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서울에서 작은 카페를 운영하는 30대 박 모씨는 최근 신용점수를 떨어뜨리는 데 집중하고 있다. 박씨는 "카드론(카드사 대출)보다 현금서비스를 받으니 신용점수가 더 떨어져 이를 활용하겠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아동복 매장을 운영하는 40대 김 모씨는 "지난달 신용점수가 850점이었는데 100점 넘게 낮추려고 온갖 애를 쓰고 있다"며 "신용점수는 올리는 것보다 낮추는 것이 쉬운 데다 일정 점수 하락을 감수하면 곧바로 저금리 대출을 받을 수 있어 네이버 등 포털사이트상 여러 가지 기법을 이용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소상공인이 신용점수를 일부러 낮추는 이유는 지난 3일 접수가 시작된 중소벤처기업부의 '희망대출'을 받기 위해서다.
5일 금융권에 따르면 정부가 올 들어 저신용·저소득자를 위한 대출 지원 방안을 내놓자 일부 예비 차주(돈 빌리는 사람)가 신용도를 일부러 떨어뜨려 정책자금을 받는 기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특히 내 자산 현황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는 '마이데이터' 서비스가 본격화하면서 이들은 매일 신용점수를 확인해가며 점수를 낮추고 있다.
희망대출 대상자는 지난달 27일 이후 소상공인 방역지원금을 지급받은 소상공인 중 나이스평가정보 기준 신용점수 744점 이하인 사람이다. 연 1%의 저금리로 1인당 최대 1000만원씩 대출받을 수 있고, 총 14만명에게만 지원하기 때문에 차주 입장에선 빠르게 신청하는 것이 유리하다.
중기부는 지역신보 특례보증 등을 통한 코로나19 피해 중·고신용자 소상공인에 대한 금융 지원계획 역시 함께 내놓긴 했다. 다만 아직 구체화되기 전으로, 이달 중 별도로 발표하고 시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금융권 관계자는 "일부에게만 금융상품을 공급하겠다는 정책은 반드시 부작용이 나온다"며 "신용점수는 하락보다 상승시키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신용점수 하락은 이들에게 '부메랑'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일부 소상공인은 제2금융권이나 대부업체에서 최대한 대출받아 신용점수를 떨어뜨린 후 청약철회권을 행사하는 정보도 공유하고 있다. 금융소비자보호법에 따라 대출을 받은 후 14일 이내에 인터넷, 서면, 전화 등으로 청약을 철회하면 대출 계약은 무효가 되고 대출 기록도 삭제된다. 곧바로 신용점수는 떨어뜨리고 대출 부담은 없애면서 '희망대출'을 받겠다는 것이다.
최대한 신용점수를 낮추기 위해 일부러 단기 대출을 상환하지 않고 연체하는 소상공인도 늘고 있다. 지난달 받아둔 현금서비스 대출금을 이달에 갚지 않기 위해 결제될 현금이 빠져나가는 은행 계좌 잔액을 일부러 비워 두는 것이다. 올해 가계대출 총량 규제가 더욱 엄격해지면서 대출이 절실한 사람이 꼼수를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금융당국은 올해 가계대출 증가율 목표치를 작년 6%보다 더 낮춰 4~5%로 잡았다.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이 추가로 예고된 가운데 이달부터 차주별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2단계 규제로 대출 한도도 줄어들고 있다. 반면 중·저신용자 대출과 정책서민금융상품은 가계대출 총량 한도에서 제외될 것으로 보인다. '희망대출' 역시 각종 금융 규제에서 제외되기 때문에 일단 받으면 유리한 셈이다.
대표적인 생활자금 대출 상품인 햇살론과 새희망홀씨는 연 소득 3500만원 초과 4500만원 이하 차주인 경우 신용등급 6등급(나이스평가정보 기준 신용점수 744점) 이하여야만 신청할 수 있다.
햇살론은 1500만원 한도로 10.5% 이내 금리를, 새희망홀씨는 3000만원 한도로 6~10.5% 금리를 제공한다. 은행권의 사잇돌대출은 신용등급 4~10등급 신용자에게 6~10%대로 2000만원까지 대출을 해준다. 저축은행권의 사잇돌2 대출은 신용등급 1~8등급 신용자를 대상으로 2000만원까지 8.9~15% 금리를 적용한다. 이처럼 규제에서 벗어난 서민대출 종류가 많아지면서 제도상 허점을 노리는 수요 역시 늘고 있다.
[명지예 기자 / 문일호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