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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 직장인 B씨는 지난 5월 치과진료 후 실손보험금 청구건이 생겼는데 현재까지 미루고 있다. 청구액이 3만원이 조금 넘는 소액인 데다 보험금 청구 절차가 불편해서다. A씨는 "실손보험금 청구를 하려면 치과에 방문해 서류를 발급하고, 또 보험금 청구 서류를 인터넷으로 내려받아 프린터 후 작성하면 이를 팩스나 모바일로 보험사에 보내야 한다"며 "불편 그 자체"라고 꼬집었다. 이어 "서류 발급비가 보험금 청구액보다 더 많은 경우도 있다"고 덧붙였다.
16일 보험업계 등에 따르면 이런 일련의 불편한 실손보험금 청구 절차로 인해 실손보험 가입자 2명 중 1명은 보험금 청구를 아예 포기하고 있다.
소비자와함께, 금융소비자연맹, 녹색소비자연대, 서울YMCA, 소비자권리찾기시민연대, 한국소비자교육지원센터 등 소비자단체들이 합동으로 올해 4월 23일부터 26일까지 실손보험금 청구 관련 인식을 설문조사한 결과에서다.
조사에 따르면 최근 2년 이내 실손보험금을 청구할 수 있었음에도 청구를 포기한 경험이 전체 응답의 47.2%를 차지했다. 2명 중 1명은 보험금을 받을 수 있었음에도 포기한 셈이다. 이렇게 보험금 청구를 포기한 사람들이 많다보니 보험금 청구권 소멸시효는 2015년 3월 2년에서 3년으로 연장되기도 했다.
특히 이들이 청구를 포기한 금액은 30만원 이하 소액청구건이 95.2%였다. 이 설문조사는 20세 이상 최근 2년간 실손보험에 가입한 1000명 대상으로 이뤄진 결과다.
현행 제도에 따르면 실손보험금을 수령하기 위해서는 실손보험 가입자가 직접 영수증과 진료명세서, 진단서, 소견서 등 보험금 청구에 필요한 증빙 서류를 병원에서 일일이 발급해야 한다. 이어 이를 우편, 팩스, 이메일 등으로 보험사에 제출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보험금 청구에 필요한 서류를 확인하고 보험사 심사 과정까지 감안하면 최소 5단계의 절차를 거쳐야만 실손보험금을 받을 수 있다. 만약 서류가 누락되기라도 하면 이 절차를 다시 거쳐야 한다.
절차가 번거롭고 복잡하다 보니 보험금이 소액이면 청구 자체를 포기하는 실손보험 가입자가 많다는 통계는 정부 차원에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일맥을 같이한다.
2018년 2월 금융위원회와 복건복지부의 공동 설문조사에 따르면 실손보험 가입자의 보험금 미청구 비율은 47.5%였으며, 보험금을 청구하지 않은 이유로는 '진료금액이 소액'이라는 이유가 73.3%를 차지했다. 또 '병원 방문이 귀찮고 시간이 없다'고 답한 응답자가 44%, '증빙서류를 보내는 것이 귀찮다'는 이유를 든 응답자는 30.7%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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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금 청구를 위한 진단서 등 서류를 발급하고 이를 다시 보험사 영업점에 접수하기 위해 버스나 지하철 등을 타고 하는 일련의 과정이 불편할 뿐만 아니라 시간과 비용도 발생해서다. 건당 보험금이 크다면 이런 수고를 감수하겠지만 실손보험금 청구는 대부분 건당 30만원 이하 청구가 많다. 때문에 고연령층은 자녀가 대신해 실손보험금을 청구하는 사례도 많다고 한다.
이같은 불편을 해소하기 위한 실손보험금 청구 간소화를 위한 보험업법 개정안이 국회 법안 발의 목록에 올라가 있지만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대한의사협회 등 보건의약계가 폐기를 촉구하는 등 진전없는 상황이 10년 넘게 되풀되는 중이다.
실손보험금 청구 절차를 간소화하는 보험업법 개정안은 의료기관이 실손보험 가입자의 진료 내용을 전산으로 보험사에 자동으로 전송하는 것이 골자다. 때문에 실손보험 가입자는 별도 진단서, 소견서 등을 발급할 필요가 없다. 실손보험금 청구 간소화가 이뤄진다면 실손보험 가입자의 편의성이 증대되는 한편 의료기관의 비급여 항목 청구가 줄어 손해율 개선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보험업계는 기대한다. 소비자단체들도 실손보험 가입자의 편
하지만 보건의약계는 값비싼 비급여 진료 현황이 노출되고 정부나 보험사가 진료수가를 통제하는 상황을 우려해 반발하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보건의약계 반발을 우려, 10년 넘게 관련 법안 처리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전종헌 매경닷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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