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가 지난 6일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 앞에서 상장회사의 물적분할에 반대하는 집회를 열었다. [사진 제공 =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 |
물적분할이란 어느 기업이 특정 사업부문을 자회사로 떼어내는 것을 의미한다. 대규모 자금 조달 및 전략적투자자(SI) 유치와 신사업 육성이 원활해지는 장점이 있지만, 보통 알짜배기 사업을 분사하기 때문에 모회사의 지분가치 훼손으로 이어져 개인투자자들의 피해가 커진다는 단점이 있다. 이에 개인투자자들은 시위에 나서고 정부에 호소하는 등 적극적으로 물적분할에 반대하고 있다.
7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는 전날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 사옥 앞에서 '상장사 물적분할 반대 규탄 집회'를 열었다. LG화학, SK이노베이션, 포스코, CJ ENM 등 물적분할을 했거나 할 예정인 기업의 소액주주들이 참석했다. 영하의 날씨에도 피켓을 흔들고 구호를 외쳤다. 단순히 물적분할 자체를 문제 삼는 것이 아니라, 무분별한 자회사 상장 저지 및 좀처럼 소통에 응하지 않는 모회사 비판이 목적이라고 강조했다.
대표적인 물적분할 사례로 SK아이이테크놀로지, SK바이오사이언스, 카카오뱅크, 카카오페이 등이 꼽힌다.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 등도 해당된다. CJ ENM은 콘텐츠부문을, NHN은 클라우드부문을 나눈 뒤 기업공개(IPO)를 진행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개인투자자들은 모·자회사가 동시 상장할 경우 모회사의 주식 가치 하락이 우려된다고 입을 모았다. 대주주는 지배력도 지키고 경제적 이익까지 얻을 수 있지만, 모회사의 소액주주들은 손해를 입을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LG화학의 주가는 이날 오후 1시 29분 기준 전일 대비 2만4000원(3.48%) 오른 71만4000원을 가리키고 있다. 올해 들어 하루도 거르지 않고 주가가 상승했지만, 지난해 1월 장중 최고가(105만원)와 비교하면 32% 빠졌다. LG에너지솔루션의 증권시장 데뷔일이 다가오자 증권사들은 LG화학의 목표주가를 하향하는 리서치 보고서를 발간하기도 했다.
SK케미칼도 SK바이오사이언스를 지난해 3월 상장시킨 후 주가가 급락했다. 지난 2월 46만원대였던 SK케미칼의 주가는 이날 기준 14만원대에 불과하다. 반면 SK바이오사이언스는 시초가(13만원) 대비 60%가 넘는 수익률을 기록하고 있다. 글로벌 헤지펀드까지 SK케미칼에게 서한을 보내 보유 중인 SK바이오사이언스 지분을 팔아 그 수익금을 배당하라고 요구했다.
SK이노베이션의 주가도 SK온이 상장 전 지분 투자 작업에 착수했다는 소식에 지지부진한 흐름을 나타내고 있다. CJ ENM과 NHN 역시 물적분할에 대한 방침을 발표한 이후 약세로 돌아섰다. 카카오뱅크와 카카오페이를 연달아 상장시킨 카카오는 10만원대를 내줄 위기에 처했다. 모회사를 믿고 오랜 기간 투자했던 주주들이 큰 손실을 본 셈이다.
포스코소액주주모임도 오는 11일 서울 강남 포스코센터에서 포스코의 지주회사 체제 전환에 반대하는 집회를 연다. 포스코는 포스코홀딩스를 지주사이자 상장사로 유지하면서 철강부문을 분리해 지주사 아래에 둘 계획이다. 포스코소액주주모임은 주요주주인 국민연금에 반대표 행사를 요구하고, 포스코에 직접 물적분할 결정을 철회하라고 항의했다. 현재 포스코는 주주들의 동의 없이 자회사를 상장을 추진하지 않겠다는 조항을 신설하는 등 민심을 다독이고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도 뜨겁다. '기업의 물적분할을 금지해 주십시오', '반자본주의 물적분할법 개정이 필요합니다', '지주사 전환을 위한 물적 분할 시도를 막아 주세요' 등 물적분할에 불만을 가진 게시물이 연이어 올라왔다.
이현수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지난해 다수의 기업이 각각의 목적을 가지고 물적분할을 실시했으나 투자자의 반응이 좋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라며 "물적분할 후 재상장이라는 이슈가 환경·사회·지배구조(ESG) 측면에서 부정적으로 인식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학계에서도 지배주주가 아닌 일반주주의 권리 보호가 선행돼야 한다는 제언이 나온다. 전 세계적으로 경쟁이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그에 맞는 경영 전략이 수립돼야 하는데 사업 영역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자금 투입이 필수이기에 운영상 분할은 인정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글로벌 증권시장에서도 모·자회사 동시 상장을 허용하고 있다. 다만 동시 상장 조건이 까다롭고, 모회사 주주에게 자회사 주식을 취득할 수 있는 권리인 주식매수청구권을 부여하는 등 차이가 있다.
이상훈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가람 매경닷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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