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멀어지는 금융허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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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캐나다 3위 은행인 노바스코셔은행이 한국에서 철수한다. 노바스코셔은행 서울 지점은 최근 영업실적이 부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16일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노바스코셔은행 서울 지점의 모습. [이충우 기자] |
노무현정부가 2003년 '동북아 금융허브 추진 전략'을 발표하면서 야심 차게 내세웠던 목표들이다. 하지만 약 20년이 지난 현재 금융허브 전략은 사실상 실패한 것으로 평가된다. 목표에 걸맞은 정책을 펴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국은 세계 금융허브가 되기는커녕 외국 금융사들이 외면하는 곳 중 하나로 전락했다. 이 과정에서 HSBC, 골드만삭스, 씨티은행 등 세계 유수의 은행들이 한국을 떠났고 이번엔 캐나다 노바스코셔은행까지 짐을 쌌다. 전문가들은 한국이 금융허브를 키우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과도한 정부 규제와 노동시장 경직성을 해소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동북아 금융허브 전략은 2003년 핵심 경제정책으로 추진됐다. 당시 금융허브 달성을 위해 여러 가지 단계적 목표를 설정했지만 지금까지 한국투자공사(KIC) 육성을 제외하고는 모두 실패했다. 정부가 목표로 했던 50대 자산운용사 지역본부 유치, 대형 상업·투자은행 지역본부 유치 등은 20년간 한 차례도 없었다.
최종 목표인 2020년까지 아시아 3대 금융허브 도약은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는 평가다. 세계 컨설팅기관 Z/Yen이 지난 3월 발표한 도시별 국제금융센터 순위를 보면 서울 16위, 부산 36위로 상하이(3위), 홍콩(4위), 싱가포르(5위)에 비해 한참 못 미친다. 2008년 금융중심지법안이 시행되면서 금융허브로 서울 여의도와 부산 문현동이 지정됐지만 이 역시 실질적인 금융허브 역할은 하지 못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주요 외국 금융사 유치는커녕 부산의 경우 국내 주요 금융사도 이전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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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권 관계자는 "몇몇 인수 후보가 있었지만 후보들 모두 소비자금융 사업부 인수를 위한 최소한의 인원 외에는 고용을 승계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라 합의가 쉽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한국씨티은행 소비자금융 사업부문은 평균 근속연수가 18.4년으로 다른 시중은행들 대비 높은 편이다. 평균 연봉도 지난해 기준 1억1200만원에 달한다. 씨티은행 경영진이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년까지 남은 잔여 개월 월급 100%를 지급하는 파격적인 조건의 희망퇴직도 추진했지만 매각 성사에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업계 관계자는 "씨티그룹이 출구전략을 발표한 다른 국가들의 경우 대부분 직원 퇴직을 위해 3개월가량의 월급을 보상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의 과도한 규제와 이에 따른 경영 불확실성도 외국계 금융사들이 한국을 떠나는 주요 원인 중 하나다. 세계 금융허브들의 경우 법률이나 정책에서 금지한 행위가 아니면 대부분 허용하는 '네거티브 규제'가 적용되는 반면, 한국은 허용된 것 외에는 모두 금지하는 '포지티브 규제'가 적용된다. 한 업계 관계자는 "설사 법적으로 허용된다 하더라도 금융당국에 일일이 확인하는 절차를 거쳐야 하고 처음에는 된다고 했던 것도 나중에 안 될 가능성이 존재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규제 환경하에서는 새로운 금융상품을 출시하거나 창의적 시도들을 하기 어렵고 명시적 규제뿐만 아니라 창구 지도까지 감안하면 금융사의 자율성은 아예 없다고 보면 된다"고 덧붙였다.
금융당국은 올해 가계대출 증가율을 6%대로 맞추기 위해 매월 시중은행들로부터 월별 증가율을 보고받는 등 금융사들을 압박하고 있다. 금융사들은 대출 한도를 줄이고 금리를 높이는 등 대출 총량을 맞추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코로나19를 겪으며 배당 성향(당기순이익 중 배당금 비율)에 대한 간섭도 높아졌다. 한국씨티은행의 배당 성향은 40%에 육박할 정도로 높은 수준이었지만 지난해에는 금융당국 권고치인 20%까지 떨어졌다.
금융허브 국가를 벤치마킹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은행 관계자는 "씨티그룹은 홍콩, 싱가포르, 아랍에미리트(UAE), 런던을 제외한 나머지 13개국에서 소비자금융 폐지 절차를 밟고 있다"며 "한국 시장이 '왜 저런 세계 금융시장 허브로 크지 못했는가'에 대한 반성이 있어야 할 것"이
4군데 세계 금융허브의 공통점을 살펴보면 첫째로는 금융 개방도가 높고 둘째, 영어 사용이 자유롭다. 국내 금융사들이 단순히 예·적금을 받고 기업·가계 대출을 통해 수익을 내는 데 반해 이들 지역 금융사는 다양한 금융상품과 서비스를 취급하고 투자도 자유롭다.
[윤원섭 기자 / 김혜순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