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은행의 퇴직연금 반격 ◆
↑ 1일 서울 서초동 삼성증권 삼성타운금융센터를 찾은 한 고객이 삼성증권 직원에게서 개인형퇴직연금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이승환 기자] |
4대 은행 중에서도 신한은행과 국민은행, 하나은행의 준비 속도가 비교적 빠른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신한·국민은행은 올해 상반기 퇴직연금 계좌에서 ETF를 실시간으로 거래할 수 있는 시스템을 거의 다 구축했다가 막판에 금융당국이 은행의 업무 영역이 아니라는 유권해석을 내놓으면서 시스템 가동이 불발됐다.
한 자산운용사 ETF 담당 임원은 "시차는 있겠지만 연내에 4대 은행을 중심으로 개인형퇴직연금(IRP) 계좌부터 ETF 매매 서비스를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며 "신탁 방식을 활용하면 실시간 매매는 안되고 지연 매매 형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시중은행들이 경쟁적으로 퇴직연금의 ETF 투자 시스템 구축에 나선 이유는 명확하다. 지난해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불기 시작한 동학개미운동이 퇴직연금 시장으로 번지며 폭발적인 성장 가도에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퇴직연금은 안정적으로 은행 예금에 넣어두는 게 관행이었다. 하지만 최근 퇴직연금 가입자들은 특히 ETF로 직접 운용하며 바로바로 수익률을 확인하기를 원한다.
4개 증권사 확정기여(DC)형 퇴직연금과 IRP 계좌에서 이뤄지고 있는 ETF 투자 잔액도 2019년 1836억원에서 올해 9월 말 2조2199억원으로 12배나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김동엽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 상무는 "펀드와 달리 실시간 거래가 가능하고 투자 내역도 투명하게 공개되기 때문에 퇴직연금을 ETF에 투자하는 사례가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다"며 "전기차, 메타버스 등 10~20년 뒤 미래를 내다보고 투자할 수 있는 테마형 상품이 늘어나고 있는 것도 ETF를 강력한 퇴직연금 투자 수단으로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은행들은 우선 IRP부터 ETF 매매 서비스를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 DC형은 회사가 은행·증권·보험 등 사업자를 지정해두기 때문에 고객 이탈이 쉽지 않다. 반면 IRP는 근로자들이 알아서 가입하고 이동도 자유롭다.
금융투자 업계 관계자는 "IRP에 가입하면 연금저축과 합쳐 700만원까지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연말에 가입자가 몰린다"며 "IRP에서 ETF 매매가 안되면 연말에 증권사로 고객을 다 뺏길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은행들이 연내에 퇴직연금 ETF 매매 서비스를 시작하려고 속도를 내고 있다"고 말했다.
은행 IRP에서 ETF에 투자할 수는 있지만 실시간 거래는 어려울 전망이다. 형식상 신탁 방식을 채택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은행별로 하루에 몇 번 거래할 수 있을지 현재 시스템을 최종 점검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고객의 호가를 받아줄 증권사(유동성공급자·LP)와의 사전 조율도 필요하다.
이에 따라 은행들은 퇴직연금 가입자들이 높은 수익률을 올릴 수 있는 ETF를 선별하는 작업에 집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운용사 관계자는 "은행들이 지금도 ETF 신탁 상품을 판매하고 있는데 이 중에서 퇴직연금으로 투자할 수 없는 레버리지와 인버스, 파생형 상품을 빼고 최근 주목받고 있는 테마형 ETF 중 선별해서 리스트에 올릴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지연매매와 함께 신탁수수료도
[문지웅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