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이더M ◆
"코로나19 이후 자산가격이 급격하게 상승하며 현금 보유 리스크가 커졌다. 부동산시장에서 20·30대가 주택 패닉바잉에 열을 올렸듯이 기업도 투자하지 않으면 경쟁사에 뒤처질 것이라는 두려움을 느낀다."(모 중견기업 최고재무책임자)
1일 매일경제 레이더M이 국내 주요 기업 43곳 최고재무책임자(CFO)와 재무담당 임원을 대상으로 '내년 자금 사용의 주된 목적'을 물은 결과 절반이 넘는 55.8%가 'M&A 등을 통한 신성장 동력 발굴 및 확대'를 꼽았다. '설비 투자를 통한 공급 역량 확대'(16.3%)라고 대답한 경우까지 포함하면 10개 기업 중 7개 이상이 자금 사용 목적을 투자 활동에 두고 있는 셈이다. 반면, 차입금을 축소하는 등 재무구조를 개선하는 데 방점을 찍겠다고 응답한 기업은 18.6%에 불과했다.
대부분 기업이 내년 국내 금리가 올라갈 것이라고 전망(97.7%)하면서도 투자에 소홀해서는 안 된다는 절박감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역대 최대 규모를 찍은 국내 M&A시장이 내년에도 활황을 이어갈 것이란 관측을 가능하게 하는 부분이다. 레이더M 리그테이블에 따르면 올해 들어 3분기까지 국내 M&A시장(거래가격 50억원 이상 규모 경영권 거래 기준) 규모는 50조원을 돌파해 연간 기준 최고 기록인 2019년 45조3053억원을 이미 넘어섰다. 국제 컨설팅 기업인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이 최근 발간한 '2021 M&A 보고서'에 따르면 올 상반기 M&A 거래 규모(2조620억달러)는 전년 동기 대비 136% 증가했다. 이는 기업 실적 개선과 코로나19 이후 시중의 유동성 확대로 기업별 보유 현금이 늘어난 영향으로 해석 가능하다. 실제 내년도 자금 조달 방법으로 가장 선호하는 수단을 묻자(복수 응답) '보유 현금 및 잉여자금을 활용하겠다'고 답한 경우는 51.2%로 '회사채를 발행하겠다'고 응답한 기업과 함께 공동 1위를 기록했다.
응답 기업의 3분의 1(33.3%)은 사모펀드(PEF) 운용사가 내년에도 M&A 활성화를 이끌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었다. 사모펀드 운용사는 실제 일반 기업만큼이나 풍부한 실탄을 바탕으로 내년도 M&A 매물을 공격적으로 살펴보고 있다. 베인앤드컴퍼니가 발간한 '2021년 상반기 세계 프라이빗에퀴티시장 업데이트'에 따르면 전 세계 사모펀드 운용사는 총 3조3000억달러(약 3927조원)의 '미소진 투자금'을 보유하고 있다. 이는 10년 전 1조2000억달러에서 2.75배 늘어난 수치다.
토종 사모펀드 운용사 VIG파트너스의 이철민 대표는 "올해 M&A시장은 호황이었고, 이러한 기조는 내년까지 이어질 것이라고 본다"며 "미소진 투자금이 늘어난 상태이니 M&A를 하려는 수요가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올해와 비교해 내년 기업공개(IPO)시장은 다소 둔화될 것으로 관측돼 IPO를 염두에 뒀던 매물들이 M&A시장으로 나올 가능성이 크다"며 "디지털 트랜스 포메이션, 바이오, 친환경 등 변화 흐름에 따라 대기업들이 사업을 재편하면서 적극적으로 매물을 사고팔 것"이라고 예상했다.
최근 거세지는 ESG(환경·책임·투명경영)에 대한 요구도 M&A로 풀어가고자 하는 수요가 많다. '강화되는 환경 규제에 대응하고 ESG 경영을 실천하는 차원에서 M&A를 진행할 필요성을 느끼느냐'는 질문에 61.9%가 '그렇다'고 답했다.
이에 M&A시장에서도 인수 기업의 ESG 지표를 높여줄 친환경 관련 매물이 인기를 끄는 모양새다. 매각가로 최대 1조원이 언급되는 EMK, 매각 절차가 한창 진행 중인 KG ETS 환경에너지사업부, 대경오앤티 등이 이에 해당한다. 친환경차 확대 수혜를 받고 있는 한온시스템 인수전도 복수의 원매자로부터 호응을 얻고 있다. 김이동 삼정KPMG M&A센터장(부대표)은 "최근 대기업들은 신성장 동력 확보에 애를 쓰고 있다"며 "과거에는 잘 들여다보지 않았던 폐기물 처리 기업 등 밸류에이션(기업가치 평가)이 높은 회사에 대해서도 M&A를 적극적으로 검토한다"고 말했다.
다만 기업들은 금리와 물가 상승, 코로나19 오미크론 변이 바이러스 발생 등 외재적 충격이 기업 신용 등급 하락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예의주시하는 모양새다. 내년도 기업 자금 운영을 위협하는 요소에 대한 질문(복수 응답)에 가장 많은 답변은 금리상승(69.8%)이었으며 그 뒤를 공급망 차질 등으로 인한 물가상승(48.8%)이 따랐다. 이는 수익성 악화(27.9%)와 경기부진(20.9%)을 꼽은 비율보다 압도적으로 높은 수치다.
설문조사에 참여한 기업
금호석유화학, 기아, 대상, 대우건설, 두산, 두산중공업, 롯데면세점, 롯데쇼핑, 삼성SDI, 스튜디오드래곤, 신세계, 신세계디에프, 유진기업, 이마트, 지니뮤직, 태광산업, 태영건설, 포스코, 포스코인터내셔널, 한라홀딩스, 한화솔
[김명환 기자 / 박창영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