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00만명이 가입한 '국민보험' 실손보험료가 또 오른다. 15일 업계에 따르면 내년 보험료 인상을 앞두고 실손보험 가입자들에게 '갱신 고지서'가 날아들고 있다. 실손보험은 가입 조건에 따라 3년에서 5년 주기로 보험료가 갱신된다. 특히 5년 만에 인상되는 고령층 고객은 보험료가 많게는 2~3배나 올랐다. 업계는 금융당국에 내년 인상 폭으로 평균 20% 이상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인상 폭이 가파른 것은 최근 몇 년간 실손보험료가 연 10%대로 계속 올랐기 때문이다. 갱신할 때 이 누적인상분이 한꺼번에 반영되면서 고객 부담이 커진 것이다. 특히 1·2세대 상품 고객들이 보험료 부담을 못 이겨 3세대 실손으로 갈아타면서 남아 있는 가입자들의 보험료는 더 많이 오를 수밖에 없는 구조다. 1·2세대 실손은 자기부담금이 거의 없다 보니 한 해 수천만 원씩 비급여 치료를 받는 얌체 고객이 생겼고, 선량한 가입자가 이들의 보험금까지 떠안게 됐다. 실손보험은 판매 시기에 따라 총 4세대로 구분되는데, 2세대 표준화 실손(1877만건)이 가장 많고, 1세대 옛 실손보험이 854만건으로 24.4%를 차지한다.
보험료 인상을 통지하는 보험사들은 억울함을 호소한다. 현재 실손보험사들은 평균적으로 보험료 100원을 받아 130원을 지급하고 있다. 올해 손실액만 3조6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업계는 적자 폭을 줄이려면 보험료를 20% 이상 올려야 한다고 금융당국에 요청했지만, 정부는 업계 주장만큼 올릴 수는 없다는 방침이다. 양측의 입장 차가 큰 만큼 예년처럼 10% 중후반대로 인상 폭이 결정될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올해 실손보험료 인상 폭은 회사·상품별로 평균 11.9~19.6% 수준이었다.
보험사들은 특히 본인부담금이 거의 없어 적자 폭이 큰 1세대 상품과 2세대 실손보험료는 법정 상한선인 25%까지 인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 보험사 관계자는 "올해 손실액을 계산해보고 업계가 모두 놀랐다"며 "실손은 물론 다른 보험상품 가입자에게까지 피해가 전가될 수 있다. 망할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보험연구원은 지금 상태가 지속되면 향후 10년간 실손보험 누적 적자가 112조3000억원에 달할 것이라는 연구 결과를 내놨다. 정성희 보험연구원 산업연구실장이 향후 10년간 실손보험 재정 전망을 분석한 결과 최근 4년(2017~2020년) 평균 보험금 증가율과 보험료 증가율이 계속 유지된다면 내년부터 2031년까지 실손보험 누적 적자는 112조3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됐다.
지난 4년간 보험료 인상률은 연평균 13.4%였다. 하지만 가입자들에게 지급되는 보험금은 연평균 16.0%씩 늘었다. 이 추세가 유지된다면 당장 내년에는 위험보험료(보험료에서 사업운영비를 제외하고 보험금 지급에 쓰이는 돈)로 보험금을 지급하는 데 3조9000억원이 모자란다. 이같은 적자 규모는 2023년 4조8000억원, 2025년 7조3000억원, 2027년 10조7000억원으로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으로 연구원은 예측했다. 10년 후인 2031년에는 한 해 적자가 무려 22조9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됐다.
이같은 실손보험 적자의 주범으로 일부 병원과 가입자의 도덕적 해이가 지목된다. 도수치료처럼 꼭 필요하지 않은 비급여 시술에 보험금이 줄줄 새고 있어서다. 국민건강보험에서 적자를 볼 수 밖에 없는 병원들은 실손보험 비급여 치료로 손해를 벌충하고 있다. 이를 모니터링하는 것은 보건복지부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관할이다. 금융당국이나 보험사가 쓸 수 있는 카드가 별로 없다는 이야기다. 클릭 몇 번이면 보험금을 받을 수 있는 청구 간소화 서비스가 몇 년째 표류하고 있는 것도 심평원이 비급여 진료를
금융당국 관계자는 "소비자 부담과 가입자 간 형평성을 고려해 보험료 인상에 대해 보수적으로 보고 있다"면서도 "보험사의 손해율, 건전성 등도 종합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은 결국 실손보험 문제를 해결하려면 비급여 진료 관리 체계 확립 등 고질적인 구조적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신찬옥 기자 / 최근도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