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은행이 부동산 구입용 대출과 신용대출을 연말까지 중단한다. 정부가 지난 14일 실수요자 대출에 해당하는 전세대출과 집단대출 공급에 차질이 없도록 하겠다고 밝힌 지 하루 만에 나온 조치다.
정부 방침대로 전세자금 등 실수요자를 위한 대출 길은 열어두면서도 전체 가계부채 총량 증가를 억제하겠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이처럼 은행들이 가계부채 총량관리 기조를 유지하고 있어 향후 주택을 구매하려는 실수요자들의 '대출 보릿고개'는 한동안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하나은행은 20일부터 신용대출과 주택·상가·오피스텔·토지 등 부동산 구입자금 대출을 잠정 중단한다고 15일 밝혔다. 비대면 대출에 해당하는 하나원큐 신용대출과 하나원큐 아파트론 대출은 19일 오후 6시부터 중단한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부동산 구입과 주식투자 등 실물자산에 지나친 유동성이 유입되는 것을 억제하기 위한 조치"라며 "대출 중단은 올해 말까지로 계획돼 있지만 가계대출 증가세가 진정되는 현황에 따라 재개 일정이 조정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청년과 서민층을 위한 전세자금대출, 집단잔금대출, 부동산담보 생활안정자금 대출, 오토론, 새희망홀씨 등 서민금융상품 판매는 지속하기로 했다.
우리은행도 일부 신용대출 상품 우대금리를 최대 0.9%포인트 축소하면서 신용대출 증가세를 조절하고 나섰다. 우리은행은 우리WON하는 직장인대출과 우리 드림카대출의 신용카드 우대 항목을 삭제하기로 했다. 우리홈마스터론은 최고 우대금리 폭이 0.5%포인트에서 0.1%포인트로 낮아진다. 참군인우대 대출은 최고 우대금리 폭이 1.2%포인트에서 0.3%포인트로 대폭 축소된다.
이날 금융당국과 은행 여신담당 실무진은 은행연합회에서 전세대출 재개와 관련한 후속 대책을 논의했다. 14일 정부는 연말까지 한시적으로 전세대출에 총량 규제를 적용하지 않기로 했다. 이와 관련해 정부와 은행 실무진은 전세대출에서 불필요한 초과 수요를 발생시키지 않는 방안을 논의했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실수요자에게 꼭 필요한 대출만 나갈 수 있는 방안과 관련해 은행 실무진의 다양한 아이디어가 공유됐다"고 말했다.
연말까지 전세대출과 집단대출이 중단되지 않는다는 정부 발표에 이날 은행 대출 창구에는 관련 문의가 빗발쳤다.
[김유신 기자]
이른 아침부터 실수요자 몰려
"전셋값 올라 보증금 감당안돼
연말에 한도 줄어들까 우려"
금융위·시중銀 후속조치 논의
KB 취급한도서 전세대출 제외
신한·우리銀은 대출한도 늘려
"전세 계약 만료가 두 달도 안 남아서 대출을 받아야 하는데, 지금 신청할 수 있나요? 다시 대출이 중단되지는 않을까요?"
전세대출과 집단대출이 연말까지 중단되지 않는다는 14일 정부 발표에 실수요자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도 불안해하고 있다. 하루가 지난 15일 시중은행 창구는 문을 열자마자 언제 대출이 다시 중단될지 몰라 불안한 고객들의 문의가 빗발쳤다.
15일 금융권에 따르면 이날 은행 영업점에는 대출을 받으려는 실수요자들이 대거 몰렸다. 서울 서초구에 거주하는 직장인 김 모씨(45)는 전세 계약 기간이 만료되는 연말에도 전세대출이 가능할지 은행에 문의했다. 김씨는 "정부가 전세대출에 차질이 없도록 하겠다고 발표했지만, 혹시 은행 한도가 다 차거나 줄어들지도 모르지 않느냐"며 "전세금이 많이 올라 대출 한도가 줄어들면 보증금을 감당하기 어려워 걱정"이라고 말했다.
대출이 막혀 백방으로 해결책을 찾던 고객들은 직접 영업점을 찾기도 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전화로 문의해도 되지만 불안한 마음에 직접 은행에 방문해 직원에게 확인을 받으려는 고객들이 많았다"면서 "코로나19로 은행 지점 내 머무를 수 있는 인원수가 제한돼 있는데, 고객이 몰리다 보니 영업점 밖에 줄을 서서 기다리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이 지난 14일 전세대출을 가계부채 총량관리 한도에서 제외하기로 하면서, 은행들은 즉각 전세대출 제한 조치를 풀기 시작했다. KB국민은행은 오는 18일부터 지점별로 관리해오던 가계대출 취급 한도에서 전세대출을 제외하기로 했다. 신한은행은 5000억원으로 제한했던 대출 모집인 전세대출 한도를 18일부터 풀기로 했다. 우리은행도 늘어난 대출 여력만큼 지점별로 관리하던 전세대출 한도를 추가 배정한다.
다만 국민은행과 하나은행은 전세대출 한도를 보증금 증액 범위 내로 제한하는 조치를 유지하기로 했다. 예를 들어 전셋값이 4억원에서 6억원으로 2억원 올랐다면 세입자는 기존에는 전세보증금의 80%인 4억8000만원까지 대출받을 수 있었지만, 이 조치로 인해 증액분인 2억원까지만 추가 대출이 가능하다.
이날 금융위원회 관계자들은 은행 여신 담당 실무진과 만나 전세대출 재개와 관련한 후속 조치를 논의했다. 전세대출 재개와 관련해 실수요자에게 필요한 대출이 공급되기 위한 방안이 논의됐다.
비대면 전세대출과 관련한 심사 강화, 늘어난 가계대출 여력을 집단대출에 집중하기 위한 방안 등이 논의된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당국은 가계부채 관리를 위해 올해 대출 증가율이 5~6%대를 넘지 않도록 총량 관리 중이다. 이에 따라 시중은행들이 전세대출과 집단대출을 속속 중단하며 서민층의 피해 우려가 커지자 총량 관리에서 한시적으로 전세대출은 적용하지 않기로 했다. 매월 2조원 이상 늘어나던 전세대출이 4분기 총량 규제에서 제외되면서, 약 10조원의 대출 여력이 생길 것으로 정부는 예상하고
정부는 이 금액을 아파트 입주 시 잔금대출 등 집단대출분으로 돌릴 방침이다. 대출이 막혀 잔금을 납입하지 못하는 경우가 없도록 금융위, 금융감독원, 은행 등 금융권 합동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110여 개 사업장의 잔금대출 정보를 공유하고 모니터링하기로 했다.
[김유신 기자 / 서정원 기자 / 명지예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