다.
디렉시온 측은 "러시아에 대한 제재로 러시아 증시 투자에 제약이 생겨 펀드 고문인 래퍼티 자산운용사의 권고에 따라 펀드 청산을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RUSL은 오는 11일까지만 거래가 가능하며 디렉시온은 11~18일 사이에 펀드 청산 절차를 밟을 계획이다. 11일 이전에 RUSL을 매도하지 않는 투자자들은 순자산가치(NAV)에 따라 투자금을 청산받게 된다. RUSL은 러시아 상장 기업과 매출 50% 이상이 러시아에서 발생하는 기업으로 구성된 MVIS 러시아지수를 2배로 추종하는 레버리지 상품이다.
상장폐지가 되지 않은 ETF들 수익률도 처참한 수준이다. 약 30개 러시아 관련 주식에 투자하는 ERUS의 최근 5일간 손실률은 51.41%다. RSX도 최근 5일간 손실률이 50.89%에 달한다.
현재 ERUS와 RSX의 괴리율도 매우 확대된 상태다. 우선 ETF가 투자하고 있는 DR 가치가 폭락해 이를 반영한 NAV가 매우 낮아졌다. 또 ERUS는 운용사가 현재 거래 정지된 러시아 증시의 가치를 추정해 반영하고 있는데, 러시아 기업 주식을 낮게 평가해 괴리율이 더 커졌다. 반면 일부 투자자가 러시아 ETF를 '저점 매수' 기회라고 인식해 투자를 계속하고 있고 신주 발행 중단으로 인한 시장 왜곡이 더해졌다. 이로 인해 2일 기준 ERUS의 괴리율은 1063.63% 수준까지 높아졌고 RSX도 455.54%의 프리미엄이 형성됐다.
이에 더해 러시아가 오는 9일부터 MSCI EM지수에서 퇴출되고 독립(standalone) 시장으로 재분류되는 악재가 더해졌다. 러시아가 MSCI EM지수에서 빠지면서 해당 지수를 추종하는 자금은 러시아 시장에서 매도하고 다른 국가로 옮겨갈 것으로 보인다. 현재 러시아 주식 시장이 닫혀 있는 만큼 다시 열렸을 때 팔 것으로 관측된다. 일각에서 러시아 증시가 열리면 대규모 자금 이탈로 지수가 하락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기하는 이유다.
전문가들은 러시아 ETF에 투자하는 건 매우 위험하다고 경고하고 있다. ETF 시장 조성자 중 하나인 GHCO의 댄 이조 최고경영자(CEO)는 파이낸셜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러시아 관련 ETF에 투자하는 건 불장난과 같다"며 "이들 ETF는 DR 비중도 높은 편인데, 유럽 시장에서 러시아와 관련된 DR가 상장폐지될 수 있다는 것은 매우 현실적인 위험 요소이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러시아 관련 ETF로 수익을 기대하다가 20년간 투자자금이 묶일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현재 ERUS와 RSX 모두 신주 발행이 일시적으로 중단된 상태다. 이 경우 거래는 가능하지만 추적 오차가 생겨 NAV와의 괴리율이 확대되는 등 본래 펀드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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