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학개미 투자 길잡이 ◆
월가 전문가들은 지정학적 위기가 단기 하방 압력에 불과하다고 보면서도 한편으로는 에너지 가격이 폭등해 실물 경제에 충격을 줄 가능성 역시 눈여겨보고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갈등이 더 커진다면 석유·가스뿐 아니라 곡물과 반도체 시장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15일 인테르팍스통신이 접경지에서 훈련하던 러시아 군 일부가 본 기지로 복귀 중이라고 전했지만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미국 등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과 러시아 간 무력 충돌 가능성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상태다.
14일 뉴욕 증시에서는 '대형주 중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와 '기술주 중심' 나스닥종합주가지수를 비롯한 4대 대표 주가지수가 일제히 약 0.40% 선 낙폭을 기록하며 거래를 마쳤다. 샘 스토벌 CFRA 수석 투자전략가는 이날 투자 메모를 통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가능성은 증시 측면에서는 일시적인 하방 압력이고 이보다 더 위험한 것은 인플레이션 여파"라고 지적했다.
우크라이나 위기가 국제 원자재 가격 상승세와 인플레이션 압박을 키움으로써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기준 금리 인상을 부추길 가능성이 있고, 한편으로는 인플레이션이 소비자 심리 침체 등 내수 위축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불확실성이 상품·반도체·방산 등 주요 부문에 영향을 줄 것으로 본다. 우선 반도체 투자 측면에서는 러시아 침공 탓에 우크라이나에서 주로 생산되는 산업용 가스 공급이 줄어들지가 핵심이다. 14일 피터 리 씨티그룹 분석가는 연구 노트를 통해 "우크라이나 접경지에서 무력 충돌이 발생하면 반도체 칩 생산을 위해 쓰이는 레이저의 원료 공급이 악영향을 받을 수 있다"면서 "특히 레이저 원료인 산업용 가스(네온·크립톤·크세논) 공급이 문제"라고 언급했다. 에런 레이커스 웰스파고 분석가도 "우크라이나는 특히 미국 반도체 제조용 네온의 90%를 생산하고 미국으로 향하는 팔라듐 35%를 생산한다"면서 특히 네온 가격 급등 가능성을 지적했다. 네온은 반도체 중에서도 디램, 플래시 메모리 생산과 관련이 크다.
유가와 천연가스 가격 급등세도 투자 관심사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대대적으로 공격하기보다는 접경지 도발과 '에너지 무기화'에 무게를 두는 것이 가장 현실적이라고 전문가들은 예상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과 유럽 측도 정면충돌보다는 금융 제재 카드를 들먹이고 있다.
이와 관련해 ING 분석가들은 "미국과 유럽연합(EU)이 러시아를 국제 금융결제망인 스위프트(SWIFT·국제은행간통신협회)에서 차단하면 세계 무역이 더 어려워질 수 있다"고 언급했다. 특히 매슈 리드 포린리포트 분석가는 "러시아가 유럽으로 향하는 석유나 천연가스 공급을 줄이면 가격이 치솟겠지만 이와 별개로 미국 측이 금융 제재에 나서도 러시아의 수출 비용을 올림으로써 최종적으로 에너지 값이 급등하고 이에 따라 다른 산업 부문도 타격을 받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상품 시장에서는 유가와 천연가스 가격이 오를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천연가스 상장지수펀드(ETF)인 '프로셰어스 울트라 블룸버그 내추럴 가스(BOIL)'나 미국 서부텍사스산원유(WTI)ETF인 '유나이티드 스테이츠 오일 펀드(USO)' 시세가 오를 것으로 본다. 두 ETF는 올해 각각 15.61%, 21.03% 뛴 상태다.
러시아의 에너지 무기화 전략으로 가장 큰 타격을 받는 것은 유럽 천연가스 시장이다. 14일 네덜란드 TTF 거래소 천연가스 3월물은 3.46% 올라 메가와트시(MWh)당 26.797달러를 기록했다. 투자은행 코웬에 따르면 러시아는 전 세계 천연가스 무역 가운데 25%를 차지하며, 러시아산 천연가스 중 85%가 우크라이나 등을 거치는 가스관을 통해 유럽으로 수출된다. 우크라이나 위기가 불거진 현재는 러시아에서 유럽으로 향하는 천연가스 양이 50%로 줄어든 상태다.
천연가스 가격 급등은 유가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 발전소들이 가스 대신 석유를 사용하게 되기 때문이다.
다만 석유도 공급 부족 사태가 더 심각해질 수 있다. 14일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는 WTI가 하루 만에 2.53% 올라 95.46달러를 기록했다. 95달러를 넘은 것은 2014년 이후 처음이다.
IHS마킷은 올해 전 세계 석유 수요가 하루에 400만배럴에 달할 것으로 보면서 공급보다 수요가 높아 유가가 오를 수밖에 없다고 본다. JP모건은 러시아가 석유를 에너지 무기로 활용하면서 우크라이나를 침공한다면 국제유가가 올해 3월 안으로 배럴당 최고 150달러까지 치솟을 것으로 보고 있다. 코웬 분석에 따르면 러시아는 하루 기준 약 500만배럴의 원유를 수출하는데 이는 전 세계 석유 무역에서 12%를 차지한다.
현재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러시아 등 비회원 산유국 협의체(OPEC+)는 달마다 하루 40만배럴씩 원유 생산을 늘리기로 했지만 전문가들은 OPEC 회원국 중 원유 생산 예비 능력을 충분히 갖춘 나라로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 정도를 꼽는다.
한편 국제 곡물시장에서는 밀과 옥수수 가격도 치솟고 있다. 이에 따라 곡물에 투자하는 ETF인 'ICE BofAML 곡물 펀드(GRU)' 시세도 뛰고 있다.
옥수수와 밀, 대두(대두박) 선물에 투자하는 해당 ETF는 올해 들어 시세가 10.30% 뛴 상태다. 14일 기준 밀과 옥수수는 각각 부셸당 7.93달러, 6.47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향하고 있다. 트레이시 앨런 JP모건 농산물 분석가는 "특히 밀 가격은 부셸당 11달러까지 치솟아 2008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에 달할 수 있다"고 봤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모두 밀·옥수수 주요 수출국이다. 마이클 매그도비츠 로보뱅크 수석 상품분석가는 "러시아가 흑해에서 우크라이나 주요 항구를 차
방산 분야는 주가가 오를지 미지수다. 모건스탠리 분석가들은 지난 주말 투자 메모를 통해 러시아의 사이버 공격을 염두에 둘 때 부즈 앨런 해밀턴 등 사이버 보안 관련 기업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김인오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